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읽을 거리(1): 기자는 없다

6월 30일, 제프 자비스 “기자는 없다 There is no journalists”

  • 스노든(Snowden)이 프리즘(Prism)을 폭로하는 과정을 함께한 영국 가디언 블로거 글렌 그린왈드(Gleen Greenwald)의 역할과 관련된 논쟁이 한창이다. 논쟁의 핵심 질문은 “기자란 무엇인가”이다.
  • “블로거가 기자를 대체할 수 있는가?” 또는 “기자는 없다” 등은 나름 오래된 논쟁이며 동시에 전통? 기자들에게는 다소 불쾌한 논쟁이다.
    • 자비스는 이 글에서 이 논쟁은 그만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 그는 저널리즘은 더 이상 편집, 전통적인 기사 형식에 얽매여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  그는 ‘저널리즘에 대한 재정의’에 집중하고 있다. “So then what the hell is journalism?”이라는 자문에 “It is a Service. It is a service whose end, again, is an informed public. … Journalism helps communities organize their knowledge so they can better organized themselves.” 그는 저널리즘을 콘텐츠의 ‘생산’이 아닌 공중 및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 및 지식 전달의 ‘서비스’로 정의하고 있다.
  • 자비스의 이번 글에는 글렌 그린왈드의 역할 논쟁으로 다시 확대되고 있는 ‘기자 정체성 논쟁’에 대한 유익한 링크들이 포함되어 있다.

 

7월 1일, 프레더릭 피유(Frederic Filloux)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데이터 저널리즘 Data Journalism is improving – fast”

  • 프레더릭 피유는 프랑스 블로거로서 현재 영국 가디언에 글을 싣고 있다.
  • 이 글에는 최근 진행된 데이터 저널리즘 프로젝트들이 소개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로이터의 Connecting China 프로젝트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
  • 피유는 데이터 저널리즘의 최근 경향을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1. 데이터 저널리즘은 매우 강력한 스토리텔링 수단이다.
  2. 데이터 저널리즘은 전통 저널리즘이 다루었던 경제 및 사회 주제와 관련된 ‘전통 통계 보도’를 넘어서고 있다.
  3. 데이터 저널리즘의 다양한 도구들이 매우 단순해지고 있다.

독일 일간지 Frankfurter Rundschau 폐간

독일생활에서 처음으로 정기구독했던 일간지는 Frankfurter Rundschau다. 3년간 정기구독을 했으니 나에겐 독일사회에 대한 시각을 갖게해준 고마운 신문이다. 특히 학부 생활의 지루한 일상을 이겨내는데 한없는 도움이 되었다. 그 이후 다른 일간지로 정기구독을 바꾼 뒤에도 종종 Frankfurter Rundschau 주말판 등을 구매하였다.
정치적 입장으로는 사민당 좌파 정도에 해당되는 Frankfurter Rundschau에서 좋아했던 지면 중 하나는 Dokument다. 사회적으로 쟁점에 되는 주제를 다룬 (작은) 논문을 요약해서 광고 없이 한면 빼곡하게 담아내는 지면이다. 한겨레 21 통신원 시절에는 주요 사회쟁점을 정리하게 위해서 Frankfurt Rundschau의 Dokument를 가장 먼저 찾곤 했다.

이 ‘일간지’가 이제 곧 사라지고 온라인 판만 남게 된다고 한다. 좋아했던 일간지가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일간지의 폐간 또는 뉴스위크 같은 주간지의 폐간 소식을 접할 때면 그 원인은 아래에서 찾아지곤 한다.

  1. 인터넷 사용자의 이른바 ’공짜 좋아하는 문화’
  2. 종이신문/주간지 광고주가 온라인을 선호
  3. 경영진의 무능력
  4. 경영진은 낮은 (미래) 투자
  5. 신문독자의 시간을 빼앗아가는 스마트폰의 확산

그러나 ‘일간지’라는 ‘저널리즘 구조’는 그 원인으로 지적되는 경우가 드물다. 언론사의 태블릿 또는 스마트폰 앱이 유행하자 ‘일간지’를 심지어 1대1로 앱에 옮겨 놓았을 때도 이에 대한 비판은 찾기 쉽지 않았다. 다만 스마트폰에서도 포털 중심의 뉴스소비가 강세라는 푸념만이 있을 뿐이없다. 이러한 사고에는 ‘전달매체’로서 종이의 기능이 힘을 잃고 ‘전달매체’로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이는 독자들이 ‘일간지라는 구조’로부터 빠져나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일간지들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고 일부 일간지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온라인을, 디지털 미디어를 저널리즘의 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

뉴스의 미래 1: 저널리즘의 위기

신문산업이 몰락의 길로 본격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신문 소멸과정에서 이를 대체할 디지털 저널리즘과 관련된 새로운 산업모델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저널리즘 전체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저널리즘은 경제 시스템 및 조직 시스템에서 작동한다. 시스템은 변화하기 마련이고 때론 위기에 직면하면서 ‘전환(transformation)’ 과정을 겪는다. 여기서 관심을 집중해야할 부분은 종이매체냐 온라인이냐, 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 등의 전략선택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조응하는 저널리즘 시스템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조직문화투쟁의 실패: 종이신문 기자 중심의 무늬만 개혁

신문산업의 위기와 관련하여 다양한 주장과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통합 뉴스룸,  모바일 우선 전략, 소셜 미디어 편집팀, 비뇨기과 광고 없는 뉴스사이트, 온라인 뉴스팀 강화 등등. 이러한 고민과 실천에도 변화하지 않는 그 무엇이 한국 언론사 조직내에 존재한다. 바로 ‘종이신문 기자’의 권력독점이다. 언론 ‘기업’의 주요요직은 기자의 몫이며 온라인 뉴스 비즈니스 책임자도 종이신문 기자출신이 차지한다. 신참 기자의 눈에도 이는 자연스럽다. 자신들의 ‘미래 밥그릇’을 선배(!) 기자들이 지켜주기 때문이다. 온라인 뉴스팀 주요역할은 종이신문 기자가 생산한 기사를 포털, 뉴스사이트, 트위터 및 페이스북으로 확산시키는 일과 낚시성 기사로 포털 트래픽을 극대화하는데 놓여있다. 다시말해 뉴스룸 통합 여부와 관계없이 온라인 뉴스팀은 종이신문 기자의 하위집단에 머물고 있다. 홍보성 기사에 기초한 휴가성 해외취재도 종이신문 기자의 몫이고, 가뭄의 단비처럼 찾아오는 기자해외연수 프로그램의 수혜는 대부분의 경우 종이신문 기자가 가져간다. 월급 차이는 물론이고 시간이 지날 수록 강화되는 ‘자존감 상실’은 (온라인) 저널리즘의 혁신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경영진과 온라인 조직이 함께 싸워야

최근 영국 가디언은 ‘열린 참여 저널리즘(참조)’이라는 기치아래 조직질서를 재편하고 있다(참조). “The Guardian: Web. Print. Tablet. Mobile.”은 외부용 선전문구 뿐 아니라 현재 가디언의 권력구조를 대변하고 있다. 조직내 권력질서에 대한 재조정없는 저널리즘 방향 재편은 불가능하다. 조직문화 및 조직질서의 변화는 저널리즘 혁신의 시작이요 주요 결과물이다. 니만저널리즘연구소(NJL)가 최근 주장한 것 처럼(참조), 아래로부터의 개혁 또는 종이신문 편집국 등 기자 상부조직으로부터의 개혁만으로 저널리즘 혁신은 불가능하다. 디지털 저널리즘 혁신을 주도하는 세력이 존재해야하며 이를 강력하게 지원하는 경영진 등 두 개의 조건은 ‘디지털 전환’의 전제조건이다. 때문에 아래 그림의 ‘문화 투쟁 실패’는 한국 저널리즘 위기의 핵심 이유다. ‘권력 의지’ 없는 개혁의 성공 사례를 역사에서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보 접근성이 경쟁력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1990년대까지 32권 분량의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을 소유한 사람 또는 일상적 접근권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개인의 지식 범위 또는 정보 범위에서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다. 1990년대까지 좋아하는 뮤지션의 앨범을 ‘모두’ 구매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음악에 대한 이해 수준에서 부정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했다. 그러나 위키피디아가 지식문화를 멋지게 혁신한 이후 백과사전에 대한 접근권과 각 개인의 지식 또는 정보 능력 사이의 상관 관계는 사라졌다. 앨범이 아닌 ‘개별 곡 구입’이 가능해진 아이튠즈 혁신과 유튜브, 스포티파이 등 (저렴한) 음악 스트리밍서비스의 대중화는 음악 접근권에 기초한 음악 취향의 차이를 사라지게 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취재원 및 취재처 접근권의 차이에 따른 저널리즘의 경쟁 우위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제이 로젠(Jay Rosen)이 최근 영상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디지털 기자에게 필요한 것은 취재처에 대한 수직적 네트워크가 아닌 사용자,  취재처 등에 대한 수평적 네트워크다(동영상 보기). 위 그림에 표현된 ‘기자 전문성 위기’는 사라지는 (종이)매체에서 글쓰기에 익숙한 기자에 대한 다양한 위협 요인을 묘사하고 있다.

약점의 연결: 신문 수익성 악화와 기업 홍보 기능의 강화

종이신문의 광고 효과가 급감하면 자연스럽게 광고 매출이 줄어든다. 광고 매출이 줄어들면 경영진과 편집국에는 위기의식이 강화된다. 정상적인 경영조직은 매출감소가 일시적 현상인지 구조적 현상인지를 구별하고 전자의 경우 비용절감을 시도하고 후자의 경우 새로운 수익원을 모색한다. 그런데 문제는 구조적 위기에 따른 새로운 수익원 발굴이 한국 대형 언론사의 경우 (공)기업,  대학교 및 관공서에 대한 홍보성 기사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홍보성 기사가 언론 비판정신 실종과 신뢰도 상실로 이어지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수순이다.

(출처: factoll.com)

시스템 위기와 디지털 전환

한국 저널리즘은 경제성 위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저널리즘 개혁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면서 신문산업 위기를 넘어 저널리즘 시스템 전체의 위기와 직면하고 있다. 탈진 상태에 빠져든 일선 기자 그러나 이들에게 계속되는 ‘신문기자’ 특권의식. 겉으로는 변화에 수긍하나 조직개혁에는 단호히 저항하며 자기 잇속에 환한 등불을 밝혀둔 부장급 이상의 간부들. 포털 낚시성 기사 생산과 조직내 차별 문화로 자존감을 빼앗긴 온라인 뉴스편집국 ‘직원들’. 디지털 비즈니스에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기 보다는 부동산, 전단광고 등 손쉽게 현금을 만질 수 있는 단기수익 사업에 집중하는 경영진. 추천하고픈 저널리즘스쿨 하나없이 ‘언론홍보 특수 대학원’ 만들어 돈벌기 바쁜 대학. 어디를 둘러보아도 한국 저널리즘 시스템에서 가슴을 뛰게하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어쩌면 바로 이러한 시스템 위기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뉴스의 미래’는 태어날지 모른다. 리부팅이 불가능하다면 교체가 답이다.

아기돼지 3형제와 영국 가디언의 열린 저널리즘

아기돼지 3형제와 늑대에 대한 동화가 있다. 볏짚 또는 나무로 쉽게 집을 지은 돼지들은 그 만큼 쉽게 늑대에게 공격을 당하지만 벽돌로 꼼꼼하게 땀을 흘리며 집을 만든 돼지는 늑대의 공격을 이겨낸다는 근면과 성실한 노동을 강조한 자본주의 초기 사회상을 반영한 동화다.

(출처 보기, CC-BY)

아기돼지 3형제와 늑대의 이야기가 영국 가디언에 의해 새롭게 각색되었다. ‘사악한 늑대’를 처형한 돼지 3형제가 법정에 섰다. 돼지에 의한 ‘늑대 살인’은 시대를 뒤흔든 사건이다. 영국 가디언은 독자 및 사용자들과 함께 이 사건을 취재 및 보도한다. 뉴스사이트와 유튜브를 통해 재판과정에 대한 현장 보도가 이뤄지며 기자들과 독자/사용자의 집요한 질문들이 이어진다. 이번 사건은 돼지들의 정당방위가 아니라, 그 뒤에는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는 이른바 음모론도 제기된다. 기자들과 사용자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심층취재에 뛰어들고 중간 중간 서로의 정보를 블로그, 트위터 및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고, 공유된 정보는 ‘오픈소스’ 형식으로 가디언 뉴스사이트에 통합되어 공개된다.

가디언과 독자/사용자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보험금을 노린 돼지 3형제의 ‘보험 사기극’이다. 죽은 늑대는 ‘천식(asthma)’을 앓고 있었다. 따라서 입으로 바람을 일으켜 볏짚과 나무로 만든 돼지들의 집을 부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렇게 돼지들에 의한 보험 사기극이 알려지자 국민저항이 일어난다. 거리로 나선 국민들은 영국의 보험 및 금융시스템의 개혁을 요구한다. 이 현장에도 가디언과 사용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홍보) 동영상을 통해 영국 가디언은 최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열린 저널리즘(Open Journalism)’을 보다 쉽게 알리고자 한다(동영상 보기).

뉴욕타임즈와 함께 저널리즘 혁신을 이끌고 있는 가디언의 이번 홍보영상은 뛰어난 창의성을 자랑하고 있다. 수익 모델의 결여 등 많은 비판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열린 저널리즘’을 추구하고 있는 가디언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 가디언의 열린 저널리즘 프로젝트 보기

(특히 편집장 Alan Rusbridger의 “Journalists are not the only experts in the world” 영상 추천)

저널리즘 혁신을 위한 5개 테제

아래는 지금까지 베를린로그를 통한 고민, 블로거와 종이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와의 논쟁에서 얻은 성찰 그리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온라인 편집인, 기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느낀 그들의 열정을 ‘저널리즘 혁신을 위한 5개 테제’로 정리한 것이다.

아직 테제를 정리하기에 (한국) 저널리즘과 저널리즘 비즈니스에 대한 본인의 이해도와 경험 깊이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러나 점차 몰락해가는 신문산업을 안타까워하며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오늘도 읽고 보고 쓰고 조사하고 연결하고 새롭운 구성을 시도하는 많은 이들에게 보내는 작은 연대의 손길로, 저널리즘 미래에 대한 논쟁 초대장으로 아래의 테제를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1. 아날로그 저널리즘의 시대는 끝났다. 그리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날로그 미디어가 빠르게 힘을 잃어가고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매우 진부하다. 그러나 곳곳에서 그리고 드물지 않게 미디어의 질/품격(quality)과 전달체-예: 종이신문- 사이에 인과관계(causality)가 존재한다는 입장을 담은 글을 만날 수 있다. 미디어 내용과 전달체를 불가분의 관계로 보는 이러한 주장은 LP에 또는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된 음악이 디지털 음악보다 훌륭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논리적으로 동일하다. 이렇게 ‘특정 전달체’를 옹호하는 주장은 아날로그 매체에 오랫동안 종사한 기자 또는 아날로그 매체에 종사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유지, 확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기자 초년생에게서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그러나 ‘하나의 특정 전달체’를 옹호하는 것은 결국 ‘다른 전달체-예: 온라인-’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한국 온라인 저널리즘이 시작된지 15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온라인 편집국 출신이 언론사 전체-다시말해 종이신문-의 편집국장이 된 사례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것, 잘못된 인식에서 오는 차별구조 때문이다. ‘기수 중심’의 언론사 조직 문화 또한 차별구조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이러한 조직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특정 전달체-종이-’에 대한 물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2. 비판적 온라인 커뮤니티와의 접점을 통해 저널리즘은 존재한다.

저널리즘 미래는 온라인에서 구현될 것이다. 저널리즘이 제4의 권력(the fourth estate)으로 인정받아 왔다면, 비판적 온라인 커뮤니티는 제5의 권력이다. 모든 시민이 온라인을 통해 공적인 목소리 내고 있다. 대학교 졸업장과 무관한 사람들이 전문가로서 위키피디아에 참여하고, 방송허가를 받지 않은 사용자들이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을 제작, 유통시키고 있다. 블로거는 편집국이란 조직과 무관하게 자신의 관심/전문 분야에서 글을 쓰며 블로그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있다. 트위터를 통해 이른바 아마추어 사용자가 전문 기자들과 경쟁하는 상황 또한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고 저널리즘이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공적 생산구조 및 소통구조의 ‘하부’에 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빠른 시간내로 저널리즘과 위의 새로운 형태와의 구분이 사라질 것이다. 철저하고 깔끔한 조사능력, 주관적이나 투명한 글, 주요 소재를 선별하는 식견 등 지금까지 보여준 저널리즘의 긍정적 측면은 앞으로도 더욱 필요하다. 전문 능력과 지식을 갖춘 기자 그리고 현명한 기자는 앞으로 블로그라는 매력적인 표현수단 및 네트워크수단을 자기 것으로 만들 것이다. 전문 기자가 블로그를 통해 비판적 온라인 커뮤니티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고 그리고 그 안에서 기자가 영감을 받게될 때 비로소 양질의 저널리즘은 다시 꽃을 피울 수 있다. 기자가 거대한 윤전기, 막대한 비용이 드는 종이신문 유통체계 그리고 술과 학연으로 얽히고설킨 출입처 관계망을 벗어던지고 온라인 네트워크의 바다에 뛰어들 때 비로소 새로운 저널리즘은 시작될 수 있다.

 

3. 신규 투자와 경제적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없다면 양질의 저널리즘도 없다.

많은 이들이 ‘온라인 뉴스 사업은 돈만 들지, 이를 통해 기자가 먹고 살만한 충분한 돈을 벌어들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가능한 모든 것을 다 시도해 본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유효했던 종이신문의 비즈니스 모델을 조금 변형한 일렬의 실험을 해보았을 뿐이다. 더욱이 성인사이트를 방불케 하는 온라인 한겨레를 볼 때면 이러한 실험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뉴스에 대한 사용자의 지불의사가 온라인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온라인 사용자가 갑자기 도덕성을 상실하고 공짜만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정확하게는 뉴스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온라인에서 크게 변화하였다. 음악산업에서 앨범 판매가 크게 줄어든 것 처럼-앨범 판매의 경제적 의미는 사실상 사라졌다-, 뉴스 및 기사를 묶음(bundling)으로 공급 및 판매하는 것은 온라인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소비자가 앨범을 구매하지 않는다고 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듯 뉴스 및 기사에 대한 소비는 여전히 존재한다. 열성적인 팬을 예외로 한다면 앨범 전체 중 좋아하는 곡 수가 반 정도 수준일 때 해당 앨범을 사는 일은 이제 없다. 저널리즘의 생산물이 시장에 다른 방식-원자화-으로 공급되고 있으며, 클릭 몇 번이면 또는 좋은 관계망을 구축하고 있으면 쉽게 대체재를 찾을 수 있는 치열한 공급자 경쟁이 일반화되고 있다. 양질의 저널리즘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공급과 소비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새로운 시장이 출현한 것이다. 다만 이를 고려한 새로운 저널리즘 비즈니스 모델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온라인 저널리즘은 신문 저널리즘과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요구한다. 안타깝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러나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다양한 시도들은 세계 곳곳에 있다. 사단법인 형태의 ProPublica 또는 사회적으로 주요한 이슈에 대한 조사 비용을 시민기금(crowdfunding)을 통해 마련하는 Spot.us는 시장규모가 큰 미국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다. 일반뉴스와 연애기사의 편집조직을 독립적으로 따로 구성하고 서로 구별되는 비용구조 및 매출구조를 만들어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영국의 DailyMail은 연애기사의 트래픽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 온라인 저널리즘이 배워야할 선례이다(참조기사).

(1) 저널리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혁신, (2) 경제적 위험을 감수할 용기, 공급을 통해 어떻게 이윤을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3) 저널리즘에 대한 수요가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다.

 

4. 큐레이터(curator)가 기자의 미래상이다.

기자는 몸에 배어있는 종이신문을 보는 습관을 의식적으로 고쳐야 한다. 종이신문을 통해 자신의 기사를 확인하는 것은 ‘기사의 생산자’로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행위가 ‘기획자(curator)’로서의 자신의 과제를 잊게한다.

훌륭한 기자의 두 번째 자질은 소비를 창출할 기사의 소재를 ‘선별’하는 능력이다. 기사 제목을 잘 뽑는 기자, 저널리즘의 수요를 정확하게 읽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종이신문의 선별은 언제나 ‘다수 대중(mass)’을 고려한 선별이다. 이 선별논리를 온라인에 적용하다 보니 ‘클릭의 늪’에 빠져 버린 것이다. 해결책의 실마리는 1979년에 세상의 빛을 본 영화 “브라이언의 삶(life of Brian)”에서 찾을 수 있다. 잠시 아래 동영상 30초 쯤부터 나오는 명대사를 들어보자!

You are all individuals!

“우리 모두는 (대중이 아닌) 개인이며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의역)”

서로 다른 소비자에게 서로 다른 선별이 제공되어야 한다. 제작과 유통에 거대한 비용이 필요한 종이신문에서 개인화 서비스는 불가능하다. 종이신문에서 소비자 한 명 한 명을 위한 차별적인 선별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온라인이 이를 가능케한다. 그러나 언론사 및 방송사의 트위터 및 페이스북 계정을 보라! 종이신문의 선별 방식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구별되지 않는 대중이 그들의 영원한 소비자일 뿐이다. 자신의 생산물에만 독자를 묶어 놓으려는 낡은 선별방식은 그러나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기자 외에도 정보를 선별하는 기획자는 넘쳐난다. 바로 우리의 친구, 우리의 동료, 그리고 우리 자신이 이야기 기획자다. “너도 그 소식 들었니?”, “그 소식을 아직도 몰라?”  이러한 문장은 우리들 일상의 표현이다. 어디에 맛있는 식당이 있는지, 치과는 어디가 믿을만한지, 자동차는 어디서 어떻게 구입하는 것이 좋은지, 모 회사의 주식을 구입하는 것이 좋은지, 직장인 야구는 어디가 잘하는지 등을 물어보면 전문가 다운 답변을 할 친구와 지인을 어렵지 않게 주변에서 또는 몇 다리 건너 찾을 수 있다.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가 이러한 일상의 질문과 답변이 흐르는 구조를 변화시켰다. 트위터의 대다수 트윗이 담고 있는 내용은 “이걸 봐! 너에게도 재미있을거야!”, “이걸 봐! 너도 관심이 있을거야!”, “이걸 봐! 네가 찾던 거야!” 등 이다. 관심있는 블로그를 RSS리더로 구독하는 것, 바로 개인화 서비스의 시작이었다. 뉴스 개인화 시장이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이패드의 Flipboard, Zite, Pulse 등을 사용해 보지 못한 것이다.

관심사가 유사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조직하는 것 또는 이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기자가 함께하는 것에서 ‘기획자(curator)’의 일은 시작된다. 2009년 영국 가디언은 50만 개가 넘는 국회의원 월급 사용처 자료를 1차로 검토할 커뮤니티를 구성하였다. 독일의 한 커뮤니티는 차기 총리로 유력했던 국방부 장관의 박사 논문을 한 문장 한 문장 뜯어 보며 다른 논문을 베끼지 않았는지를 검토하였다. 이 과정에 다수 언론사 기자들이 커뮤니티 일원으로 참여하였고 협업을 통한 조사와 새로운 뉴스 유통구조를 창출하였다(관련 사이트 보기). (그 결과 독일 국방부 장관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자사 이기주의를 벗어난 기자의 네트워크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결합하며 서로 보완하며 힘을 발휘할 때 관련 기사의 유통 또한 가능해진다. 구별된 관심사를 가진 온라인 커뮤니티와 협업 및 네트워크를 통해 기사를 선별하고, 유통하는 것이 (미래) 기자의 핵심과제다.

 

5.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저널리즘 비즈니스 모델 가능하다.

종이신문의 생산구조 및 유통구조을 함께 먹여살릴 수 있는 온라인 저널리즘 비즈니스 모델은 세상 어디에도 없고 그리고 없을 것이다. 온라인 저널리즘 비즈니스 모델은 종이신문과 결별할 때 비로소 작동할 수 있다. (종이신문과 합산된) 매출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온라인 저널리즘의 재원을 담당하고 남는) 이윤의 크기가 중요하다.

온라인 저널리즘 비즈니스 모델은 첫째 공급자 관점을 버리고 철저히 소비자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독일 10대 및 20대 여성 뉴스 및 블로그 커뮤니티 Les Mads와 하이퍼로컬 뉴스서비스 Altona처럼 ‘수직 커뮤니티(참조보기)’에서 수익원을 찾을 수 있다. 소비자 커뮤니티를 뉴스사이트 내부에 구성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있는 곳에 찾아가서 협력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다양한 복수의 재원을 찾고, 이를 확장하고 그리고 이를 구현할 기술적 혁신능력을 스스로 갖춰야 한다. 광고 효과를 높이고 광고 타겟을 정밀화하는 기술, 지역 광고에 대한 새로운 접근 등이 필요하다. 또는 소셜 지불체계 플래터(Flattr)를 통한 새로운 수입구조도 유효하다-독일 진보언론 TAZ가 관련 사례에 속한다-.

(다양한 온라인 뉴스 비즈니스 모델은 CUNY의 자료를 참조하시길!)

셋째 링크(link)를 통한 협력 모델은 비용 절감과 성장의 동력이다. 월드와이드웹의 핵심은 ‘연결/링크’에 있다. 열린 뉴스 네트워크가 점점 커질 수록 직접 생산할 필요가 없는 뉴스/기사의 양이 증가한다. 모든 범주의 기사를 써야한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전문성을 특화하고 나머지는 링크로 해결해야한다. 재프 자비스의 “Do what you do best and link to the rest!” 명제는 전체 온라인 뉴스 생태계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비법이다.

온라인 저널리즘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 그리고 온라인 저널리즘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것! 결코 늦지 않았다. 기자는 돈과 권력에 의해 감춰진 진실을 찾아 헤매던 이들이기에, 기자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비즈니스 실험 또한 넉넉하게 담당할 수 있다.

랩이된 저널리즘

TheJuiceMedia는 최근 ‘랩 뉴스(rap news)’라는 저널리즘의 새로운 장르를 멋지게 개척하고 있는 곳이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되어 20세기 초 독일 베를린에서 꽃을 피운 정치 및 사회 풍자쇼 ‘카바레(cabaret/Kabarett)’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시 한번 살아나는 듯 하다.

TheJuiceMedia를 이끌고 있는 두 명의 재능있는 저널리스트 Hugo Farrant와 Giordano Nanni는 현재 호주 멜버른(Melbourne)에서 랩 뉴스를 제작하고 있다. 이들 2인조가 최근 위키릭스에 관련된 쟁점을 압축적으로 그리고 매우 유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참고로 아래 동영상에 출연하는 모든 정치인을 연기한 사람이 Hugo Farrant다. 또한 이번 랩 뉴스는 미국이 자랑하는(?) Fox News의 Bill O’Reilly를 탁월한 솜씨로 패러디하고 있다.

그럼 감상해 보자 (영어 자막이 나오니 두려워 마시길^^).

명예훼손 고소가 남발되는 등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된 이 땅에도 위와 같은 훌륭한 풍자뉴스가 곧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저널리즘에 대한 도전, 그대 긴장하고 있나?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영국 ‘더타임즈(TheTimes.co.uk)‘가 지난 2010년 7월 1일 유료화를 단행하였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 결과는 매우 초라하다.

1. 과거 더타임즈 기자였던 Dan Sabbagh는, 더타임즈가 현재까지 약 1만5천 명의 온라인 유료회원을 확보했고, 반면 더타임즈 아이패드 유료 앱은 12500 명의 회원을 얻었다고 전하고 있다(출처보기). 그는 이 대조적인 두 숫자에서 언론산업이 음악산업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타당한 의심을 제기한다. (불법으로) 내려받은 무료 음악파일과 애플 아이튠즈에서 유료로 구입한 음악파일로 음악시장이 양분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2. 영국 가디언도 ‘더타임즈’가 90퍼센트에 이르는 온라인 독자를 잃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출처보기).

이러한 소식을 접할 때, 이곳 베를린로그에서 ‘온라인 뉴스 유료화는 불가능하다’(예1, 예2 등)고 수없이 주장한 나는 “거봐, 내 말이 맞잖아!”라며 환호하고 기뻐했을까?

더타임즈의 유료화 전략이 90퍼센트의 독자를 앗아간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유료화로 인해 독자들의 관심이 급속하게 줄어든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유사한 수준의 내용을 전달하는 온라인 매체는, 특히 영어권에서 말그대로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이들 절대 다수는 유료가 아니다. 제한된 시간에 읽고 듣고 볼 수 있는 내용이 온라인에 넘쳐난다. 둘째, 독자는 더타임즈에서 ‘무엇을 구입해야할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유료화 담장(paywall) 뒤편에 있는 글과 그림과 동영상이 매우 훌륭한 것이라고 해도, 독자들은 이 가치를 알 길이 없다. 독자들에게 ‘인지되지 않은 가치(non-perceived value)’는 헛되고 헛된 것이다. 결코 무료 기사를 읽는 독자들이 ‘무임승차(free-riding)’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기사를 유료화 담장에 가두워 놓는 정책이 기자들의 값진 노동을 길거리에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료화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증거를 얻을 때 마다 기뻐하기에는, 기자들이 처한 현실과 괴로움이 너무나 크다.  디지털 시장에서 작동하는 시장논리를 여유있게 연구하고 저널리즘의 경제성을 사유하기에는 저널리즘에게 앞으로 남겨진 시간이 너무 짧다.

지난 7월 19일, 뉴욕타임즈는 공포와 슬픔에 잠긴 ‘젊은 기자들’의 모습을 가슴 아프게 전하고 있다(출처보기). 한국이라고 해서 다를까? 다수의 기자들이 취재원과의 끈끈한 관계를 통해 정치인, 기업인 등 미래 직업전망을 키워하고 있는 것이 한편이라면, 다른 한편에서는 소수이지만 일부 기자들이 처절하게 저널리즘의 양심과 시대적 과제를 초라한 월급수준에서도 아파하며 고민하고 있다.

2009년 11월부터 아이폰 충격(iPhone Trauma)이 한국시장에 몰려든 이후, 통신산업, 전자산업 등이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고 지난 시기에 대한 반성과 미래 산업 투자에 다시 한번 열을 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다수 언론사 편집장은, 한 명의 기자가 하루에 기사 몇 꼭지를 쓸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다. 여전히 다수 온라인 뉴스 편집장은 자사 뉴스사이트의 페이지뷰를 어떻게 올릴 수 있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여전히 기자들 중 자사 뉴스사이트가 (성인)비뇨기과광고로 도배당하고 있음을, 하여 자신의 기사를 온라인에 올릴 수 없다고 양심선언하는 기자는 단 한명도 없다. 여전히 그들 중 다수는 기자라는 ‘특권의식’이 자신을 그리고 한국 저널리즘을 병들게 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한국 저널리즘이 처한 현실이 가슴 아프고, 디지털 경제 논리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고, 새롭게 떠오르는 소셜미디어가 기자의 노동 강도만을 높일 뿐인가? 남들은 뛰고 있는데, 나는 계속 걷고만 있다고 생각하는가?

데이터 마이닝, 타깃 소비자, 저널리즘의 새로운 생태계 등 웹에서 작동하는 경제 논리가 이제야 서서히 규명되고 있다. 아이폰을 위시한 스마트폰은 앱이라는 새로운 채널을 저널리즘에 선사하고 있다. 아이패드 등 태블릿 또한 새로운 도전임에 분명하다. 웹은 더이상 저널리즘이 뜨거운 화로가 토해내는 완성된 빵(product)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웹은 저널리즘이 취재원과 독자를 연결하기를 원한다. 웹은, 취재원과 독자 사이의 지속적인 대화를 가능케하는 과정(process) 그 자체가 저널리즘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기자가 된 이유가 무엇인가? 편한 직장 얻기 위해서? 출퇴근 시간 자유로운 여유있는 노동을 위해서?

긴장을 잃지 않으며 사는 것, 안개 자욱한 현실에서 조심스럽게 방향감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기자의 몫이다. 그리고 이것이 저널리즘의 미래다. 하여 앞으로 펼쳐질 온라인 저널리즘의 다양한 도전은 흥미 그 자체여야만 한다.

온라인 뉴스 사이트의 광고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계신 연구자께서 온라인 뉴스사이트의 광고효과에 대한 조사를 하고자 합니다. 총 10분 정도 시간을 내주신다면, 좋은 연구결과가 나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온라인 저널리즘의 작은 발전을 위해 여러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제 연구는 아닙니다. 제가 설마 이런 떡밥을 던지겠어요^^)
……………………………….
본 연구는 인터넷 상의 신문 사이트의 신뢰도를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되고 있습니다.
 
다음의 온라인 신문 사이트를 3분 간 자유롭게 서핑하시며 기사를 살펴보신 후, 이어지는 설문 문항에 여러분이 생각하거나 느끼시는 대로 답변해 주시면 됩니다. 설문 완료까지는 약 5~6분 이내의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응답은 연구 목적 이외에는 어떠한 용도로도 사용되지 않을 것을 약속 드리며, 설문에 응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 주의: 문항 순서대로 응답해 주시길 바라며, 지나간 설문 문항으로 되돌아와서 수정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언론 제작환경의 변화, 독자와의 융합을 요구한다

윤전기를 멈춰라!
영화 ‘페이퍼(The Paper, 1994년 작)‘에 나오는 기자 ‘헨리’는 현직 기자 뿐 아니라 많은 기자 지망생들에게 영원한 로망이다. 잘못된 정보를 담은 신문을 인쇄하려는 언론사 사장의 의지에 맞서 주인공 헨리는, “윤전기를 멈춰라 Stop the presses!”라고 외치며 독자들에게 진실을 전달하려는 기자의 사명의식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웅변한다. 이 영화를 본 청소년 또는 대학생이 정의감에 불타 장래희망으로 기자를 꿈꾸는 것은 이 영화가 사회에 주는 멋진 선물이다. 때문에 영화 ‘페이퍼’는 대학 교양수업이나 신방과 수업에서 단골 리포트 소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 ‘페이퍼’는, 진실을 전달하려는 모범적인 기자상을 전달할 뿐 아니라, 신문의 전통적 생산방식이 어떠한지를 관객 모두에게 각인시킨다. ‘사건’에 대한 취재, 주어진 정보에 대한 의심과 검증 등을 통과한 ‘이야기(Story)’는 기자의 손을 타고 흘러내려 컴퓨터 자판에 전달된다. 컴퓨터 망을 통해 교정과 편집에 넘겨진 ‘기사’는, 편집장의 오케이 사인을 받은 이후 윤전기 앞에서 세상으로 나가는 최종 허가를 기다린다. ‘인쇄’ 버튼이 눌려지는 순간, 기나긴 제작과정을 거친 기사는 종이위의 잉크로 변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신문’이 된다. 인쇄는 이렇게 신문이라는 결과물(product)을 낳는다. 한편 신문인쇄는 기사에 보도된 사건에 진실이라는 가치를 부여하고, 윤전기의 작동은 거친 일과에 지친 기자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선사한다.
그런데 영화 ‘페이퍼’가 2010년 다시 만들어진다면 어떤 스토리를 가질 수 있을까? 여전히 ‘인쇄’를 필요로 하는 신문이 존재하지만, 이와 함께 ‘웹(web)’을 통한 기사소비가 지난 15년간 폭발적으로 증대했다. 또한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무선 웹’을 통한 기사소비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의 한 시장조사기관(GfK)의 2009년 12월 통계에 따르면, 아이폰 보급이 2년이 넘어선 독일에서는 아이폰, 블랙베리 또는 아드로이드폰 등 ‘무선 웹’을 통한 뉴스소비의 양이 ‘개인용 컴퓨터(PC)’를 통한 뉴스소비의 양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언론 환경변화는, 기사의 제작과정과 소비과정에 대해 끝없이 이어지는 다양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한번 보도된 기사의 수정은 불가능할까? 윤전기를 멈추게 하지 않더라도 ‘진실’을 알릴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제한된 지면’을 넘어 독자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진실을 전달할 방법은 무엇일까? 기사를 만들기 위한 취재노트나 동영상 녹취기록을 독자들에게 전달할 방법은 어떨까? 혹 이러한 방법은, 사건의 실체에 대한 접근보다는 정보의 범람으로 독자들에게 혼란만 일으키지 않을까? 현재 기자의 글쓰기는, 마감시간과 한정된 지면이라는 ‘인쇄를 통한 제작방식’에 지나치게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댓글을 남기는 것 이외에 웹(web)은 독자들의 뉴스소비형태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2010년 한국은,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포탈을 통한 뉴스소비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선정적인 기사제목들이 경쟁하는 포탈 뉴스사이트가 뉴스유통 및 뉴스소비의 피할 수 없는 미래일까? 모바일 웹은 뉴스소비형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애플의 ‘아이패드’을 통해 진정 포탈에 빼앗긴 독자들을 각 언론사의 뉴스사이트로 되찾아 올 수 있을까?
언론 제작방식 및 제작문화의 변화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해외 언론사들과 기자들의 크고 작은 노력들이 최근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인쇄를 정점으로 하는 뉴스 제작과정의 변화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독자 융합(convergence with readers)’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독자와 기자 또는 독자와 뉴스의 새로운 관계 맺기 시도들이다.
먼저 제작과정의 변화를 살펴보자. 2008년 7월 4일 유럽 최대 언론기업인 악셀-쉬프링어(Axel-Springer)의 최고경영자(CEO) ‘되프너(Döpfner)’가 유튜브(YouTube)에 등장했다. 그는 동영상을 통해 만여 명에 이르는 자사 직원들의 개인용 컴퓨터와 휴대폰을 애플의 그것으로 모두 교체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자사 직원들을 향한 ‘사내 방송’ 성격의 소식을 공개적으로 유튜브에 올린 것이다. 이러한 방식과 규모로 애플 컴퓨터와 아이폰을 도입하는 것은 세계 어느 기업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때문에 악셀-쉬프링어 직원 및 기자들에게 최고경영자의 공개적인 메시지는 제작 장비 교체를 넘어서는 의미로 받아졌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되프너 최고경영자는, 애플 컴퓨터와 휴대폰의 장점을 “보는 것이 이해하는 것(What to see is what to get)”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장점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다 가까이 갈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번 결정이, 사실상 ‘제작과정’의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며 이는 단순한 “기술변화가 아니라 문화의 변화”임을 강조하고 있다. 악셀-쉬프링어가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언론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는 블로그와 방송을 통해 빠르게 외부로 알려졌다. 이렇게 이 동영상은 효과적인 기업홍보 수단이기도 하였다. 이 동영상이 공개된 2008년 여름 이후 악셀-쉬프링어 소속 언론사들에서는 예상 밖의 커다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편집국 기자를 제외하고 모든 기자에게 자사 ‘신문’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신문접근 제한 조치는, 기자들이 자신이 쓴 기사를 웹을 통해서 확인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기자들이 ‘마감시간’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벗어나게 돕고 있다. 한편, 신문지면 구성에 대한 편집국 회의는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외부로 전달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면의 빈 공간을 채울 몇 가지 기사들이 후보군에 있다. 독자들에게 어떤 사건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할까 고심하는 편집진들의 모습이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외부로 흘러나간다.
또 다른 변화는, 초소형 동영상 녹화기와 아이폰을 통한 이른바 ‘모바일 저널리즘’의 시작이다. 2009년 하반기부터 악셀-쉬프링어 소속 일간지 ‘빌트(Bild)’, ‘벨트(Die Welt)’ 등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초소형 동영상 녹화기인 플립(Flip)과 동일한 기능의 녹화기를 중국에서 자체 주문·제작하여 모든 기자들과 시민기자들에게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기자가 취재 중에 만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동영상으로 제작되어 관련사건 기사에 추가된다. 쟁점 사안에 대한 ‘찬반’의 목소리가 동영상 형식으로 댓글처럼 달리기 시작하고, 각 동영상은 ‘링크’와 ‘임베드’ 기능을 통해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과 서로 연결된다. 이러한 악셀-쉬프링어가 진행하고 있는 언론 제작방식 및 제작문화의 변화가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을지 쉽게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이는 1만 여명의 직원을 가진 한 거대 언론기업의 더 이상 과거로 되돌릴 수 없는 자기혁신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악셀-쉬프링어와 유사한 언론 제작방식 혁신실험은, 최근 미국에서 본격화되고 있는 다양한 ‘하이퍼로컬 뉴스(hyperlocal news)’ 프로젝트들에서 찾을 수 있다. ‘엘에이 타임즈(L. A. Times)’와 ‘유에스 로컬 네트워크(U.S. Local Network)’는 지난 1월 지역뉴스, 지역 블로그, 지역광고 그리고 모바일 위치기반 서비스를 연결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 또한 뉴욕시대학교 언론대학원(City University of New York’s Graduate School of Journalism) 학생들과 함께 “The Local”이라는 유사한 서비스의 닻을 올렸다. 나아가 뉴욕 타임즈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모바일 위치기반 서비스인 ‘포스퀘어(Foursquare)’와 공식협력을 시작하면서 지역의 독자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언론모델들을 실험하고 있다.
‘하이퍼로컬 뉴스’는, 지역 주민, 지역 뉴스 그리고 지역 광고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 뿐 아니라, 동일 사건 또는 동일 지역에 시간의 차이를 두면서 끊임없이 추가되는 정보들을 ‘하나’의 뉴스단위로 종합하는 방식을 통해 뉴스 제작방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독자 네트워크와 뉴스의 융합
윤전기를 통과한 신문은 정보와 기자 그리고 독자로 양분된 세계를 이어주는 훌륭한 소통의 끈이다. 수많은 사건과 정보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지면에 멋지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독자는 이를 통해 ‘어제’의 세계를 보다 깊고 폭넓게 이해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이렇게 신문은 그 나름의 독특한 제작방식과 이에 기초한 독자와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편 ‘웹(web)’은, 신문 제작 및 소비문화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뉴스와 독자의 새로운 관계를 강제하고 있다. 독자들은 서로 다른 뉴스사이트의 기사들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주소창에 뉴스사이트 주소를 입력하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등 나름 수고를 들여야 하는 ‘기사 비교’를 손쉽게 해 준 것은 포탈의 뉴스서비스다. 한편 독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댓글이라는 형식으로 관련 기사에 첨가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기사와 독자 사이의 대화가, 하나의 기사를 매개로 독자와 독자 사이의 대화로 발전한다. 동감을 주는 댓글에 환호하고, 반감을 주는 댓글에 으르렁거린다. 이렇게 같이 기뻐하고 서로 싸우면서 독자들은 어느새 그들 스스로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페이스북(facebook)을 통해 ‘뉴욕 타임즈’의 뉴스를 함께 즐기는 ‘팬(fan)’들이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지난 여름 ‘가디언(Guardian)’에서 이란 대통령선거 보도를 보며 댓글을 통해 울분을 함께하던 독자들은 페이스북에 ‘자유 이란 free iran’이라는 또 다른 ‘팬 클럽’을 탄생시킨다. 이 곳에는 다양한 출처의 이란 관련 뉴스들이 모이고 회원들의 토론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트위터(twitter)의 지인들(following)이 추천하는(retweet) 기사들만 읽어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읽을거리는 넘쳐난다. 아이폰으로 대변되는 스마트폰은, 이러한 독자들의 ‘네트워크 중심’ 뉴스소비형태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포레스터(Forrester)에 따르면, 미국 성인 남녀 중 약 16퍼센트가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소비를 하고 있다. 애플 앱스토어(AppStore)에 경쟁적으로 뉴스사이트 앱들이 제공되고 인기를 끌고 있지만,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모바일 앱을 거친 뉴스소비를 따라잡고 있지는 못하다. 이러한 뉴스사이트 외부에 형성되는 다양한 ‘독자 네트워크’에 다가가는 전략을 훌륭하게 전개하는 곳은 뉴욕 타임즈다. 뉴욕 타임즈는, 페이스북에서 약 54만 명의 팬들과 함께 자사의 뉴스를 매개로 대화하고 있으며, 트위터에서 약 240만 명의 독자(followers)들과 연결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뉴욕 타임즈와 포스퀘어(Foursquare)의 협력은, 모바일 위치기반 서비스에도 새로운 독자 네트워크를 형성하겠다는 뉴욕 타임즈의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모바일 중심 Mobile First
지난 2월 18일 끝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0′에서 구글 최고경영자(CEO) 에릭 슈미트가 던진 올해의 화두는 “모바일 중심(Mobile First)”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발머가 자사의 새로운 모바일 운영체계인 ‘윈도폰7′로 세계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면, “개인용 컴퓨터(PC)시대가 끝나고, 모바일 시대가 왔다”는 구글 슈미트의 선언은 새로운 인터넷 환경에서 생존 및 발전전략을 고민하는 세계 언론기업들을 향한 뜻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매년 30퍼센트씩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스마트폰 시장의 확대는 모바일 웹 소비의 폭발적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슈미트 구글 최고경영자도 “정확히 3년 이후에는 개인용 컴퓨터보다 스마트폰이 더욱 많이 팔릴 것이다. 또한 개인용 컴퓨터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 보다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라는 말을 통해 구글의 기업환경 변화를 진단했다. 때문에 “구글의 모든 프로그래머들은 앞으로 모바일 서비스 개발에 우선권을 둘 것이다”로 구글의 새로운 기업전략을 예고했다. 구글의 모바일 중심 기업전략, 세계 모든 언론기업들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지난 10년의 언론환경이 신문에서 웹으로 빠르게 변화했다면, 앞으로의 10년 또한 이에 못지않은 속도와 규모의 변화가 언론기업과 기자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 위의 글은 ‘관훈저널 2010년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

가진 자의 여유: 구글의 패스트 플립(Fast Flip)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쏟아내는 구글(google)을 보노라면, 마술사의 마술모자가 떠오른다. 알록달록 빛깔을 뽑내는 사탕이 나오고, 하얀 백색의 비둘기가 파드닥 날개를 치기도 한다. 그리고 겁먹은 모습이 더욱 귀여운 토끼가 마술모자 밖으로 모습을 보이면 마술사에 대한 박수는 절정에 이르곤 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관객들이 선사하는 박수는 신기하고 즐거운 마술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술사를 위함이다. 관객들이 착각해서 ‘저 토끼를 마술사가 내게 선물로 주는거야’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바로 이 마술모자에서 나온 ‘토끼’가 구글의 ‘패스트 플립(Fast Flip)’이다. 토끼는 마술도구에 불과하듯 ‘패스트 플립’은 뉴스생산자들에게 1) 구글의 혁신능력을 자랑하는 수단이며 2) 구글이 뉴스생산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팬 서비스 도구’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종이느낌’은 인터넷 매체의 특징이 아니다.
신문이나 잡지를 넘기는 것 처럼 뉴스를 하나씩 넘기면서 본다는 것이 ‘패스트 플립’의 핵심이다. 그러나 관심가는 뉴스를 소비하기 위해 ‘클릭’을 하면 ‘구글 뉴스’나 ‘네이버 뉴스캐스트’처럼 해당 온라인 뉴스사이트로 이동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신문에 익숙했던 사람, 아직도 신문에 익숙한 사람에게 ‘야 멋지다’라는 탄성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종이신문 느낌’은 이른바 ‘본 디지털(Born Digital) 세대’에게 큰 의미가 없다. 많이 양보해서 ‘패스트 플립’은, 1.1. 이미지가 소비자 관심을 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하는 ‘잡지/매거진’의 뉴스/기사를 소개하는데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또는 1.2. 아이폰이나 아이팟 터치 등 ‘넘기는 재미’를 육체적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기에서 ‘패스트 플립’은 의미가 있다 (모바일 형태 보기).

2. ‘수익을 나눈다’는 위로: 위로는 위로일 뿐!
현재 약 40여개 업체들이 ‘패스트 플립’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참조 보기). 광고 수익은 구글과 뉴스생산자들이 나누어 가진다고 한다. 구글의 이러한 전향적인 자세에 뉴스생산자들은 감동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이러한 양 진영간의 노력을 크게 환영한다. 그러나 구글은 뉴스생산자들에게 ‘인터넷의 미래’에 대한 ‘허상’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의 미래는 결코 ‘인쇄된 종이제품’을 모방하는 것에 있지 않다! 이를 구글이 모를리 없다. 구글이 진정으로 생각하는 혁신 서비스(예: 개인적으로 기대가 많은 Google Wave)에서 뉴스생산자와 협력모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구글은 독점적 시장지배력-예: 구글의 독일 검색시장 점유율 98%-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혁신을 이뤄내는 독특한 기업이다. 일반적으로 ‘경쟁’이 줄어든 시장에서 ‘혁신’이 지속된다면 그 시장을 건강하게 판단한다. 그러나 여기서 혁신은 ‘진짜’ 혁신이어야 한다. 진정성이 없는 혁신은 잘못하다가는 ‘시장 왜곡’에 대한 비판을 더욱 거세게 할 수 있다. (온라인) 뉴스생산자는 현재 한가롭게 ‘마술 서비스’를 구경할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