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제네시스와 포르쉐 페이스북 마케팅의 차이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 신형 모델 출시를 홍보하기 위해 진행한 페이스북 마케팅이 화제다. 지난 11월 1일 시작된 이벤트에서 현대자동차는, 제네시스에 대한 4행시를 댓글로 남기면 그 중 5명에게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당첨상품으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당첨자를 알리는 게시물에는, 1위 당첨작품이 잘못되었다, 1위 당첨작이 삭제되었다 등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겨레신문은, “현대차, 제네시스 ‘4행시 이벤트’ 했다가 ‘곤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벤트 참여작품 중 싼타페 누수 논란, 해외 구매자 대비 국내 소비자들에 대한 차별 등 현대자동차에 대한 불만을 담은 내용에 이용자들의 관심이 몰렸다고 보도하고 있다. 또한 이용자의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게시물인 ”: 네시스에서 또 물이새네요, : 현대차는 그렇게 타는겁니다, : 속 80키로로 박아도 에어백 안터져요, : 스로 호구 인증하셨네요 호갱님”이 삭제되었음을 주장되고 있다. 이벤트 참여 게시물을 잠시 살펴보아도 현대차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주를 이르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페이스북 마케팅과 관련하여 몇가지 교훈을 찾아보자.

첫 째, 2005년 6월 ‘Dell Sucks’ 사건과 이를 해결하려는 델의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 2005년 제프 자비스는 자신의 블로그에 “Dell lies, Dell sucks”라는 짧은 글을 통해 컴퓨터 판매사인 델의 고객서비스가 매우 불친절함을 비판한다. 그의 글에 대해 유사한 경험을 가진 소비자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몇 명의 사람들이 댓글을 통해 공감을 표현했고, 곧 이어 수십 명의 블로거가 유사한 글을 썯고, 이어서 수 천의 사람들이 서로의 글을 퍼나르기 시작했고, 이내 수 백만의 사람들이 “Dell sucks”에 공감을 표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제프 자비스의 글은, 구글에서 ‘Dell’을 입력할 경우 가장 상위에 위치하게 되었다. 2005년 8월 비즈니스위크를 시작으로 빈번한 제품 결함과 형편없는 고객서비스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다. 그 이후 Dell의 창업자이자 CEO인 마이클 델은, 불만을 표현하는 고객을 직접 만나는 일부터 시작하여 Dell의 품질 개선을 비롯 고객서비스 혁신, 기업블로그 Direct2Dell 운영, 고객의 의견을 받는 IdeaStorm라는 독립 웹사이트 도입 등에 직접 참여한다. 그 이후 Dell의 서비스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논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현재 형성되고 있는 현대자동차에 대한 고객들의 불만과 실망은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미 자동차 커뮤니티, 블로그, SNS 그리고 언론 등에서 현대자동차 품질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고, 그에 못지 않은 현대자동차의 거만한 자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이번 제네시스 4행시 사건이 결코 마지막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그린피스와 네슬레 사건의 교훈: 소셜 미디어가 바꾼 힘의 관계“와 유사한 사건이 현대자동차에게도 찾아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이번 제네시스 4행시 사건은 현대자동차 페이스북 마케팅 담당자의 책임도 아니며, 담당자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둘째,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한국기업 페이스북 마케팅의 문제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카카오톡 등을 활용한 기프트콘이 꾸준히 이용자의 사랑을 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인기를 반영하듯 최근에는 페이스북 이벤트를 한 곳에 모아서 보여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그 만큼 고만고만한 이벤트 형식의 페이스북 마케팅이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딱 그 만큼 이벤트 형식의 페이스북 마케팅은 효과가 없다. 또한 피키캐스트 삭제 논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외부 인기 페이지의 도움을 받아 자사 페이스북 페이지의 좋아요 수를 늘리려는 시도들이 넘쳐난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 마케팅을 버즈마케팅 수준으로 생각하는 임원진에게 책임이 있을 수 있고, 명쾌한 페이스북 마케팅 지표(KPI)가 없다보니 ‘좋아요’에 집착하는 문화가 문제일 수 있고, 기프티콘 수준의 예산 제약선이 한계로 작용할 수 있고, 또는 담당자의 상상력에 소셜미디어 DNA가 빠져있을 수도 있다.

끝으로 2011년 있었던 포르쉐의 페이스북 마케팅을 간략히 소개한다. 독일 자동차 회사 포르쉐(Porsche)는, 페이스북 팬페이지 개설과 함께 매우 강력하고 매력적인 이벤트를 시작했다. 팬 1백만 명을 매우 단기간에 모으고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영광(?)을 주는 이벤트가 기획되었다. 포르쉐는 팬페이지에 ‘좋아요’를 클릭하는 첫 1백만 명 모두의 이름을 한 명도 빠짐없이 당시 포르쉐 신 모델인 911 GT3 R 하이브리드에 새겨넣었다. 이용자는 ‘좋아요’ 한 번 클릭했지만, 포르쉐는 ‘백만 번 감사합니다‘ 프로젝트를 통해 그들의 이름을 새겨넣은 자동차를 만들어 독일 슈튜트가르트에 위치한 포르쉐 자동차 박물관에 이를 보관하고 있다. 아래 사진에서 그 자동차에 유일하게(^^) 한글이름을 등록한 ‘강정수’를 확인할 수 있다.

facebook_porsche

* 백만 번 감사합니다 프로젝트 사이트에서 동영상이 끝난 이후, 검색창이 나타난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어 검색이 되지 않는다. 하단 검색창에 “Thomas”를 입력하고, 결과 화면을 확대하면 뒷문 손잡이 위에 위치한 ‘강정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기회가 되어 독일 슈트트가르트 포르쉐 자동차 박물관을 찾게 되면 인증샷을 꼭 찍어 여기에 추가하겠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2.0: 당근과 채찍

지난 3월 1일 페이스북은 페이지에 타임라인, 1대1 메시지 등 다양한 기능을 선보였다(참조 1, 참조 2). 새로운 페이지 기능은 오늘 4월 1일부터 모든 페이스북 페이지에 강제 적용될 예정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번 페이지 개편이 몇가지 추가 기능 업데이트가 아닌 페이스북 페이지 작동원리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는 (기업) 페이지 운영자에게 주어진 맛있는 당근이다. 그러나 이 당근은 가까이 놓여 있으나 쉽게 먹을 수 없다. 페이지 운영자는 당근을 먹기 위해서 무거운 짐수레를 힘겹게 끌어야하는 슬픈 당나귀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앱은 잊어라

지금까지 페이스북 (기업)페이지 운영자 대다수는 트위트 팔로우 수를 높이는 것처럼 자의반 타의반 페이스북 팬 수를 늘리는 것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왔다. 랜딩페이지, (탭) 앱 등에서 각종 경품 이벤트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 팬 수가 늘어나면 자기만족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이번 개편을 통해 경품 이벤트의 기능을 담당했던 랜딩페이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지금까지 왼쪽 메뉴 탭에 위치했던 앱은 사실상 그 기능을 상실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래 그림의 코카콜라 예처럼 페이지 방문자에게 노출되는 앱은 1개 정도이며 사용자가 추가 앱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아래 그림에서 파란 화살표가 가르키는 “8″을 클릭해야만 한다. 매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페이스북 페이지 앱은 그 수명을 다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 페이스북 사용자 규모는 최근 630만 명을 넘어서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참조). (잠재) 고객이 있는 곳에 기업은 응당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용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각종 경품 행사는 첫 번째 페이스북의 서비스 정책 및 수익 모델과 충돌한다. 사용자와 기업 사이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플랫폼으로 기능해야할 페이스북 페이지가 하나의 경품 행사가 끝나면 또 다른 경품 행사가 진행되는 곳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페이스북 경영진 입장에서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경품 행사를 페이스북에서 추방하기 위해 랜딩페이지 삭제와 앱 기능에 대한 강력한 제한이 이뤄진 것이다. 이 때 페이지 운영자 입장에서는 두 가지 선택이 남게 된다. 하나는 타임라인을 멋지게 꾸밀 콘텐츠 및 스토리다. 이를 통해 사용자 및 팬과 끊이없이 상호작용을 시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페이스북에 설치된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지뢰인 엣지랭크(EdgeRank)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이스북 경영진은 페이지의 메시지가 위험한 지뢰밭을 통과해 개별사용자의 타임라인에 도달하는 것을 도와주는 매력적인 편법을 제공한다. 바로 점점 다양해지는 페이스북 광고다.

경품 행사는 잊어야

각종 경품 행사는 두 번째로 다양한 법적 논쟁을 불러 올 수 있다. 특히 약품, 건강식품 및 화장품 관련회사의 과대광고가 경품 행사에 포장되어 사용자를 유혹할 수 있다. 기업의 페이스북 페이지 활용이 많아질수록 페이지 공간을 제공하는 페이스북과 사법부 및 소비자보호기관 사이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러한 서비스 정책, 매출 정책 그리고 법적 갈등 예방이라는 배경에서 페이스북 경영진은 각종 경품 행사를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페이스북 경영진은 그렇다고 채찍만 준비하지 않았다. 몇가지 달콤한 당근으로 기업을 유혹하고 있다.

사용자 포스트 및 댓글에 대한 통제 기능

페이지 운영자에게는 아래 그림의 빨간 박스처럼 “관리자 검토 전에” 사용자 및 팬의 포스트와 댓글이 페이지에 게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기능이 제공되었다.

굳이 이러한 기능이 필요할까라는 의문이 일 수 있다. 2011년도 북미 및 유럽 기업들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순간적으로 집중해서 올라오는 해당 기업에 대한 비판 또는 비난에 작지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와 관련하여 ‘shitstorm(격렬한 상황)’이라는 신조어가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자 사이에서 유행할 정도였다. 때문에 이번 ‘게시글 사전 관리 기능’은 기업 페이지 운영자에게 위기상황에 대한 제어기능이라는 안도감을 선사하기 위한 것이다. 참고로 이 기능은 위기상황이 아닌 경우에는 절대 사용해서 안된다. 사용자는 자신이 쓴 글이 바로 나타나지 않을 경우 검열 가능성에 대한 불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용자의 포스트는 앞으로 페이지 우측 중간쯤에 별도의 공간에 모여지기 때문에 ‘게시글 사전 관리 기능’을 사용할 이유는 매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없다.

1대 1 고객상담 기능

기업 트위터 계정의 주요 기능은 1대 1 고객상담이다. 고객 불만이나 사후 관리를 페이지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메시지’ 기능이 페이지에 추가되었다. 아래 그림처럼 ‘메시지’ 버튼 위 커버이미지에 “고객상담은 아래 ‘메시지’를 클릭하세요”라는 문구를 추가한다면 사용자 및 팬과의 1대1 대화가 활성화될 수 있다.

쉽게 공유되고 사용자 참여를 확대시킬 소셜 콘텐츠가 필요

또한 타임라인 상단에 위치하는 ‘톱 포스트(top post)’는 커버이미지와 함께 페이지의 얼굴이 될 전망이다. 톱 포스트는 페이지 운영자 판단에 따라서는 최대 30일 동안 유지될 수 있다. 소중한 톱 포스트를 ‘주말 잘 보내셨나요?’, ‘오늘은 비가 내리는 수요일입니다’라는 가벼운 인사로 대신할 수는 없다. 보다 진일보한 콘텐츠 운영전략이 필요해진 것이다.

고객과의 소통은 기업 마케팅 담당자에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광고를 방송 및 인쇄 매체를 통해 대량으로 살포하는 방식에 익숙한 그들이기 때문이다. 연인들이 다정한 눈빛을 주고 받으며 향기나는 차를 마시고 있는 카페에 메가폰을 들고 뛰어든 영업 사원이 큰 소리로 ‘모든 미래에 대한 걱정 끝! xx 보험!’을 외치며 그의 이름이 크게 적힌 명함과 사은품을 돌릴 때, 그와 이야기하고 싶은 카페 손님은 과연 몇이나 될까?

때문에 페이스북 페이지의 이번 개편은 지금까지의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하는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아랍 시민혁명, 트위터 그리고 페이스북 (1): 아랍 시민혁명과 미국의 이중성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튀니지의 작은 도시 시디 부지드(Sidi Bouzid)에 모하메드 부아지지(Mohammed Bouazizi)라 불리우는 청년이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대학 공부를 마쳤지만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부아지지는 아랍 문화권에서 작지않은 직군을 형성하고 있는 채소와 과일을 파는 노점 일을 시작했다. 새벽 일찍 도매상으로 달려가 싼 값으로 채소와 과일을 구입하고, 이를 하루 종일 시장 한 구석에서 다시 되파는 일이다. 노점은 튀니지에서도 불법이다. 때문에 부아지지는 부패한 경찰의 집요한 단속이라는 가중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갔다. 어느 날 경찰은 부아지지의 채소와 과일을 압수해 갔고, 이에 부아지지는 안타깝게도 ‘분신’으로 저항했다. 2010년 12월 17일의 일이다. 당시 부아지지의 부채는 26세 튀니지 청년이 쉽게 감당할 수 없는 200달러에 이르고 있었다. 이 가슴아픈 소식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빠르게 전파되었고, 지난 1월 4일 세상을 떠난 부아지지에 대한 추모운동과 튀니지 독재정부에 대한 저항운동은 마침내 ‘재스민 혁명(위키 정보)’으로 발전해 갔다. 그리고 그가 분신한 지 28일만인 지난 1월 15일, 23년간 장기집권하고 있던 튀니지 대통령 벤 알리(Ben Ali)는 권자에서 물러나 망명길에 올랐다.

부아지지의 죽음은 튀니지 국경을 뛰어넘어 인근 국가들로 빠르게 확산된 시민저항의 도화선이 된다. 1월 25일(#Jan25) 이집트를 시작으로, 2월 3일 예멘(#Feb3), 그리고 2월 5일 시리아(#Feb5)로 시민저항은 확산되었다. 또한 2월 12일 알제리(#Feb12)과 2월 14일 바레인(#Feb14)에는 미국, 유엔(UN), 나토(NATO) 등 어떤 외국 정부 및 기관의 도움없이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시민저항이 예견되고 있다.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아랍문화권의 시민혁명을 속보 또는 기획보도로 전하는 세계 각국 언론들은 해당 국가의 정부에 대해 ‘장기독재’와 ‘부패’라는 딱지를 붙이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이 지역에서 지속되었던 독재, 검열, 고문에 대한 보도는 지금까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갑작스런 언론의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또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클린턴 외무장관의 최근 예외적인 아랍국가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 발언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서구언론과 서방정부는 그동안 진행된 아랍국가의 서슬 퍼런 강권통치에 대해서 알지 못했단 말인가?

위키릭스의 폭로에 따르면 미국 외교관들은 이미 2008년 튀니지 대통령과 그 가족들이 도적의 무리처럼 국가를 강탈하고 있다는 소상한 보고서를 자국 정부에 제출했다(출처보기). 그러나 튀니지 독재자 벤 알리가 망명하기 3일 전인 지난 1월 12일 힐러리 미국 외무장관은 “미국정부는 튀니지 정부와 저항하는 시민 사이에서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을 것이다”며 그동안 미국 정부와 튀니지 정부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음을 밝히고 있다(출처보기).

또한 이집트와 미국의 관계는 어떠한가? 지난 30년간 국가비상사태를 유지하며 어떤 야당도 인정하지 않으며 저항세력에 대해 고문하고 검열하는 이집트 독재정부에 대해 미국정부는 1979년부터 매년 평균 13억 달러의 군사원조와 평균 8억1500만 달러의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미국 하원 보고서 보기). 또한 지난 2010년 6월 비판적인 블로거가 공개처형 당하는 국가와 미국은 우방임을 밝히는데 주저하지 않았다(출처보기). 나아가 미국 부통령 조셉 바이든은 공개적으로 무바락 이집트 대통령을 “독재자가 아니다”라고 옹호하기도 한다(출처보기). 지난 1월 25일 이집트의 시민저항이 본격화된 직후, 클리턴 미국 외무장관은 이집트의 정국이 ‘안정적’이다라고 평가한다(출처보기). 그 안정적인 나라에서 인터넷과 휴대전화에 대한 차단이 이뤄졌다(아래 그림 참조). 그 안정적인 나라에서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이 이뤄졌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피흘리며 죽어갔다.

(출처: Mashable)

이렇게 미국의 중동정책은 이중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이야기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스라엘과의 조건없는 연대와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 지지를 받고 있다. 한쪽에서는 자유와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슬람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미국, 나아가 범서방세계의 중동정책이 가진 이중성을 세상에 폭로하고 새로운 중동질서의탄생을 가능케하는 것은 그 어떤 서방국가의 지원이 아니다. 그 어떤 외부단체 도움이 아니다. 튀니지, 이집트, 예멘, 시리아, 알제리, 바레인 등 아랍국가의 거리 거리에 넘쳐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여성과 남성의 평등권에 대한 절규, 부패한 정부에 대한 처절한 거부는 부아지지라는 26세 청년의 절망과 고통으로 가득찬 분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라크 전쟁, 아프카니스탄 전쟁 등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현장을 생중계하던 서구언론이 거리 시위에 두려움을 느끼며 한발짝 물러설 때, 알자지라(Al-Jazeera)가 위성과 유튜브(Youtube)를 통해 아랍 시민혁명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시민들은 시위를 조직하며, 분노와 감동을 실시간으로 세상에 전하고 있다.

아랍국가들의 시민혁명이 실패로 끝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진행된 시민혁명의 불길이 다른 아랍국가들에 번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튀니지 한 청년의 몸을 태웠던 불길과 이집트에서 쓰러져간 100여 명의 절규는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질문하는 나와 당신의 연대: 쿼러(Quora)

오랜 벗 허영이 그가 살고 있는 춘천에서 ‘물음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그와 대화하면서 내 삶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질문 또는 물음표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아래의 글에서는 비타협적으로 때론 광적으로 ‘답’ 또는 ‘정답’을 추구하는 내 삶과 사회에 대한 반성을 담고자 한다. 그리고 질문을 사회화하는 새로운 온라인 서비스 쿼러(Quora)를 소개한다.

질문은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와 같다. 질문은 산 정상에 오르면 눈 앞에 펼쳐지는, 끝없이 이어지는 봉우리들이다. 질문은 무한하다. 이에 반해 답은 유한하다. ‘바로 그거야’, ‘그래 맞어’, ‘옳은 답이야’ 처럼 답은 때론 끝이며 대화가 멈추는 지점이다. 질문이 머리속을 맴도는 공상의 산물이라면, 답은 (소위) 지식의 표현이다.

하지만 나를 나로서 발전시키는 것은 질문이다. 사회를 흐르는 그 무엇으로 만드는 것 또한 질문이다. 이 때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며, 답을 참과 거짓으로 구별할 수 없는 질문이며, 다소 불편한 질문이며 그리고 유쾌하지 않은 질문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질문을 자주 던지는 사람을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는 사람은 뭔가 부족한 사람으로 평가받곤 한다. 언제나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자를 만나면 왠지 불안하다. 실존의 문제를 깊게 고민하고 질문하는 자, 우울할지어다. 답변을 듣고도 또 질문하는 자, 불평불만에 가득 찬 사람이다.

질문의 연대: 쿼러(Quora)

전 페이스북 CTO 애덤 단잴로(Adam D’Angelo)가 창업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한 쿼러(Quora)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쿼러(Quora)는 소셜 Q&A 서비스의 하나로 야후(Yahoo!) Answers 또는 네이버 지식인의 발전된 형태로 분류될 수 있다. 쿼러(Quora)에 대한 미국 블로거 또는 저널리스트의 반응은 매우 뜨겁다. 미국의 대표적 테크 블로거(Tech Blogger)인 로버트 스코블(Robert Scoble)은 쿼러(Quora)를 앞으로 10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블로그의 가장 큰 혁신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다(참조: Is Quora the biggest blogging innovation in 10 years?). 또한 테크크런치(TechCrunch)는 블로깅 3.0이 탄생했다며 다소 호들갑스럽게 쿼러(Quora)를 홍보(!)해주고 있다(출처). 도대체 블로깅 2.0은 무엇이었나? 설마 트위터를 말하는 것일까? 알 수 없다.

쿼러(Quora)가 매우 세련된 서비스임에는 분명하다. 쿼러는 트위터처럼 실시간 소통을 가능케 하는 라이브스트리밍(Livestreaming)을 제공한다. 각 질문은 고유주소(URL) 등 블로그 포스트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개별 사용자는 질문을 팔로잉(following)하거는 질문하는 사람을 팔로잉할 수 있다. 때문에 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공개적인 질문을 할 수도 있고 또는 자신의 팔로워(follower)에게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또는 쿼러(Quora)는 블로그와 뉴스의 유통채널로도 기능할 수 있다. 아래 그림처럼 답변은 블로그나 뉴스를 링크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쿼러(Quora) 서비스의 핵심은 답을 찾는 사람이 아닌 질문을 하는 사람과 그 질문하는 사람을 팔로잉하는 것이다. 쿼러(Quora)는 질문을 사회회하고, 질문하는 사람을 조직하는 서비스다. 이것이 네이버 지식인과 다른 점이다. 때문에 한국형 쿼러(Quora) 서비스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블로깅 3.0이기 때문이 아니라, 네이버 지식인 2.0이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보다 정답을 추구하는 한국사회의 질서가 답답하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는 질문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답이 중요합니까? 언제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시나요? 어떤 요일이 가장 싫으세요? 하루 중 어떤 때가 가장 두렵습니까? 당신은 오늘 맘 속에 어떤 멜로디를 품고 있나요? 어제는 어떤 멜로디였죠? 당신에게 행복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당신을 두렵게 하나요? 이른바 스팩 쌓는 것이 행복하십니까? 언제 마음의 평안을 얻습니까? 당신을 울게 만드 것은 무엇인가요? 최근 펑펑 운 적이 있나요? 왜요? 당신이 당신이 아님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당신의 상처는 몇 개입니까? 혹 마음의 상처는 몇 개입니까? 언제 이 세상이 몸서리처질 정도로 싫으십니까? 왜 당신은 한나라당을 지지하십니까? 당신은 하루에 최소 한 번 마주치는 청소하시는 분들의 하루 일당이 얼마인지 궁금해 본 적 있으십니까? 당신은 이 매연 가득 찬 서울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 있습니까? 언제요? 그럼 어디로 가실 건가요? 돌아오실 건가요? 영어는 왜 해야하나요? 영어 잘하는 사람이 멋져 보이십니까? 왜요? 당신은 엄마라는 호칭으로 어머니를 부르시나요?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엄마를 부르시나요? 엄마가 애처롭게 느껴진 적은 언제인가요?

우리 이제 ‘안녕?’이라고 인사할까요, ‘안녕!’이라고 인사할까요?

트위터 수다/약한 연결의 매력

이번 글은,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기초한 ‘관계의 매력’을 설명한다. 트위터에서 강한 연결과 약한 연결의 작동 원리와 이를 통한 정보 흐름/유통에 대한 설명은 지난 글  ’트위터의 매력 그러나 또 하나의 부담? 끝없는 정보 흐름을 즐기며, 쉬고 싶을 때는 쉬자‘를 참조하시길.

대학 2학년 12월로 기억한다. 초, 중, 고등학교 시절 절친 중 한 명이 군대를 가게 되었다. 그를 떠나보내는 술자리에서 그는 대뜸 “학생운동에 빠져 친구를 배신한 놈”이라며 나를 질책했다. 친구가 군대를 간다고 6개월 전부터 이야기를 했는데 떠나기 이틀 전에야 얼굴을 보인 나를 질책한 것이다. 휴대전화와 삐삐도 없던 시절, 그와 나와의 ‘강한 연결’은 1 (만나다)과 0 (만나지 않는다)의 값으로 구성되었다. 유년과 청소년 시절 그와 나의 관계는 1로 지속되었고, 편지 등을 통한 관계성을 빼고 생각한다면 대학 2학년과 그가 군대에 있던 2년 6개월의 길고 긴 시간은 0으로 기록되었다.

소통의 수단이 제한적일 때, 친구와 ‘강한 연결’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수화기와 전화본체가 연결된 유선전화로 가족들이 엿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친구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걸고 만날 약속을 잡는 것, 그리고 그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등은 각 개인에게 행복한 일이지만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또한 전화 통화와 직접 만남은, 대화와 만남의 참여자 사이의 ‘시간 일치(time congruence)’를 전제한다. 다른 방법으로는 편지가 있다. 이를 위해 글을 쓰는 노력과 편지가 전달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대학과 직장 등 개인의 사회적 관계가 확장되면 될 수록 한 개인이 개별 친구나 지인들과 만나거나 소통하는 횟수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1(나)과 5(친구/지인)의 관계가 1과 10으로, 1과 20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친구관계 초기에 가졌던 기쁨, 흥분 등은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시들해 지곤 한다. 때문에 이른바 뜨거운 펜팔(pen pal)관계도 시간이 흐르면서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친구가 먼 도시로 이사를 간다면,  외국으로 이주해 간다면 또는 이사/이주한 친구가 다시 이사가면서 바뀐 새 주소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 친구와의 관계는 사실상 잊혀진 0의 관계로 변하게 된다. 이것이 아날로그 시대에 작동했던 1과 0의 관계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확산되면서 아날로그 관계와 소통방식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사는 곳이 바뀌어도 이메일 주소는 변하지 않게 되었으며, 싸이월드 등을 통해 소원해졌던 친구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특히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서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끼리의 관계를 더욱 더 쉽게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모두에게 공개되는 블로그 글을 통해 나의 친구들은 직접 소통하지 않더라도 나를 이해하게 된다. 서로의 트윗(tweet)을 보며, 나누며, 답하는 것을 통해 서로의 ‘공감(empathy)’을 유지시켜 나간다.

어떤 이는 트위터에서 만들어지는 내용 대부분이 양질의 그 무엇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진부하고 시시한 이야기라고 비판한다. 아니 언제 인류의 대화가 평범하지 않고 시시한 이야기가 아닌 적이 있었나? ‘잘 지내?’라고 묻는 친구의 질문에 ‘내 영혼이 밤새 고통받는 소리에 자작나무 잎들이 타들어가는 푸른 밤을 보냈어’라고 대답하는 친구가 어디있는가? ‘너 지금 뭐 하니?’라고 물으면, ‘응, 그냥 TV 봐’라는 대답을 듣는다. 그런데 ‘응 그냥 TV 봐’라는 정보는 내게 중요하다. 그리고 나를 팔로워하는 사람들 중 일부에게도 중요할 수 있다. 대화 참여자가 서로에게 관심이 있는 관계라면 시시콜콜한 수다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왜? 바로 이러한 시시한 대화를 통해 그들 사이에 ‘공감’이 유지되고 확대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는, 온라인 대화에 빠지다 보면 실생활(흥!)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진정성있는 관계가 약화된다고 이야기한다. 트위터 소통이 저녁식사, 술자리, 커피 한 잔의 수다를 대체한다는 말인가? 아니다! 절친과의 ‘강한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와 1년에 한 번 만나 서로의 깊은 정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트위터 수다는 필요하다. 동기, 선후배 등 친구와 나는 트위터를 통해 아주 가끔 서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하고(약한 연결), 동일한 친구와 때론 밤을 지새우며 전화로 또는 직접 만나 수다를 떨기도 한다(강한 연결).

이렇게 트위터 등을 통한 (약한) 관계가 1(나)과 5(친구/지인)에서 1과 20으로 1과 50으로 확대되어도 ‘공감’은 약화되지 않는다. 서로가 직접 대화(@mention)를 하지 않아도, 각자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을 수만 있어도 좋다.

이러한 새로운 소통 환경에서 처음부터 익숙해진 젊은 세대가 성장하고 있다. 그들이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어 이 사회를 계속 살아갈 것이다. 나 처럼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소원했던 친구와 다시 소통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처음부터 1과 50, 1과 100, 1과 200의 관계를 가꾸고 성숙시키고 발전시키며 살아가고 있고 그리고 살아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셜 미디어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약한 연결의 매력이다. 소통과 관계의 양식이 변할 때 세상도 변한다. 그러나 어떤 이의 주장처럼, 나는 이렇게 바뀔 사회가 진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는 후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다르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달라진 세상이 내겐 매력적이다!

BP가 조직한 인터넷 활동가(internet activist): 저항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날개를 달다

BP와 소셜 미디어: 트위터는 이미지 관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에서 지적하였듯이 ‘소셜 미디어’라는 사회적 관계망에서 시민 행동가들은 과거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저항을 조직하고 있다.

BP가 핵심 사고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미국 멕시코 만 원유 유출사고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미국이라는 국가 경계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비판과 저항의 형식과 내용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가고 있다.

BP는 사회적 관계망을 비약적으로 진화시키는 밑거름을 제공하고 있다.
BP에 의한 이번 사고는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 그리고 시민운동가들에게 인터넷을 통한 저항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들 처럼 새로운 저항가들은 최근 인터넷 활동가(internet activist)라 불리고 있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저항의 사례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그린피스 스위스: 죽어가는 흑조(the dying black swan)


2. 풍자 동영상: BP,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다(BP: Bring People Together)

3. 보스턴 글로브(Boston Globe): 죽어가는 동물들 사진전(Caught in the oil)
이번 참사에 의한 끔찍한 결과를 웅변적으로 증명하는 사진들을 미국 온라인 뉴스사이트 보스턴 글로브가 담아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4. 그린피스 영국 지부: BP 기업 CI 공모전
그린피스 영국 지부는 BP의 새로운(?) CI
또는 로고(logo)

공모전

을 위해 BP CI 의 아도비 Illustrator 파일 등 다양한 재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 결과물은 플리커(flickr)에 모아 다시 한번 공유와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5. 가짜(가짜) 트위터 계정: @BPGlobalPR

BP의 PR 부서가 실제 만든 것 처럼 ‘보이는’ 이 트위터 계정은 현재 약 12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자랑하고 있다. 이 계정은 해학과 재치있는 비판으로 가득하다.
이 계정 운영자가 얼마전 ‘커밍아웃’을 했다. 계정 운영자의 이름은 Leroy Stick이다. 그가 제작한 BP 비판 광고판(billboard)들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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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도 매쉬업(mashup): 만약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면(If it was my home)
이번 참사의 사고 지역 크기를 각자가 살고 있는 지역과 비교할 수 있는 매쉬업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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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활동가들은 저항을 조직할 때, 동영상 유튜브, 사진 플리커, 해쉬태그 트위터 등 이 3가지 기본 구성 요소에 기초하여 매우 분산적으로 매우 개별적으로 저항들을 조직하고 있다. 기업과 정부가 새롭게 인식해야할 ‘소셜 미디어’의 힘이다.

BP와 소셜미디어: 트위터는 이미지 관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최근 멕시코 만 원유 유출 사고와 이에 따른 자연 재앙은 가히 충격적이다. 지난 4월 20일부터 이글을 쓰고 있는 오늘 5월 31일까지 하루 5천에서 1만 배럴(800에서 1600킬로리터)에 이르는 원유가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지금까지 해안 지역에 형성된 기름띠 만도 240km에 이르고 있어 원유 유출에 따른 환경재앙은 상상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이 글은, 이번 사건에 대한 정치, 경제적인 해석을 위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이번 사건의 총책임을 지고 있는 영국 석유기업 BP의 위기관리 PR을 비판적으로 소개해 보려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소셜 미디어가 기업에게 단순한 ‘활용 대상’이 아님을, 하여 전체적인 기업의 소통 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려고 한다.
우선 이번 환경 대재앙을 유발한 BP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사라진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BP의 책임성이 인정되는 가운데 최근 BP가 보인 일렬의 PR, 특히 소셜 미디어를 통한 PR은 오히려 BP에 대한 증오를 낳고 있다. BP는 소셜미디어를 일방적인 선전/프로파간다의 도구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말 사건이 발생하자 가장 먼저 반응한 곳은 그린피스였다. 그린피스 블로그그린핀스 다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사건과 사건지역에 대한 피해상황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린피스는 플리커를 통해 사건 지역과 피해 지역 사진들을 모아나갔다. 또는 유튜브를 통해 관련 동영상을 모으고 확산시켰다. 그린피스는 소셜 미디어 도구들을 활용하여 이번 사건과 피해보도을 어느 언론 못지 않게 신속하고 훌륭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린피스는 사회운동단체 답게 ‘행위(call to action)’를 조직했다.
페이스북 회원들 또한 스스로 BP에 대한 비판을 조직해 나갔다. 이들을 알고 싶다면, 이 링크를 클릭해 보시라.
트위터에서도 이번 원유 유출 사건에 대한 논쟁과 저항이 매우 다양한 시각에서 그리고 매우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다.
1. OilSpill 관련 논쟁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트위터 계정은 여기를 참조.
2. 한국의 트윗믹스와 유사한 서비스인 twazzup에서 재구성한 OilSpill 논의 구조는 여기를 참조.
3. 가장 압권은 BP의 가짜(fake) 트위터 계정인 BPGlobalPR이다. 단숨에 9만 명 이상의 팔로워 규모가 형성되었다. (참조: 이 트위터 계정은 마치 ‘예스맨 프로젝트‘를 연상시키다.) BPGlobalPR의 트윗을 잠시 구경해 보자.
기업 PR 담당자인 척 하면서, BP를 실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모방자도 트위터에 생겨났다. 페이스북 PR 담당자를 자처하며 페이스북의 개인정보정책을 풍자하는 가짜 계정이다: FacebookPR
물론 사건 책임자인 BP가 PR영역에서 놀고 있지는 않다. 그들 또한 신속하게 Deepwater Horizon Response라는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이곳에는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BP의 노력이 매우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관련기관, 미국 국방부 등과의 협력 작업도 소개되고 있다. 페이스북 계정에는 사건 해결을 위한 노력들이 다양하게 알려지고 있으며 드물게(!) 페이스북 회원들과의 소통이 시도되고 있다. 현재 6천명(!!)에 이르는 트위터 계정도 존재한다. 이곳에서도 BP에 비판적인 사람들과의 대화가 아주 가끔(!) 진행되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PR 도구’ 쯤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한 첫 번째 비판이다. 가능한 모든(!!) 비판적 내용들과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페이스북과 트위터 계정은 오히려 없는 것이 좋다. 자신이 쓴 트윗과 담벼락 글에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할 때, 이들은 한 명의 개인이 아니라 ‘관계망 속의 개인’으로서 소통을 거부하는 듯한 BP에 대한 비판과 실망감을 자신의 관계망 속에서 더욱 증폭시켜 전달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비판이다. Deepwater Horizon Response에는 사건 해결을 위한 ‘BP의 노력’에 대한 정보만 있을 뿐이다. 이번 재앙으로 인한 환경 문제, 인근 지역 주민에 미치는 피해 등에 대한 정보와 이에 대한 사건 책임자의 진지한 답변은 찾을 길 없다. 바로 일방적인 선전을 위한 홈페이지다. ‘책임’은 사과와 사고 원인을 제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피해를 어떻게 복구 또는 보상할 것인지 명확히 밝혀야한다.
세 번째 비판이다. 소셜미디어가 공중과의 소통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기업은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네슬레 사건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기업이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은, 그린피스와 같은 (시민) 활동가 집단들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멋진 아이디어 하나와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능력만으로 활동가 단체는 자신들 메시지 ‘도달거리’를 쉽게 그리고 빠르게 극대화시킬 수 있다. BPGlobalPR을 보라! BPGlobalPR은 트위터 계정 하나에서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BP 기업 (브랜드) 이미지를 어떻게 단숨에 박살낼 수 있는지를 매우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소셜 미디어 도구를 누구보다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시민) 활동가 단체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생겨나고 힘을 얻어 나갈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5만 달러 성금을 모으고 있는 Yes Lab을 보라. 그곳에서 예스맨(Yesmen)은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기업과 정부기관을 비판할 멋진 아이디어를 협업을 통해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기초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다른 단체의 유사한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다.
소셜 미디어는 모든 ‘고객’ 한 명 한 명을, 모든 ‘시민’ 한 명 한 명을 활동가(activist)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기업과 정부기관에게는 모든 소셜 미디어 도구에 대한 ‘사용금지’라는 극단적인 방법 이외에는 이러한 흐름을 막을 방법이 없다.
소셜 미디어가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않은 한국 사회, 각종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도 네슬레와 BP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국제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 중에 혹시 부도덕하고 반사회적인 측면이 있는 기업이 존재한다면, 이들 기업은 곧 네슬레와 BP와 같은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BP를 비판하는 세련된 풍자 동영상 하나를 감상하시길…

소셜 저널리즘: the media is social!

최근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저널리즘과의 Phillip Merrill이라는 학자가 매우 재미있는 실험을 하였다. 실험 제목은 A Day Without Media (미디어 없이 하루 보내기)다(연구보기).

먼저 이 실험의 결과부터 살펴보자.
Students hate going without media. In their world, going without media, means going without their friends and family. (대학생들은 미디어 없는 생활을 싫어한다. 그들에게 미디어 없는 삶은 친구와 가족 없는 삶을 의미한다.) 이 인용문장은 위 실험을 소개한 (저널리즘 전문) 블로그 글에서 빌려왔다(출처보기).
위 문장에서 실험 내용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200명의 대학생들이 ‘미디어 없는 24시간을 보’냈고, 그들의 ‘미디어 공백’에 대한 평가가 연구에 담긴 것이다. 이번 연구의 방법론, 진행방법, 결과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조하시라. 이 연구결과가 -최소한 미국에서- 일반성을 얻을 수 있다면, 이번 연구는 저널리즘 미래에 대한 의미심장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
1. 미디어는 사회적 관계망 속에 존재한다: the media is social.
Students could live without their TVs and the newspaper, but they can’t survive without their iPods. (대학생들은 TV나 신문이 없어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팟-노트북, 아이폰 등 포함- 없이는 살 수 없다.
대학생들의 미디어 소비 특징은 바로 ‘소통’에 있다. 그들이 미디어를 사용한다면, 그들은 이를 통해 대화하기를 원한다. 때문에 아래의 문장은 타당성을 얻는다.
The future of journalism will be social and mobile, whether you like it or not. (저널리즘의 미래는, 당신이 좋든 싫든간에, 사회관계망과 모바일에 놓여있다. (출처보기)

2. 뉴스와 개인 정보 사이의 차이가 사라진다: don’t make fine distinctions between news and more personal information
언론학 개론에 보면 ‘경성(hard) 뉴스’와 ‘연성(soft) 뉴스’가 서로 인위적으로! 구별되고 있다. 흔히 연애, 스포츠 뉴스 등 오락성 뉴스를 연성 뉴스라 하고, 정치, 사회, 경제 뉴스를 경성뉴스라 한다. 분석적인 스포츠 또는 연애 관련 뉴스/기사가 연성 뉴스로 분류될 수 없고,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100퍼센트 추측을 담은 ‘아니면 말고식’의 정치기사가 경성 뉴스로 분류될 수 없기에 이러한 구분은 주관적이다.

이와 유사한 구별의 모호함이 ‘뉴스’와 ‘개인정보’에서 나타나고 있다. 트위터 (또는 페이스북)에서 뉴스는 개인정보와 결합된다. 하나의 뉴스를 링크를 통해 트윗(tweet)에 담고 이에 대한 짧은 평가와 감상-개인정보-을 추가한다면, 이 트윗은 ‘관계망’-개인정보-에서 확산되고 풍부화 과정을 겪게된다. 다시 말해 뉴스와 개인정보가 혼합되면서 ‘사회성’을 얻게된다.
때문에 뉴스/기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적 대상/사회적 지식(social object/social knowledge)’이 된다.

앞으로
(계속해서) 기자
이고자하는 사람은, 이러한 뉴스의 수용 및 생산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야만 한다. 이와 관련해서 BBC Global News 책임자인 Peter Horrocks는 지난 2월 매우 날카로운 말을 자신의 동료들에게 던지고 있다.


If you don’t like it, if you think that level of change or that different way of working isn’t right for me, then go and do something else, because it’s going to happen. You’re not going to be able to stop it. (당신이 이러한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이 변화와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 일-저널리즘-을 떠나 다른 일을 찾도록 하십시요. 왜냐하면 이 변화는 지금 일어났고, 당신은 이 변화를 멈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보기
독자/소비자와의 대화는 새로운 가능성과 도전을 제공함은 틀림없다. 그 가능성과 도전을 구체화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시대 저널리스트의 과제다.

그린피스와 네슬레 사건의 교훈: 소셜 미디어가 바꾼 힘의 관계

(여유가 되면 꼭 한번 정리해야지 생각해 두었던 사건이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 놀라운 사건을 기록해 본다.)

지난 3월 17일 유럽시간으로 오전, 그린피스에서 제작된 동영상 하나가 유튜브(YouTube)에 올라온다.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음식/음료 콘체른인 네슬레(Nestlé)를 겨냥한 동영상이다. 이 동영상은 그린피스가 시작한 ‘Give rainforests a break‘의 일환이다.
이 동영상은, 유럽시장에서 인기있는 ‘초콜릿 바, 키트카트KitKat’ 제작에 사용되는 ‘야자수 기름 palm oil’을 문제삼고 있다. 이 야자수 기름을 얻기 위해 인도네시야 원시림 지역의 나무들이 벌목되고 그 자리에 야자수 나무가 심어진다. 그러다 보니 이 원시림에 살았던 ‘우랑우탕’이 살 곳을 잃고 죽어가고 있다.
이 ‘사실’을 이 동영상은 매우 자극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KitKat의 광고 패러디인 이 동영상을 감상해 보자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보지 마시라).
위의 동영상이 공개된 이후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네슬레 본사는 당연히 발칵 뒤집혔다. 법무팀이 동원되어 만 12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법원의 가처분 명령을 통해 유튜브에서 위의 동영상을 강제로 내린다. 참고로 이 동영상은 독일어, 영어 등 다국어-사실상 다국어가 필요없지만-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다시말해 17일에서 18일로 넘어가는 밤 -유럽시간-, 약 75만명 규모를 자랑하는 페이스북 네슬레 팬페이지 또한 발칵 뒤집혔다. 이미 위의 동영상을 내려받은 사용자들에 의해 동영상은 제2, 제3의 플랫폼을 통해 다시 인터넷에 유통되었고, 이에 네슬레 팬들이 가장 먼저(!) 들끓기 시작한다. 또한 네슬레가 법원의 가처분 명령을 통해 삭제(?)한 동영상에 대한 관심이 언론을 통해 더욱 확산된다 (캐나다 언론 예).
이에 다음 날 아침 3월 18일, 네슬레는 기자회견을 통해 문제가 된 야자수 기름-이는 인도네시아  Sinar Mas Group에서 납품 받은 것-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힌다. 그러나 네슬레에 대한 비판은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3월 18일 네슬레는 페이스북 팬페이지를 ‘삭제’한다.
그러나 페이스북 팬페이지북의 삭제는 네슬레의 결정적인 실수가 되었다. 팬의 자격(?)을 강제로 정지받은 과거의 팬들 대다수가 순간 네슬레의 ‘적’으로 돌아서 버린 것이다.
3월 24일 그린피스는 두 번째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그리고 거리로 나선나. 영국 네슬레 지사 앞에서 있었던 그린피스의 거리 시위를 잠시 감상해 보자.

위 동영상에는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네슬레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전단지’가 보인다. 이 전단지에는 오전 11시에 다같이 ‘휴식break’ 하자는 제안이 담겨있다. 당연히 이런 내용과 행위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중계되고 토론된다. 그것도 ‘실시간realtime’으로…
트위터 사용자들은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날리는 것으로 그린피스와 함께 했다: “Give the Orang-Utans a break! http://bit.ly/aqUX3r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여기 이 링크를 클릭해 보시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진 설명: 지난 4월 15일 네슬레 독일 지사 앞에 있었던 ‘트위터 시위’ 모습. 해쉬태그 #Nestle를 담은 트윗들이 대형 LCD 화면에 보여지고 있다. 이런 시위의 의도는 ‘네슬레 직원들이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그 목소리를 당신들에게 들려주겠소. 창문을 열고 밖을 보시오!’다.)
단 며칠 만에 전 유럽, 그 이후 전세계로 확산되었던 네슬레의 비도덕적인 기업활동에 대한 비판은 작지않은 교훈을 던지고 있다.
1. 관계망의 밀도(network density)를 급속도로 증대시키고 있는 소설미디어 도구들-트위터, 페이스북-은 기업에게 더 이상 (일방적인) ‘홍보 매체’에 머물지 않는다.
2. 이 관계망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그린피스 등 사회단체가 빠르게 터득하고 있다.
3. 이 밀도가 높은 관계망에서는 아주 작은 사건도 눈덩이처럼 커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4. 이러한 소통 환경에서 기업에게는 매우 적극적이고 예방적인 위기관리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진정한 위기관리는, 문제 있는 기업 행위나 또는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기업 행위를 내부적으로 조사/확인하는 것과 이러한 기업 행위를 중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위의 교훈은 ‘기업’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나 ‘정치집단’ 또는 ‘정치인’에게도 해당된다. 물론 한국의 기업과 정치인들에게 당장 위의 ‘네슬레’ 같은 경우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만큼 한국의 ‘관계망 밀도’가 증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팔로워의 사진을 찍어 드립니다/팔로워의 그림을 그려 드립니다

독일의 한 사진작가가 자신의 트위터 팔로워의 사진을 찍어 팔로워를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그의 트위터(@boehler)와 팔로워 사진이 담긴 사이트다.
사진은 무료로 찍어준다고 한다. 물론 PayPal을 통한 고마움의 표시-기부(?)-는 받는다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 사진작가가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팔로워의 그림을 그려주는 다른 트위터 사용자라 한다.
여기 트위터 팔로워의 그림을 그려주는 분의 트위터(@Frauenfuss)웹사이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즐겁고 유쾌한 일이다.
난, 나의 트위터 팔로워들에게 어떤 선물을 드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