폐쇄적인 모바일 혁명과 열린 웹의 종말

아래 글은 슬로우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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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태블릿의 확산은 종이신문만 처참하게 죽이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이용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월드와이드웹이 사라지고 있다. 바로 다수 이용자 스스로 웹보다 앱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수요가 공급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포스트 PC 시대의 도래
이른바 ‘포스트 PC 시대’가 도래했다. 데스크탑과 노트북은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의해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지난 2013년은 PC 생산업체에게 최악의 해였다. 가트너(Gartner)의 분석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PC 시장은 10% 축소됐다. 동시에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이 급팽창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IDC 예측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전 세계 태블릿 보급량은 PC의 그것을 추월한다. 스마트폰은 여기에 함께 계산되지 않았다. IDC 예측 보고가 과장이 아닌 것은 지난 2013년 4/4분기 태블릿 판매량이 PC 판매량을 이미 넘어섰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포스트 PC 시대

출처: 포브스 – The post-PC era starts to make sense

이러한 디바이스 판매량 및 보급량의 변화는 전체 인터넷 생태계의 변화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변화 중 가장 극적인 것은 브라우저에 기초한 웹(*주: 인프라 층위가 아니라, 인터페이스 층위로서의 웹을 지칭)이 스마트폰과 태블릿 앱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현상이다. HTML5와 반응형 웹을 앞세우며 브라우저 기반 웹의 혁신을 주도하고 열린 웹의 멋진 세계를 옹호하는 사람도 PC 대체 현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2013년 4월의 통계를 보자. 미국 이용자 중 20%만이 브라우저 기반 웹을 선호하는 반면 나머지 80%는 앱을 주로 이용한다. 또 다른 통계에서도 85%의 이용자가 앱을 통해 인터넷을 만끽하고 있음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와 상반되는 통계수치도 존재한다. 넬슨의 조사에 따르면, 브라질과 이탈리아 이용자는 모바일 웹보다 앱을 선호하지만, 미국 및 영국 이용자는 여전히 모바일 웹을 앱보다 선호하고 있다. 앱과 모바일 웹 선호도 조사가 서로 충돌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 보급이 앱의 선호도 경향을 강화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공급은 수요를 따를 수밖에 없다. 애플 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에는 이미 각각 백만 개 이상의 앱이 이용자를 유혹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지난 20년 동안 (월드와이드)웹이라고 불렀던 멋진 세상이 안타깝지만 역사적 소멸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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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의 성장 속도 둔화
몇 가지 통계를 좀 더 살펴보자. 넷크래프트(Netcraft) 정기조사는 지난 2011년 이래로 전 세계 웹사이트(website)의 성장 속도가 뚜렷하게 둔화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2014년 1월 기준 전 세계 웹사이트 수는 약 8억 6천 1백만 개에 이르고 있다. 2013년 1월 6억 3천만 개의 웹사이트가 존재한 것과 비교한다면 2013년 웹사이트의 총수는 물론 증가하였다. 그러나 2011년 1월과 12월 사이 웹사이트 증가율이 200%를 기록했으니, 그 이후 웹사이트 성장률은 크게 위축된 것이다.

월드와이드웹사이즈가 분석한 웹페이지(webpage) 통계도 유사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아래 표 “구글과 빙에 색인화된 웹페이지 변동”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검색서비스 구글과 빙(Bing)에 의해 색인화(Indexing)되는 웹페이지의 수는 최근 정체 또는 감소 추세다. 어쩌면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구글은 앱 콘텐츠에 대한 색인화 작업을 시작했을 수 있다.

구글과 빙에 색인화된 웹페이지 변동

구글과 빙에 색인화된 웹페이지 변동

블로거이자 과학역사학자인 알렉스 발렌슈타인은 2013년을 “사라지는 웹사이트의 해”로 기록하고 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핵 과학과 관련된 대표적인 3개의 웹 기반 데이터베이스가 2013년에 사라졌다. 나아가 점점 많은 모바일 이용자들이 브라우저 기반 웹사이트보다는 앱 기반 콘텐츠 소비를 늘려 갈수록, 웹사이트 공급자에게는 특히 과거 웹페이지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경제적 동기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주 작은 이용자 집단이 매우 드물게 그리고 불규칙하게 방문하는 과거 웹페이지를 관리하고 보관하는 것에도 서버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을 이유로 싸이월드에 담겨있던 수천만 이용자의 기록이 곧 사라지게 된다. 다른 한편 페이스북, 트위터 등 수십억 이용자의 활동을 한 곳에 모으고 있는 소수의 서비스가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가지고 성장할수록, 그 서비스가 언젠가는 단숨에 싸이월드처럼 월드와이드웹에서 사라질 위험성 또한 함께 커진다.
놓을 수 없는 열린 접근과 정보 공유에 대한 희망
일찍이 2010년 8월 크리스 앤더슨은 ‘웹의 죽음’을 예고했다. 그리고 그의 불쾌한 예견은 3년이 지나지 않아 정확히 들어맞았다. 키스 라보이스(Keith Rabois)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노트북과 브라우저가 사라지기 때문에 웹도 사라진다(The web is going away because laptops and browsers are)”라며 포스트 PC 시대에서 웹이 처한 숙명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PC와 함께 사라지는 웹! 몸부림치며 거부하고 싶다.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웹은 브라우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브라우저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 수백만 개에 이르는 앱과 외롭고 처참한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진화하는 앱은 UI/UX 측면에서 점차 브라우저를 압도하고 있다. 브라우저를 이용해 열린 웹을 찾는 이용자가 줄어들면 들수록, 콘텐츠 공급자는 이들 소수집단을 위해 브라우저 기반 웹을 진화시킬 동기를 빠르게 잃어갈 것이다. 공급자가 줄어들면 웹의 매력은 더욱 축소될 것이며, 최악의 경우 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더욱더 많은 콘텐츠가 특정 앱 운영자에 의해 통제되는 울타리 속으로 갇히게 될수록, 카카오, 라인, 밴드 등 폐쇄형 앱 서비스가 증가할수록, 멋진 콘텐츠가 넘쳐나는 웹사이트에 대한 이용자의 관심이 조금씩 줄어들수록, 서로 다른 웹페이지를 연결하는 링크는 그 매력을 상실할 것이다. 링크의 매력이 사라질 때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월드와이드웹은 존재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 브라우저를 열심히 사용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매력적인 기능을 가진 서비스가 앱으로만 제공되는 경우가 점차 많아질수록 개인적인 노력과 불평은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러한 모바일로의 대전환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또는 이후 세대는 겨우 20년이라는 짧은 전통을 가진 브라우저 기반 웹에 애처롭게 매달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할까?

전 세계 이용자가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제한 없이 찾고 쉽게 발견하는 방법만 존재할 수 있다면, 어쩌면 콘텐츠가 어떤 특정 형식 및 프로토콜로 존재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시대의 변화를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성찰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나는 PC 시대를 끝내는 역사적 전환점에서도 열린 접근과 정보 공유에 대한 열망과 희망을 결코 버릴 수 없다.

기자나 블로거라면 꼭 알아야 할 2013년 저널리즘 트렌드 8가지

슬로우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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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위기, 저널리즘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종이신문의 소멸과정이 시작된 것이 그 주된 원인일 것이다. 보도자료를 베껴 쓰는 홍보저널리즘의 만연 또한 추락의 이유다. 그리고 2013년 충격 고로케 어워드가 웅변하듯 트래픽에 허우적거리는 한국 저널리즘의 퇴폐성 또한 저널리즘에 대한 신뢰도를 추락시키고 있다.

그러나 한국 밖의 세계로 눈을 돌리면 2013년은 저널리즘의 매력적인 재구성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특히 종이신문 및 방송사 등 전통 시장주체보다는 이른바 주변부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이 글의 제목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리스티클(Listicle: 목록(List)과 기사(Article)의 합성어) 형식을 취해 보았다.

1. 리스티클: 바이럴 저널리즘

버즈피드(Buzzfeed)는 2013년 언론계 최대 유행어(buzzword)다. 2013년 11월 1억 3천만 순방문자(UV)를 기록했다. 비교하자면 영국의 가디언은 2013년 6월 4,050만 순방문자를 기록한다. 뉴스사이트 시작 이후 최대치다. 뉴욕타임즈를 월평균 3,000만 순방문자가 찾고 있는 사실과 비교해 보아도 1억 3천만이라는 수치는 폭발적 트래픽이라 볼 수 있다. 기사 제목 및 형식은 “30세가 되기 전에 꼭 해야 할 10가지”,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는 12가지 비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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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등 소셜 공유를 통해 성장하는 버즈피드에 대한 비판 또한 작지 않다.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매개로 한 기사 어뷰징(오남용)과 유사하며 저널리즘의 품격을 떨어트린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를 의식한 듯, 버즈피드는 최근 탐사저널리즘 전문가를 고용했고, 가디언을 떠나는 글렌 그린왈드(Glenn Greenwald)의 독점 인터뷰를 게재했다. 코커미디어(Gawker Media), 바이럴노바(Viralnova), 디스트래픽티파이(Distractify), 쏘트카테고리(Thought Catalog) 등으로 확산하는 리스티클이 2014년에 어떻게 발전할지 지켜볼 일이다.

2. 포장 저널리즘

업월디(Upworthy)는 말 그대로 2012년 해성처럼 등장해서 2013년에 11월 8,700만 순방문자를 기록하는 수준으로 빠르게 성장한 콘텐츠 유통 플랫폼이다. 창업자는 ‘생각 조종자들(The Filter Bubble)’의 저자 엘리 프레이저(Eli Pariser)다. 무브온(MoveOn)을 이끌며 2008년 오바마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엘리 프레이저는, 진보 자유주의(left-liberal)를 지향하는 업월디를 2012년 5월에 설립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2012년 재선 선거운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한다.

업월디는 이미 존재하는 동영상에 새로운 제목과 티저/발문을 추가해서 해당 동영상의 확산을 지원한다. 예를 통해 알아보자. “처음 54초를 보시라. 이것이 내가 부탁하는 모든 것이다. 맹세하건대, 54초만 보면 당신은 훅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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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 동영상 소비를 유도하고 있다. 해당 동영상의 54초를 아래에서 정말 보시길 바란다. 업월디의 작동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창작물(creation)에 포장(capsule)을 더하는 업월디의 큐레이션(curation) 능력은 탁월하다.

3. ‘브랜드’로서의 기자(Journalist as a Brand)

“기자 또는 블로거 스스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 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김익현 기자가 훌륭하게 정리하고 있듯이 2013년은 스타 기자의 다양한 자리 이동이 이뤄진 해다.

뉴욕타임즈에서 야후로 자리를 옮긴 데이비드 포그(David Pogue), 가디언에서 이베이 창업자 오미다르가 새롭게 만드는 매체로 일자리를 바꾼 글렌 그린왈드(Glenn Greenwald), 독일 차이트 온라인(Zeit.de) 편집장에서 가디언 디지털 전략팀장으로 스카웃된 볼프강 블라우(Wolfgang Blau)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블로거로서 대표적 예는 앤드류 설리번 1인 미디어 실험이다. 문제는 이들이 어떻게 저널리즘 혁신에 기여할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4. 크라우드 펀딩 저널리즘

킥스타터(Kickstarter)와 인디고고(Indiegogo)의 성공 이후, 저널리즘에 특화된 다양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 활성화되고 있다. 스팟어스(spot.us)에서부터 사진기자를 위한 엠파시스(emphas.is), 영상뉴스를 위한 브르노(Vourno.com) 등 2013년 영미권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독일어 지역스페인어 지역등으로도 클라우드 펀딩 저널리즘이 확산하고 있다.

또한, 네덜란드의 De Correspondent, 한국의 뉴스타파, 아르헨티나의 Lavaca 등 (소액)기금에 의해 운영되는 저널리즘 프로젝트 또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5. 크라우드소싱 저널리즘

특파원과 독자 사이에는 놓여 있는 길의 특징은 소통의 일방통행이다. 2013년 여름 독일 두 명의 여기자가 독자와 기자 또는 이용자와 블로거를 연결하는 방식을 바꾸는 시도가 있었다. 한국으로 비교하자면 수습기자인 리자 알트마이어(Lisa Altmeier)쉬테피 페츠(Steffi Fetz)는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 브라질을 찾았다. 두 명의 젊은 기자가 2014년 월드컵이 열리고, 2016년 올림픽의 함성으로 들썩일 브라질을 찾았다. 이용자들은 이들 두 명이 찾고 조사하고 보도할 질문을 던졌고, 이용자들은 자신이 알고 있거나 정보나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두 명의 기자들과 함께 나눴다 .

이 프로젝트 이름은 ‘크라우드’와 ‘특파원’의 합성어인 “크라우드스판던튼(Crowdspondenten)”이다. 지난 6월 15일부터 30일까지 브라질에서 진행된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은 이들 두 기자가 이용자들과 호흡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세계청년대회를 맞아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를 방문한 교황은 취재 열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그러나 이 두 기자를 사로잡았던 주제는 큰 행사 그 자체가 아니었다. 두 개의 큰 행사가 학교와 빈민가에 일으킨 변화가 이들의 주된 취재소재였다. 그 이유도 명확하다.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그리고 메일을 통해 이용자는 취재소재를 제안하거나, 매번 다음번 취재 테마 후보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용자들은 브라질의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미디어 시스템에 대한 취재를 요청했고, 다른 이용자들은 저임금 생활고의 실상을 추적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이용자의 바람에 따라 브라질 초중고등학교 선생님의 근무환경과 평판에 대한 글들이 이어졌다. 크라우드소싱 저널리즘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이용자가 기자만큼 정보력을 가지고 있으며, 깊이 있는 분석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용자 모두가 카메라 한 대를 항상 휴대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6. 실시간 저널리즘: 라이브 블로그

2013년 4월 15일 보스턴 마라톤 폭발사건은 저널리즘에 쉽지 않은 도전을 던졌다. 범인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종이신문과 인터넷에서는 범인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보도되었고,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레딧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범인*에 대한 제보가 쏟아졌다. 정보처가 많이 늘어났지만, 사실을 점검할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가 잠재적 목격자인 시대, 인터넷에서 사실 확인 등 정보의 조직화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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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다수 뉴스사이트에서 진행한 대형 사건 보도에는 스크리블 라이브(Scribble Live)라는 도구를 활용한 ‘라이브 블로그’ 서비스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행사장 발표, 인터뷰, 기자회견 등을 라이브 블로깅으로 전하는 한국 미디어들의 시도들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라이브 블로깅의 매력은 대형 사건에서 느낄 수 있다.

현장에서 생방송 중계는 값비싼 장비와 인력을 요구한다. 2013년에는 구글 행아웃과 유튜브 라이브 등을 활용한 생방송 중계가 크게 확산했다. 스마트폰 하나로 생방송이 가능한 시대가 시작한 것이다.

7. 모바일 뉴스

아래 그림처럼 시간대에 따라 뉴스를 소비하는 기기가 달라졌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일터로 이동하는 시간에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뉴스의 주요 소비기기다. 점심때와 퇴근 이후 시간 역시 뉴스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통해 이뤄진다. 모바일 뉴스 소비는 PC 기반 뉴스 소비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스마트폰으로 기사 또는 뉴스를 끝까지 읽거나 보는 이용자는 얼마나 될까? 특히 만원 지하철을 타고 있거나, 커피전문점에서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제목만 보거나 앞부분만 보고 다음 기사 또는 뉴스를 확인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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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이용자의 소비습관을 존중한 뉴스의 형식은 무엇일까? 두 개의 실마리가 있다. 첫 번째는 서커(Circa)다. 서커는 뉴스를 아주 작은 뉴스 단위(Object)로 생산한다. 특정 제목의 뉴스를 팔로잉하면 사건의 진행 경과에 따라 해당 제목에 뉴스 단위(Object)가 추가된다. 유튜브 동영상, 트윗, 페이스북 포스트, 지도 등이 뉴스 단위(Object)를 이루기도 한다. 서커는 자신들의 시스템을 스스로 ‘객체 지향 뉴스’라고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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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실마리는 나우디스뉴스(NowThisNews)다. 나우디스뉴스는 2012년 9월 설립된 회사로서 창업자는 허핑턴포스트의 공동창업자인 케네스 리어러(Kenneth Lerer)와 허핑턴포스트 CEO 출신인 에릭 히포(Eric Hippeau)다. 나우디스뉴스가 생산하는 뉴스의 길이는 6초 또는 13초다. 6초 뉴스는 트위터가 만든 동영상 플랫폼 바인(vine)에서 유통되며, 13초 길이의 동영상 뉴스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용자를 만난다.

2013년 9월 2,000만 순방문자를 기록하며 숨 가쁜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나우디스뉴스가 노리는 고객층은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다. Y세대 또는 M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난 젊은 층이다. 아빠처럼 CNN을 보지 않으며, 엄마처럼 허핑턴포스트를 소비하지 않는 이들은 야후나 개별 뉴스사이트보다는 SNS를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

나우 디스 뉴스의 편집국장 오키프(O’Keefe)가 표현하듯, 이들은 뉴스를 열렬히 탐하는 세대다. SNS를 통해 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등 다른 방식을 통해 관련 뉴스를 열공하는 세대다. 이들은 종이신문을 읽지 않지만, 1시간짜리 긴 방송뉴스를 즐겨 보지는 않지만, 새로운 문법으로 만들어진 짧은 동영상 뉴스를 즐겨보며, 자신의 관심거리를 찾아 월드와이드웹을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 뉴스 소비자다. 나우 디스 뉴스는, 이른바 미디어 소비의 파편화를 현실로서 인정하고 제한된 젊은 소비자에게 더욱 파편화된 뉴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개념의 뉴스서비스다.

Mobile First! 저널리즘에도 필요한 전략이다.

8. 스크롤리텔링과 뉴스 스트리밍

2012년 뉴욕타임즈의 스노우폴은 그 내용과 형식면에서 멀티미디어 저널리즘의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다. 장편 저널리즘(long-form journalism)이라고도 불리는 스노우폴 형식은 모바일에 더욱 사랑받고 있는 사용법인 스크롤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가디언의 역작 NSA Files: Decoded, 음악 전문지 피치포크(Pitchform)의 Machines for Life, 스위스 NZZ의 후쿠시마 등이 형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스노우폴의 자식들이다.

한편 스크롤리텔링은 뉴스와 뉴스를 연결하는 방식으로도 진화하고 있다. 영국의 데일리 미러(Daily Mirror)가 최근에 공개한 뉴스 URL구조를 살펴보자. 미러의 특정 뉴스를 클릭해서 스크롤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다음 뉴스가 등장하고 그에 맞게 URL이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관련기사, 연관기사를 아주 작은 글씨로 이용자에게 제시하는 것이 아닌, 뉴스 스트리밍(news streaming)과 스크롤을 결합해 추가 소비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이렇게 스크롤을 통해 더욱 가치가 증가한 스트리밍 방식의 뉴스 제공의 의미는 다음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스트리밍’이 새겨진 한 해.

지금까지 살펴본 여덟 가지 흐름 외에도, 내이티브 광고, NSA 보도, 유료화, 데이터 저널리즘 등 살펴볼 가치가 있는 2013년의 저널리즘 트렌드가 존재한다. 또한, 한국으로 제한할 경우에는 슬로우뉴스, ㅍㅍㅅㅅ뉴스페퍼민트다이버시티 등 팀블로그 형식의 저널리즘 프로젝트가 대중성을 서서히 확보하기 시작한 것 또한 2013년의 유의미한 흐름으로 기록될 수 있다.

이 밖에도 의미 있는 저널리즘의 새로운 시도와 도전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 또는 슬로우뉴스 독자들이 이어서 기록해주길 바라본다.

증강현실과 소셜 네트워크의 미래: Sight

증강현실과 소셜 네트워크가 생활의 ‘상수’가 되었을 때 세상은, 인간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이스라엘 예술가 May-Raz와 Daniel Lazo는 사물과 사람 등 사물의 인터넷(Internet of Things)가 현실화될 가까운 미래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훌륭하게 선취하고 있다.

Sight from Sight Systems on Vimeo.

Sight에서 사물 및 사람이 소통하고 정보가 오고가는 도구는 구글의 안경(Project Glass)이 아니라, 콘택트 렌즈다. 남녀가 첫 만남을 갖는다. 서로 어색한 시간을 어떻게 보냐야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다양한 앱이 실시간으로 대화소재를 제공한다. 또는 상대방의 생체리듬을 분석하여 이에 상응하는 행동양식을 추천하다. 첫 데이트 동안 상대방에 대한 평가도 가능하다.

위의 동영상은 그러나 두 개의 극단을 제시하고 있다. (관점에 따라 달리 볼 수 있지만) 전반부에는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기술의 가능성을 멋지게 제시한다. 그러나 기술은 인간의 삶을 살아있는 악몽으로 빠르게 반전시킨다.

환상적인 위의 동영상을 감상한 사람 대다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나 증강현실에 대해 반감을 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등에 대한 결정은 아직까지 우리들의 손에 놓여 있다.

소셜 미디어와 사회변동 (1): 이룰 수 없는 참여 공론장의 꿈

프랑스 혁명과 부르조아지 공론장의 탄생: 이룰 수 없는 ‘참여 공론장’의 꿈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기 전 프랑스 사회로 잠시 여행을 떠나보자. 이 여행을 동반하는 책은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 1962)’이다.

하버마스가 이야기하는 공론장은, 왕과 그의 귀족들이 만들어 낸 ‘궁정 공론장’이 아니라 당시 태동한 시민계급(=부르조아지)이 만들어낸 공론장이다. 이 공론장은 도시를 중심으로 모여살기 시작한 새로운 인간사회를 통해 태동하기 시작한다.
파리 또는 아비뇽 등 도시에서 부를 창출하기 시작한 새로운 시민계급은 그 부를 늘려가기 위해 그리고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시민계급에 의해 요구된 노동력은, 당시 봉건영주 밑에서 반노예 상태로 살고 있었던 농노들이 그들의 예속을 벗어나면서부터 비로소 채워질 수 있었다. 봉견영주의 예속을 벗어난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새롭게 유입된 노동력에 힙입어 당시 프랑스 부르조아지에게는 부가 증대되었고 그리고 ‘여유(=시간)’가 늘어났다. 그리고 늘어난 ‘부’와 ‘시간’만큼 ‘걱정’도 함께 늘어갔다. 늘어난 도시 인구는 이들 시민계급에게 ‘사회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던 도시는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도시에는 부르조아지 자식들을 위한 교육시설이 없었고, 부르조아지 가족들이 다닐 성당도 없었다. 거리에는 악취와 소음이 가득했고  아프고 병든 자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바로 이 때, ‘부’를 늘려가기 시작했던 수공업자 그리고 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심각하고 끔직한 상태’에 대한 불만들이 오고 갔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들 자식들의 미래에 대한 근심이 담겨 있었다. 몇몇 상인들은,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며 이 새롭게 추가될 노동자들을 머물게할 공간이 없다고, 도시를 확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또한 그들이 처한 도시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왕과 귀족에 대한 성토대회가 열리기 시작한다. 이들의 열띤 논쟁이 시작된 곳, 이것이 당시 프랑스 파리와 아비뇽의 ‘커피집=카페’다. 여기가 바로 하버마스가 분석한 ‘부르조아지 공론장’의 탄생지다.
공론장은 바로 ‘문제가 있는 곳’에 그리고 바로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사람들이 모일 때’ 형성된다. 여기서 근대 자유의 개념과 민주주의의 태동한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 부르조아지 공론장는 동시에 ‘배제의 공론장’이기도 하다. 도시로 몰려 들었던 수많은 노동자들은 끔찍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을 했고, 이들 대부분은 글을 쓸 수도 읽을 수도 없었다. 그들에겐 한가로이 카페에 모여 이야기할 시간도 돈도 없었다. 물론 계급을 떠나 ‘여성’ 모두는 이 공론장에서 배제되었다.
공론장과 저널리즘의 관계:  저널리즘 독립의 중요성
이러한 부르조아지 공론장의 탄생과 더물어 주목할 사실 하나는 저널리즘의 탄생이다. 지리적으로 떨어진 ‘커피집=카페’를 연결하기 위해, 시간적으로 떨어진 ‘토론 내용’ 사이의 간격을 극복하기 위해 각 커피집과 토론 내용을 연결하는 ‘중계자’가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다. 이 중계자들의 의해 각기 서로 다른 공론장은 ‘신문’을 통해 기록되고 전파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하버마스는 당시 존재했던 ‘아주 작은 규모의 신문과 다수 저널리스트’의 ‘경쟁’에 주목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다양한 중계자들의 경쟁을 통해 부르조아지 공론장은 건강성을 유지한다. 때문에 당시 나의 33세의 하버마스는 그의 교수자격 논문 ‘공론장의 사회변동’에서 국가에 의한 1. ‘매체 다양성’과 2. ‘편집국의 내부 민주주의’ 보장을 주장한다. 다수 저널리스트와 다수 신문 사이의 갈등과 긴장 만이 공론장의 건강성을 유지하고 왜곡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과 긴장이 사라질 때, 하버마스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없다.
최근 신문 산업이 위기에 처하자, 2009년 만 80세의 노인이 된 하버마스는 신문 산업을 지원하는 대대적인 국가의 개입을 주장하고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관련 글 보기).
브레히트의 꿈: 관계 미디어
현재 미디어 지형을 이해하기 이전 소개하고픈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20세기 독일 최고의 문인이요 예술가요 실천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라디오 이론’이다. 그는 1927년(!) ‘라디오’의 가능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참고로 독일에 첫 라디오 방송국이 생긴 해는 1923년이다.
라디오는 전달장치(distribution-device)에서 소통장치(communication-device)로 전환되어야 한다. … 이 엄청난 전환은 라디오가 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청취자가 듣는 것만이 아니라, 청취자 모두가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를 통해 그들은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속에 머물게 된다.
청취자가 이야기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청취자 서로가 듣게되어 이들 사이에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브레히트는 라디오라는 새로운 미디어에서 보았다. 그러나 그의 꿈과 희망도 연이어 등장한 히틀러 정권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자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에 의한 새로운 참여 공론장의 꿈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2부에 이어짐…)

미디어 변동은 왜 쉬 오지 않는가? 새로운 미디어 질서에 대한 열망

오마이뉴스가 찬란하게 이룩했던 ‘시민 저널리즘’의 신화가 차츰 저물어가고 있다. 지난 2007년 블로그의 급속한 확산은 ’1인 미디어 시대(!)’를 노래케 했다. 그러나 이 노래를 아직도 외쳐 부르는 이는 없다. 북미대륙과 유럽에서 2008년 부터 본격화된 ‘신문의 위기’는, 한편에서는 ‘저널리즘의 위기’로 이해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구 권력’의 붕괴와 새로운 ‘언론 미디어’의 탄생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심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아도 새로운 그 무언가는 봄날의 아지랑이와 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으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블랙베리’와 ‘아이폰’은 ‘모바일 웹’이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아직 아장아장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무엇이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거친 물결을 건너야할지 알 수 없다.
왜 이렇게 변화가 더딘 것일까? 도대체 미디어는 어떤 변화의 과정을 지금 통과하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미디어 질서는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최근 클레이 셔키(Clay Shirky)가 제시하고 있다.
클레이 서키는 지난 3월 중순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렸던 SXSW 행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출처보기).

“Institutions will try to preserve the problem to which they are the solution. 기관/조직/기업은 자신이 해답을 가지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를 추구한다(의역).”

마치 선문답을 하는 듯한 그의 말은 무슨 뜻일까?
그 의미를 해석해 보자. 핵심은, ‘문제(problem)’가 없다면 ‘해답(solution)’도 필요없다는 점이다.
문제 A를 가진 사람이 있고, 이에 대한 해답 A를 가진 기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기업에게 해답 A는 이른바 ‘비지니스 모델’이다. 이 해답 A는 이 기업에게 매출과 이윤을 창출하는 근거이자 존재 기반이다. 당연히 이 기업은 문제 A가 다른 사람이나 다른 기업에 의해 해결되기를 원치 않는다. 자신만이 유일한 해결책 A를 갖고 있기를 원한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 A가 계속해서 존재하기를 원한다.
이 기업에게, 해결책 A를 제시하는 다른 사람/기업이나 문제 A를 사라지게 하는 환경의 변화는 비타협적으로 싸워야할 대상이다. 이 기업은 변화를 원치 않는다.
한 명의 음악가가 있다. 멋진 음악을 만들었지만, 그는 이 음악을 다수의 청중에게 전달할 능력이 없다. 이것이 이 음악가의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음악기업의 몫이다. CD 등의 전달매체에 음악을 담아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고, 방송을 통해 이 음악을 홍보하는 형식을 통해 음악기업은 돈을 번다. 그런데 음악기업의 이러한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없어진다면? 그리고 음악가에게 자신의 음악을 유통시키고 홍보하는 것이 더이상 ‘문제’가 아니된다면? 음악 유통과 홍보에서 기존 음악기업들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사라진 것이, 2008년 마돈다가 Warner Music을 떠났고 최근 락그룹 Ok Go가 EMI를 떠난 이유이다. 유튜브, 마이스페이스,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가 음악가들에게 훌륭한 유통과 홍보 채널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이 언론산업과 기업홍보/광고 영역에서 연출되고 있다. 방송과 출판 영역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통 미디어 기업의 문제 해결능력이 더 이상 필요 없게되는 미디어 질서가 서서히 도래하고 있다. 이것이 전통 미디어 기업들이 새로운 미디어 질서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이유다. 이것이 저작권법을 구시대적 방식으로 강화하고, 삼진아웃제 등으로 파일공유를 억제하려는 이유이다. 이것이 실명제와 명예훼손이라는 낡은 수법으로 젊은이들의 창의성을 억누르는 이유이다. 수십년 간 이어져온 그들의 ‘비지니스 모델’을 지키기 위함이다.
소셜 미디어는 ‘유통’의 문제를 해결한다. 페이스북의 Fanpage, 기업 트위터, 기업 블로그 등이 기업과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만큼 기업의 기존 언론과 방송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고 있다.
클레이 셔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새로운 미디어 질서의 결과를 예측하고 있다.

“Abundance breaks more things than scarcity does. 풍요함이 결핍보다 더 많은 것을 파괴한다.”

인터넷과 웹을 통한 사회 관계망에서 절대 ‘다수’ 사용자는 스스로 유통의 몫을 담당할 수 있다. 이들이 넘쳐날 때, ‘소수’ 미디어 기업이 담당했던 유통의 역할은 파괴된다.
(1) 언론기업, 출판기업, 방송기업, 음악기업 등이 과거식 희소성에 근거한 비지니스 모델을 지속하고, (2) 절대 다수의 사용자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유통의 몫을 담당할 때, 즉 이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만족될 때, 미디어 기업의 과거 비지니스 모델은 철저하게 무너질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미디어 질서가 태동하고 이 질서에 대한 강력한 저항과 교란이 일어나고 있는 과도기다. 그리고 이 과도기에 생겨난 다른 ‘문제’가 있다.

전통적 미디어 산업에서 내용/콘텐츠 생산은, 유통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윤전기와 배급소가 없는 신문은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유통과정에서 창출된 수익, 즉 광고수익은 생산비용을 감당했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유통과 생산이 분리된다면, 생산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이 질문에 답을 찾는 자,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경제적 강자’로 군림할 것이다.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찾는 시대, 새로운 실험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실험, 실험, 실험” 이것이 새로운 미디어 질서를 열망하는 이들의 크레도(credo)다.

벤쿠버 올림픽과 미디어 변동: 새로운 관계의 시작

(시간이 없는 관계로 짧은 정리를 시도해 본다.)

(이 글의 발화점은 ‘와이어드Wired의 “Golden Games for Social Media“다.)
SBS가 이번 벤쿠버 올림픽 공중파 방송 중계 한국 독점권을 가지면서,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었다. 1개 방송에 의한 독점적 중계를 ‘시청자’의 볼 권리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논의다. 그러나 ‘선택권’ 운운해도 이러한 논의에서 ‘시청자’는 언제나 수동적으로 인식된다. 방송사가 전송하는 내용을 ‘보고 들을 수 밖에 없는’ 절대 다수가 시청자(audience)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동계 올림픽은 이러한 ‘방송사와 시청사’의 일방적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첫번째 올림픽이 되었다. 이는 그러나 유감스럽고 슬프게도 한국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 미디어 환경과 관련하여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가장 큰 특징은, 올림픽 보도에 대한 독점적 중계권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올림픽 보도에 대한 절대적 통제권’을 특징으로 하는 올림픽조직위원회(IOC)의 중계권 정책에 금이 갔다. 올림픽조직위원회 스스로가 ‘경기 참여자에 의한 보도’을 허가한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허가’한 것이 아니라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경기에 참여한 운동선수들이 – 아쉽게도 대부분이 미국, 캐나나, 영국 선수 들이다 -, 트위터로, 페이스북으로, 유튜브로 경기 현장을 실시간으로 전달한 것이다. 또한 경기 관객으로 참여한 다수의 블로거들에 의한 보도들도 눈에 띈다. 몇가지 예를 살펴보자.
Julia Mancuso는 트위터를 통해 ‘장애물 활강 스키(Giant Slalom Skiing)‘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도했고, 직접 카메라로 녹화한 경기 내용을 그녀의 실망과 기쁨을 함께 담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벤쿠버 올림픽에 흠뻑 빠진 사람들의 수는 각각 14700여명과 28000여명이다.

여기 트위터로 벤쿠버 올림픽 생중계에 참여한 이들의 명단이 있다 (명단 보기).

미국 아이스하키팀 선수 Angela Ruggiero도 훌륭한 비디오케스팅을 했다 (그녀의 웹사이트 보기). 잠시 감상해 보자.

또 다른 특징은, 올림픽조직위원회가 애플의 올림픽 앱을 허가(?)하였다는 점이다. 인기를 끌었던 애플의 앱을 내려받아 설치해 보시라 (링크는 여기). 위치정보도 훌륭하게 적용되었고 나물랄데 없는 훌륭한 엡이다. 메달을 받은 선수들의 트위터 계정도 소개되고 있다. 다음 올림픽 때는 각 경기장면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들이 경기 정보, 선수 정보, 경기장 정보 등에 담겨질 것이고, 각 경기 규칙, 경기 역사에 대한 위키피디아 정보들이 연결될 것으로 예상 또는 기대된다.

선수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팬들과 직접 대화하고, 자신들의 기쁨과 애환을 매개로 팬-페이스북 팬과 트위터 팔로워-들과 같이 감동하고 함께 비판의 날을 세운다. 이렇게 새로운 미디어 관계가 한쪽에서 꽃을 피울 때, 다른 한쪽에서는 ‘상업적 중계 독점권’이 하나 둘 씩 무너지고 있다.

(급하게 쓴 글, 맞춤법에 문제가 있어도 양해하시기를…)

소셜 마이크로페이먼트, 우리가 우리를 살찌게 하자

(온라인 뉴스) 유료화! 2010년 전 세계 언론사들을 사로잡고 있는 단어다.
“온라인 광고수입은 과거 신문산업이 누렸던 수입에 턱없이 모자란다. 보라 2008년과 2009년 경기침체에 따른 광고수입 감소를, 그리고 그에 따른 언론사들의 줄도산을! (정말?) 또한 광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언론은 상업주의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아하?) 열심히 일한 것은 우리 언론사들이나, 그 과실을 따먹은 것은 네이버, 구글 등 검색서비스업체가 아닌가? (혹 언론사들이 인터넷 생리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사회적 공기인 언론이 위기에 빠져있다. 정부는 보조금을 통해 언론산업을 도울 것이고, 독자는 부도덕한 ‘공짜주의’를 벗어던지고 이제 그만 ‘양지’로 나오라!”


위의 논리는 언론사의 일부 주장을 지나치게 극단화한 것이다. 그들 또한 나름 자기개혁을 통해 인터넷 네트워크의 기본 원리를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하지만 신문 ‘정기구독’ 방식에 기초한 온라인 뉴스 유료화는 안타깝게도 불가능에 가깞다 (참조글 보기). 개인적으로 유료화를 반대하지 않는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파이낸셜 타임즈와 같은 ‘월 정액제’ 유료화 방식을 뉴스사이트에 적용하는 것은, 해당 언론사의 자유다. 그러나 그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다(참조글 보기). 이런식의 유료화는 인터넷 네트워크에서 ‘고립’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또한 네트워크에서 고립된다는 것은 소비자로 부터 잊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유료화에 대한 찬/반 논쟁보다는 네트워크 경제에서 어떻게 유료화가 가능한지 새로운 지평에서 새롭게 논의되어야 한다.
블로그계라고 사정이 그렇게 녹록한 것은 아니다. 민노씨(@minoci)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한국 블로그계는 기업들의 잘못된 ‘블로그 마케팅’으로 점차 신뢰도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블로거가 경제적 동기를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온라인 뉴스와 블로그의 경제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다만 정답을 찾기 위한 ‘실험, 실험, 실험’이 절실하다.
최근 등장하는 일렬의 ‘유료화’ 실험들 중 가장 나를 매료시키는 것이 있다. 그 이름은 플래터 (Flattr)-’펄럭이다’를 의미-다. 이 서비스를 이해하기 위해, 유사 서비스를 먼저 살펴보자.

1. 캐칭글(Kachingle): 캐칭글(Kachingle)은 온라인 뉴스 콘텐츠를 위한 이른바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 시스템이다 (위키 보기). 작동원리를 위해하기 위해 아래 그림을 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를 들어 한 소비자는 한달에 5천원을 뉴스 및 블로그 콘텐츠 소비에 ‘자발적’으로 지불하기로 결정한다. 캐칭글에서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하고, 자신이 즐겨보는 뉴스사이트와 블로그를 등록한다. 이 소프트웨어는, 소비자가 등록한 사이트 중 어느 사이트에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머무르는지를 계산한다. 캐칭글은 이 계산에 기초하여 5천을 해당 사이트에 배분한다. 또한 캐칭글은 이 5천원 중 20페센트를 비용/수수료로 받아간다.
이 시스템의 장점은 클레이 서키(Clay Shirky)가 이야기한 ‘정신적 거래비용 mental transaction cost’를 줄일 수 있다. 소비자는 개별 뉴스나 블로그 포스트의 ‘가치’ 또는 ‘가격’이 얼마일까 일일이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바로 개별 소비자의 이러한 ‘가치 평가’의 고민을 줄여주는 ‘지불 편의성’이 캐칭글의 장점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두개의 결정적 단점을 가지고 있다. 위의 소비자가 A라는 뉴스사이트를 방문하여 다양한 기사를 읽는다고 가정하자. 이 소비자는 어떤 기사는 유익하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다른 어떤 기사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기사 소비를 구별없이 ‘통’으로 계산할 경우, ‘지불 저항’이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 단점은 바로 소비자에 대한 ‘빅 브라더(Big Brother)’다. A라는 뉴스사이트에서 ‘여배우 뒷태 사진’을 제공한다고 가정하자. 이 소비자는 이러한 낚시성 사진들을 싫어한다. 그런데 그 소비자가 ‘클릭’하는 것이 모두 ‘기록’되고 있다면? 캐칭글 모델은 바로 여기서 실패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캐칭글 모델은 클레이 서키의 ‘정신적 거래비용 mental transaction cost’라는 디지털 미디어 경제의 중요한 요소를 처음으로 구체화했다는 성과를 가진다.

2. 팁조이(Tipjoy):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팁조이(Tipjoy)는 소비자가 유익하다고 평가하는 개별 기사/블로그 포스트에 소비자가 ‘팁(tip)’을 쉽고 편하게 줄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다. 작동방식은 다음과 같다. 기사/포스트 밑에 팁조이 버튼이 달려 있다. 이 버튼을 클릭한 이후 소비자는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한다. Tipjoy는 한 달에 한 번 이메일 주소를 집계하여 ‘계산서’를 해당 소비자에게 보낸다. 페이팔(Paypal) 형식과 유사하다. 팁조이는 자사 서비스를 ‘simple, social payments’라 홍보하고 있다. 소비자의 자발적 ‘팁=소액 기부금’을 모아, 온라인 뉴스 및 블로그 생산자에게 전달하는 서비스가 팁조이다.
그러나 팁조이는 두가지 지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첫째, 팁조이는 뉴스사이트와 블로그에 팁조이 버튼을 다는데 집중하는 공급자 중심 정책을 전개했다. 이와 반대로 소비자의 ‘자발성’을 끌어올리는 작업에는 소홀했다. 즉 소비자에게 ‘지불동기’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둘째, ‘이메일 주소’를 매번 입력해야하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물론 소비자는 자신의 신용카드 번호를 남길 필요가 없고, 페이팔처럼 아이디(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메일주소 입력’은 매우 은밀한 소비자 정보 공개일 수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팁조이버튼을 클릭하는 소비자들은 소수에 불과했고, Tipjoy는 서비스 시작 1년만인 2009년 여름 회사문을 닫았다 (관련기사 보기). 그러나 팁조이는, 아마존과 앱스토어처럼 ‘원클릭(One-Click)’시스템 도입과 API를 통한 원클릭 ‘집계’라는 매우 유익한 실험을 진행했다.

3. 마지막으로 지난 2010년 2월 10일 세상에 첫 모습을 선보인 플래터(Flattr): 먼저 동영상을 감상해 보자.

가정해 보자. 소비자는 한 달에 5천원을 디지털 콘텐츠에 지불하기로 결심한다. 블로그 포스트, 팟케스팅, 음악, 뉴스/기사 밑에는 이른바 Flattr 버튼이, 페이스북, 트위터, 디그(Digg) 등 다양한 소셜 북마크(social bookmarks)와 함께 나타난다. 해당 콘텐츠가 맘에 들 경우, 소비자는 플래터 버튼을 클릭한다. 클릭수는 디그(Digg)처럼 누적되어 해당 콘텐츠 밑에 보여진다. 위의 소비자가 한 달 동안 열번을 클릭했다면, 클릭한 각 콘텐츠에 5백원씩 전달된다. 백번 클릭했다면 50원씩이 전달된다. 천번 클릭했다면 5원씩 전달된다. 유익한 글에 ‘고맙다’는 댓글을 남기듯, 멋진 글을 ‘Retweet’ 하듯, 자신의 생각과 통한 유쾌한 글에 Digg 버튼을 클릭하듯, 소비자들은 글쓴이/블로거/제작자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플래터 버튼으로 전한다. 소비자 개인들의 플래터 버튼 클릭이 모여, 글쓴이/블로거/제작자에게는 재정지원이 이루어진다. 집계된 버튼 클릭수는 다른 소비자들에게 좋은 콘텐츠를 찾을 수 있는 길잡이, 즉 필터링 기능을 수행한다. 플래터 버튼은 리트윗(Retweet) 버튼과 통합될 수도 있다. ‘원 클릭’으로 두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
플래터의 장점은, 1. 소비자의 정신적 거래비용(mental transaction cost)를 0에 가깝도록 만들수 있다. 한 달에 5천원 또는 만원을 정하는 선택과 결단은 필요하지만, 각 블로그 포스트, 음악, 뉴스를 매번 가치평가할 필요가 없다. “맘에 들어…” 그럼 클릭이다. “000 기자/블로거가 쓰는 글은 언제나 훌륭해…” 그럼 클릭이다. “나의 팔로워(follower)가 리트윗한 글, 나의 팔로워가 펄럭인-flatter- 글…” 그럼 나도 클릭하며 펄럭인다. “어머,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었어, thank you!” 클릭이다.
플래터의 또 다른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은 2. 플래터는 (간접) 네트워크 효과에 기반한 서비스라는 점이다. 가능한 많은 수의 블로거와 뉴스사이트 등이 플래터버튼을 달아야 한다. 그리고 수십만, 수백만의 소비자들이 플래터 버튼을 클릭해야 한다. 즉 초기 자원(install base)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유사 서비스의 도전을 쉽게 따돌리고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분명 플래터는 온라인 콘텐츠의 경제성을 담보하는 ‘하나’의 유료화 가능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이러한 소셜 마이크로패이먼트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보인다. 특히 ‘고마움’을 표현하는데 넉넉한 한국 네트즌들이 있기에, 한국에서 플래터 유사서비스의 성공 전망은 다른 어떤 나라에서보다 높다.

‘작은 물줄기가 모여 큰 강물을 이룬다 Many small streams will form a large river’는 말 처럼, 수많은 작은 펄럭거림을 통해 우리 소비자들과 우리 생산자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때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의 기초가 탄생한다.

(추천) 세상은 그리 넓지 않다: six degrees of separation

세상은 얼마나 클까? 트위터에 푹빠진 우리들의 사회관계망 크기는 어떻게될까? 지구 한 편에 살고 있는 ‘나’와 반대 편에 살고 있는 ‘너’는 사회관계망 속에서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처음으로 학술적으로 답한 사람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위키정보)이다.

그의 ’6단계 분리(six degrees of separation)’ 가설(!)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시, 공간적으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들 사이에 있는 인간관계망 6단계를 거치며 서로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이 ’6단계 분리’ 이론은 ‘작은 세상 현상(small world phenomen 또는 small world paradigm 위키정보)’ 가설과도 연결된다.

영국 BBC2에서 최근 이를 42분짜리 다큐멘타리 영상으로 제작하였다. 특히 이 ‘작은 세상 현상’ 이론이 웹/소셜 미디어에 적용될 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소상히 다루고 있다. 영어도 쉬운 편이다.

Documentary unfolding the science behind the idea of six degrees of
separation. Originally thought to be an urban myth, it now appears that
anyone on the planet can be connected in just a few steps of
association. Six degrees of separation is also at the heart of a major
scientific breakthrough; that there might be a law which nature uses to
organize itself and that now promises to solve some of its deepest
mysteries.

아이팟 터치, 아이폰용 어린이 동화책: Mother Holle

MCB(Mobile Children’s Books)라는 독일회사(?)에서 아이폰, 아이팟 터치용 어린이 동화책을 ‘무료’로 선보였다. iTunes의 검색에서 MCB Frau Holle라 입력하면 해당 앱을 내려받을 수 있다. 기본 언어는 영어로 설정되어 있으며, ‘설정’에서 자막 유무, 영어/독일어 등 언어 선택이 가능하다.

아이북스에서 판매될 또는 무료로 제공될 동화책의 초기(!) 형태가 아닌가 싶다. 아래 동영상은 아이팟 터치나 아이폰이 없으신 분들을 위해….

It’s my time: 웹으로 온 베네통 캐스팅 쇼의 오만함

이탈리아에 살며 블로깅하는 한 독일 블로거를 통해 얻게된 정보다 (블로그 보기).

오는 2월8일부터 베네통은 2010년 가을/겨울 컬렉션 모델을 뽑는 웹 캐스팅 쇼를 진행한다고 한다. 이번 웹 캐스팅 쇼의 제목은 It’s my time! 이를 홍보하는 3편의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앗, 한국사람이다. 먼저 감상해 보자.
누구나(?) 유튜브를 통해 지원할 수 있고, 지역예선을 통해 선발된 100명의 후보들은, 최종 20명이 선발되는 행사가 열리는 뉴욕행 비행기표를 얻게된다고 한다. 지역예선 정보는 여기 페이스북을 참조하시라. 100명의 후보 또한 웹 사용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고 한다.
뉴욕에 가보고 싶은 사람, 아니 이 참에 베네통 모델이 되고 싶은 사람 지원하시라.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 이번 캠페인은 이른바 ‘소셜 미디어 마케팅’의 세례를 받은 베네통 마케팅 팀에서 고안해 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재까지 유튜브에 나온 모델 후보 동영상-사실 선전용이다-은 3개.
1. 베네통은 소셜 미디어 사용자를 마치 사회 비적응자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랩퍼(rapper)나 태권도 사범을 사회 비적응자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위의 동영상들에 소개된 후보들도 나름 괜찮다. 그런데 페이스북에서, 트위터에서 노닥거리는 우리네들을 너무 튀는 사람으로 묘사한 그 주류세대의 시각이 난 어찌 못마땅하다.
2. 왜 하필 이른바 제3세계-앗 미안, 한국은 이제 아닌가^^- 출신들로 홍보용 동영상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왜 ‘뉴욕’을 강조할까? 뉴욕 5번가에서 쇼핑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꿈인줄 알고 있나?
기업들의 웹 마케팅 시도, 개인적으로 환영한다. 그리고 베네통의 이번 캠페인은 아마 성공할 것이다. 그런데 뭔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원래 그런건가?
한국에서는 블로거를 뉴욕에 보내자. 혹 민노씨는 어떨까? 앗,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