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꺼져버려!” 2: 미니어쳐로 재현된 구글 통근버스 저항

“구글 꺼져버려!”: 디지털 부르주아지에 대한 분노에서 소개된 것처럼, 샌프란시스코 거주민과 구글 등 IT 기업 종사자에 대한 사회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 구글은 통근버스에 안전요원을 탑승시키는 조취를 취했다. Colleen Flaherty와 Matteo Bittanti라는 예술가는 구글 통근버스 시위를 미니어쳐를 통해 재현하고 있다.

googleProtest

 

나무로 만든 노트북 위에 구글 통근버스와 저항자들이 재현되고, 뒷배경에는 ‘구글 스트리트 뷰’가 이용되었다. 구글 스트리트 뷰를 이용한 것은 멋진 아이디어다.

작품 [The Streetviews of San Francisco(2014)] 구경하기 – 이미지를 클릭하면서 보세요-

이 두 명의 작가는 작품 소개에서 작품에 영감을 준 글들을 인용하고 있다.

그 중 내 눈에 들어온 글은 아래와 같다. “기회가 있는 불평등” vs. “기회가 박탈된 불평등”을 표현한 글이다.

“”Inequality per se might not be the problem—indeed, some argue that a certain amount of inequality, as long as it comes with opportunity, can spur people to better themselves, creating achievable, aspirational goals, and thus becoming an engine of economic growth and societal stability. But inequality without opportunity—permanent exclusion, marginalization without hope of improving one’s circumstances—can create lethal, city-killing resentments, when people who realize they can never join the party decide to burn the house down instead. Likewise, “cities that become overly reliant on just a few forms of value creation, excluding parts of their population, economy, and territory from the wealth and capital they create, “can find themselves enjoying a golden age followed by catastrophic. [...] “The London riots also suggest that the idea of a peripheral settlement or population (which we’ve so far been using mainly in a spatial sense, meaning people or districts that are located on the edge of town) can be broadened to include people who are marginalized or excluded in an economic, political, or cultural sense, even if they live in the physical center of a city.” (David Kilcullen, Out of the Mountains: The Coming Age of the Urban Guerrilla, 2013)

참조: 이 작품을 알게된 경로는, 버즈피드와 유사한 패턴으로 최근 급 성장하고 있는 Gawker의 기사다.

 

폐쇄적인 모바일 혁명과 열린 웹의 종말

아래는 슬로우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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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태블릿의 확산은 종이신문만 처참하게 죽이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이용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월드와이드웹이 사라지고 있다. 바로 다수 이용자 스스로 웹보다 앱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수요가 공급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포스트 PC 시대의 도래
이른바 ‘포스트 PC 시대’가 도래했다. 데스크탑과 노트북은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의해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지난 2013년은 PC 생산업체에게 최악의 해였다. 가트너(Gartner)의 분석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PC 시장은 10% 축소됐다. 동시에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이 급팽창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IDC 예측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전 세계 태블릿 보급량은 PC의 그것을 추월한다. 스마트폰은 여기에 함께 계산되지 않았다. IDC 예측 보고가 과장이 아닌 것은 지난 2013년 4/4분기 태블릿 판매량이 PC 판매량을 이미 넘어섰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디바이스 판매량 및 보급량의 변화는 전체 인터넷 생태계의 변화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변화 중 가장 극적인 것은 브라우저에 기초한 웹(*주: 인프라 층위가 아니라, 인터페이스 층위로서의 웹을 지칭)이 스마트폰과 태블릿 앱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현상이다. HTML5와 반응형 웹을 앞세우며 브라우저 기반 웹의 혁신을 주도하고 열린 웹의 멋진 세계를 옹호하는 사람도 PC 대체 현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2013년 4월의 통계를 보자. 미국 이용자 중 20%만이 브라우저 기반 웹을 선호하는 반면 나머지 80%는 앱을 주로 이용한다. 또 다른 통계에서도 85%의 이용자가 앱을 통해 인터넷을 만끽하고 있음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와 상반되는 통계수치도 존재한다. 넬슨의 조사에 따르면, 브라질과 이탈리아 이용자는 모바일 웹보다 앱을 선호하지만, 미국 및 영국 이용자는 여전히 모바일 웹을 앱보다 선호하고 있다. 앱과 모바일 웹 선호도 조사가 서로 충돌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 보급이 앱의 선호도 경향을 강화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공급은 수요를 따를 수밖에 없다. 애플 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에는 이미 각각 백만 개 이상의 앱이 이용자를 유혹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지난 20년 동안 (월드와이드)웹이라고 불렀던 멋진 세상이 안타깝지만 역사적 소멸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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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의 성장 속도 둔화
몇 가지 통계를 좀 더 살펴보자. 넷크래프트(Netcraft) 정기조사는 지난 2011년 이래로 전 세계 웹사이트(website)의 성장 속도가 뚜렷하게 둔화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2014년 1월 기준 전 세계 웹사이트 수는 약 8억 6천 1백만 개에 이르고 있다. 2013년 1월 6억 3천만 개의 웹사이트가 존재한 것과 비교한다면 2013년 웹사이트의 총수는 물론 증가하였다. 그러나 2011년 1월과 12월 사이 웹사이트 증가율이 200%를 기록했으니, 그 이후 웹사이트 성장률은 크게 위축된 것이다.

월드와이드웹사이즈가 분석한 웹페이지(webpage) 통계도 유사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아래 표 “구글과 빙에 색인화된 웹페이지 변동”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검색서비스 구글과 빙(Bing)에 의해 색인화(Indexing)되는 웹페이지의 수는 최근 정체 또는 감소 추세다. 어쩌면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구글은 앱 콘텐츠에 대한 색인화 작업을 시작했을 수 있다.

구글과 빙에 색인화된 웹페이지 변동
구글과 빙에 색인화된 웹페이지 변동

블로거이자 과학역사학자인 알렉스 발렌슈타인은 2013년을 “사라지는 웹사이트의 해”로 기록하고 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핵 과학과 관련된 대표적인 3개의 웹 기반 데이터베이스가 2013년에 사라졌다. 나아가 점점 많은 모바일 이용자들이 브라우저 기반 웹사이트보다는 앱 기반 콘텐츠 소비를 늘려 갈수록, 웹사이트 공급자에게는 특히 과거 웹페이지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경제적 동기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주 작은 이용자 집단이 매우 드물게 그리고 불규칙하게 방문하는 과거 웹페이지를 관리하고 보관하는 것에도 서버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을 이유로 싸이월드에 담겨있던 수천만 이용자의 기록이 곧 사라지게 된다. 다른 한편 페이스북, 트위터 등 수십억 이용자의 활동을 한 곳에 모으고 있는 소수의 서비스가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가지고 성장할수록, 그 서비스가 언젠가는 단숨에 싸이월드처럼 월드와이드웹에서 사라질 위험성 또한 함께 커진다.

놓을 수 없는 열린 접근과 정보 공유에 대한 희망
일찍이 2010년 8월 크리스 앤더슨은 ‘웹의 죽음’을 예고했다. 그리고 그의 불쾌한 예견은 3년이 지나지 않아 정확히 들어맞았다. 키스 라보이스(Keith Rabois)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노트북과 브라우저가 사라지기 때문에 웹도 사라진다(The web is going away because laptops and browsers are)”라며 포스트 PC 시대에서 웹이 처한 숙명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PC와 함께 사라지는 웹! 몸부림치며 거부하고 싶다.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웹은 브라우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브라우저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 수백만 개에 이르는 앱과 외롭고 처참한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진화하는 앱은 UI/UX 측면에서 점차 브라우저를 압도하고 있다. 브라우저를 이용해 열린 웹을 찾는 이용자가 줄어들면 들수록, 콘텐츠 공급자는 이들 소수집단을 위해 브라우저 기반 웹을 진화시킬 동기를 빠르게 잃어갈 것이다. 공급자가 줄어들면 웹의 매력은 더욱 축소될 것이며, 최악의 경우 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더욱더 많은 콘텐츠가 특정 앱 운영자에 의해 통제되는 울타리 속으로 갇히게 될수록, 카카오, 라인, 밴드 등 폐쇄형 앱 서비스가 증가할수록, 멋진 콘텐츠가 넘쳐나는 웹사이트에 대한 이용자의 관심이 조금씩 줄어들수록, 서로 다른 웹페이지를 연결하는 링크는 그 매력을 상실할 것이다. 링크의 매력이 사라질 때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월드와이드웹은 존재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 브라우저를 열심히 사용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매력적인 기능을 가진 서비스가 앱으로만 제공되는 경우가 점차 많아질수록 개인적인 노력과 불평은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러한 모바일로의 대전환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또는 이후 세대는 겨우 20년이라는 짧은 전통을 가진 브라우저 기반 웹에 애처롭게 매달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할까?

전 세계 이용자가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제한 없이 찾고 쉽게 발견하는 방법만 존재할 수 있다면, 어쩌면 콘텐츠가 어떤 특정 형식 및 프로토콜로 존재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시대의 변화를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성찰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나는 PC 시대를 끝내는 역사적 전환점에서도 열린 접근과 정보 공유에 대한 열망과 희망을 결코 버릴 수 없다.

공정위 동의의결, 네이버 다음의 사회적 책임 각성 계기 되길

어제(2013년 11월 27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네이버 및 다음 검색서비스와 관련해 이른바 ‘동의의결[1]’ 절차 개시신청을 받아들였다.

불공정행위 판단의 다섯 가지 근거 (추정)
실제로 다음과 네이버의 검색서비스를 불공정행위로 판단할 ‘위법’ 판단 근거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연합뉴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다음의 다섯 가지가 그 근거로 나열되고 있다.

  • 통합검색방식을 통해 정보검색 결과와 자사 유료전문서비스를 함께 제공한 점
  • 일반 검색결과와 검색광고를 구분하지 않고 게시한 점
  • 특정 대행사가 확보한 광고주에 대한 이관제한 정책
  • 네트워크 검색광고 제휴계약 시 우선협상권 요구
  • 계열사인 ‘오렌지크루’에 대한 인력파견

시장획정 절차 없이 어떤 근거로 네이버를 ‘시장지배적 사업자’라는 부르는지, 앞선 다섯 가지 모두가 과연 어떤 법을 어떻게 위반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알 수 없다. ‘위법’ 혐의를 포함하고 있는 네이버 및 다음의 검색서비스를 오늘도 변함없이 이용하고 있는 절대다수 이용자에게도 ‘위법’ 혐의에 대한 근거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공개될 날을 기대해본다.

이 기대는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에서 출발한다. 그 신뢰를 기초로 이른바 ‘가두리 양식장’으로 대변되는 네이버 검색서비스 정책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과연 국가 개입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판단도 뒤로 미루고자 한다. 그러나 정부 행위에 대한 이 작은 신뢰는, 치마 길이와 머리카락 길이의 적절성까지 국가권력이 판단하고 규제했던 과거의 치욕스러운 역사에 대한 기억과 마음 안에서, 갈등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동의의결’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한편 이번 ‘동의의결’ 사건은, 주요 인터넷 기업이 정부(관료) 또는 일부 사업자가 아닌 이용자와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구글의 최근 행보는 값진 시사점을 던져 준다. 지난 2013년 10월 7일 미국정부, 영국정부, 구글 그리고 이베이(eBay) 창업자 오미다르(Omidyar)와 그의 부인 팸(Pam)은 “접근하기 쉬운 인터넷을 위한 연맹(Alliance for Affordable Internet)”이라는 기구를 출범시켰다. 아프리카 국가 등 저소득 국가의 이용자가 무선 및 유선 인터넷에 대한 접근권을 갖도록 노력하는 이 기구에는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인텔, 시스코 등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구글은, 지상 32km 위를 떠다니는 풍선(balloon)을 통해 산간오지 등 유선인터넷을 설치하기 쉽지 않은 지역에 무선 인터넷을 제공하는 ‘프로젝트 룬(Project Loon)’을 통해 ‘접근하기 쉬운 인터넷을 위한 연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구글은 ‘프로젝트 링크(Project Link)’라는 이름아래 우간다(Uganda)의 수도 캄팔라(Kampala)에 100km에 이르는 고속인터넷망을 설치하고 있다(관련 보도).

Google Loon - Launch Event (출처: 위키백과)

Google Loon – Launch Event (출처: 위키백과)

구글의 선행? 망이 확대되면 구글의 이윤도 늘어난다!

마치 망사업자로 둔갑한 듯한 구글의 이러한 행보의 동기는 명확하다. 월드와이드웹에 접속하는 이용자가 1명 더 증가할 때마다, 세계 1위 인터넷 기업인 구글의 이익은 증가할 수 있다. 물론 프로젝트 룬과 프로젝트 링크의 수익률을 직접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새로운 인터넷 이용자가 검색서비스, 이메일 등 다양한 구글 서비스를 언젠가는 이용할 점은 자명하다. 그리고 이들 이용자는 스마트폰을 통해 구글에 의해 중개된 다양한 모바일 광고에 노출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구글의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수익률(Return On Investment)은 보장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두 개의 멋진 프로젝트 뒤에는 구글의 장기적인 사업적 이해가 숨겨져 있다. 그러나 나는 구글의 프로젝트에 존경을 표한다. 프로젝트 룬과 프로젝트 링크를 통해 수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삶이 개선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이 이들이 처한 모든 삶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식을 찾고 나누며, 연대의 대화를 보다 광범위하게 조직할 수 있다.

구글에 박수 치는 이유: 사회적 공익과 기업 이윤추구 조화 
전 세계에 인터넷망을 제공하고자 하는 구글 및 “접근하기 쉬운 인터넷을 위한 연맹”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아프리카 지역에 말라리아 치료법을 제공하는 것이 인터넷 접근권보다 우선이라고 주장한다(관련 보도). 빌 게이츠에 동의한다. 하지만 UN이 총 187개 국가를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조사 및 발표하는 국가별 인간 개발 지수(Human Development Index)에서 161위를 기록한 우간다에 고속인터넷망을 설치한 일은 박수를 보낼 일임이 분명하다.

구글의 행보가 안정적인 인터넷망이 우간다의 사회 진보와 경제 발전에 튼튼한 자양분이 될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애플, 삼성전자 등이 산간오지에 자사 제품을 팔기 위해 도로를 건설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 없다. 더불어 벤츠, BMW, 현대자동차 등이 자동차를 팔기 위해 아프리카 국가에 도로 건설을 지원한다는 이야기 역시 들은 적 없다.

구글의 서비스 정책에 대해 이용자는 당연히 정당한 비판을 지속해야 한다. 그러나 구글의 프로젝트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효과적인 사회적 책임(CSR)이며, 동시에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구글에 대한 질투 어린 눈을 안으로 돌려 네이버 및 다음에 개인적 바람을 이야기하고 싶다. 막 시작된 ‘동의의결’ 절차가 한국 인터넷 이용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이번 ‘동의의결’ 절차가 일부 사업자의 돈주머니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네이버 및 다음이 발 딛고 서 있는 한국 사회의 인터넷 문화를  멋지게 꽃피우는 계기로 기억되길 바란다.

1.동의의결이란 공정위에 불공정 시장행위로 고발된 사업자가 원상회복 또는 피해구제 등 타당한 시정 방안을 제안하고, 공정위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수렴을 거쳐 그 타당성을 인정하는 경우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경우를 예로 들면, 공정위가 위의 다섯 가지 이유를 들어 네이버와 다음을 불공정 행위로 판단해서 시정명령이나 과징금을 부과하려고 했으나 다음과 네이버가 두 달 안에 시정안을 내놓으면 공정위가 이를 검토한 뒤에 타당하고 판단하면 아무런 징계 없이 사건을 종결할 수 있다.

게임 개발자여, 독일로 가자!

7월 여름 밤 9시. 밤이라고 말하기 무색하다. 겨울엔 4시면 지는 해가 여름엔 10시 가까이 하늘에 걸려있기 때문이다(일광시간 절약제 영향도 있다). 독일 서부에 위치한 뒤셀도르프. 라인강이 도시를 관통한다. 여름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이 라인강가를 거닐어 보자. 물결에 조각이 나서 빛나는 주홍빛 햇살과 시원하고 맑은 강바람이 어우러지는 순간. 거칠게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이 바로 이 순간을 위함이었구나!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 때 라인강의 이 순간이 영원으로 기억될 수 있으리라.
한국 게임 개발자 유혹하는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NRW)
스포츠경향의 보도에 따르면, 독일 서북부에 위치한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NRW, 이하 ‘NRW’) 주 정부는, 게임 개발 프로젝트 당 10만 유로를 지원하고, 게임회사 당 최대 20~30만 유로까지 지원한다고 한다. 프로젝트를 위한 사무 공간도 무료다. NRW은 과거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었던 중화학공업 중심지역이(었)다. 80년대 이후 쇠락을 거듭하던 중공업은 90년대 들어 본격 몰락의 길을 걸었다.

NRW 주 정부는 방송, 로봇, 게임 등 지식산업 중심으로 이른바 체질개선에 나서고 있다. 다양한 진흥책으로 기업들을 유혹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정말 독일로 떠나볼까 고민하는 게임 개발자와 게임회사를 위해 몇 가지 조언한다.
1. 다양한 이점: 풍부한 시장과 삶의 환경 
독일에서 게임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다양한 이점이 있다. 우선 1억 명에 달하는 독일어권 시장(스위스 일부, 오스트리아 포함)이 있다. 나아가 유럽시장 전체가 코앞에 놓이게 된다.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더불어 뭐니뭐니해도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삶의 공간이 제공된다. 도시 곳곳에 크고 작은 숲이 있고, 주말에는 독일의 크고 작은 도시를 비롯하여 가까운 네덜란드, 벨기에 등지를 방문할 수 있다. 노동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2. 독일에도 좋든 나쁘든 규제는 있다
독일 게임산업에도 규제는 있다. ‘게임 셧다운제’와 같은 무식하고 치사한 규제는 없지만, 강력한 ‘청소년보호법’이 작동한다. 영화처럼 게임 등급제가 적용되고 있다. 15세 이상 등급판정을 받을 경우, 온, 오프 광고를 할 수 없어 시장기회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또한,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이른바 미디어 소양(media literacy) 교육이 진행되고 있으며, 가정과 학교는 게임 과몰입 예방에 매우 적극적이다. 그만큼 시장기회가 적다. 더 자세한 정보는 콘텐츠 진흥원의 보고서를 참조하시라.
3. 독일의 노동법은 정말 엄격하다
노동법도 엄격하다.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을 개발자에게 요구할 경우 매우 조심해야 한다. 하루 10시간이 초과되면 보통 시간당 임금은 200퍼센트로 훅 증가한다. 1년에 25일 이상의 휴가를 제공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국인끼리인데 뭔 문제가 있을까 생각하면 오산이다. 직원 한 명이라도 사후에 정황증거로 부당 노동행위를 입증할 경우, 독일 법인이냐  한국 법인이냐 상관없이 회사는 적잖은 피해를 입는다. 노동시간, 휴가 등을 고려해서 4명이 할 수 있는 일에 5명, 8명이 할 수 있는 일에 10명의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4. 겨울철도 문제
해가 짧아지는 겨울철도 문제다. 10월부터 2월까지는 한 달에 한 번씩은 햇살이 따스한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터키 등지로 워크샾을 가야 노동생산성이 유지된다. 물론 미리미리 예약하면 제주도 워크샵 비용 정도가 발생하니 비용 걱정을 크게 할 필요는 없다.
5. 생활과 문화도 생각해보자
직원들 생활도 문제다. 매일매일 유럽여행 온 기분을 만끽하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주일에 최소 1~2회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어야 취미가 된다. 작은 정원을 꾸미든, 요리 커뮤니티, 와인 커뮤니티 등에 참여하든, 운동하든, 목공을 하든, 사회단체 봉사활동을 하든 뭐든 정기적으로 하는 취미가 있어야 독일인들과 함께 생활하기 수월해진다. 사람들과 만나 매번 게임 개발 이야기만 할 수 없지 않은가.
식당에서 뭘 주문해도 일반적 한참 이후에야 음식이 나오고, 집에 인터넷을 주문해도 1주일 정도 걸리고, 뭔가 일을 하려고 해도 한국에 비교하면 한참 느리다. “빨리, 빨리”에 익숙한 우리에게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다. 인건비가 높은 것이 주원인이다. 그러나 나의 노동력이 소중하듯 상대방의 노동력을 존중하자는 마음가짐을 먹으면 이러한 문화도 적응할 수 있다.
6. 시장 탐색도 게을리하면 안 된다
게임 개발에만 집중하면 안 된다. 중간중간 독일 퍼블리셔 뿐 아니라 다양한 유럽국가의 퍼블리셔를 만나면서 시장을 탐색해야 한다. 동유럽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자주 방문하며 파트너를 만들어야 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특히 이 두 나라는 남아메리카 시장의 교두보다.
7.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생각해야
게임으로 이익을 거두면 독일 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도 생각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 초반 약 7천만 유로를 베를린 시 정부로부터 보조금으로 받기로 약속을 받으며 구동독의 TV 브라운관 공장을 저가로 인수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보조금 지급기간이 끝나자마자 2008년 동유럽으로 공장을 옮겨 비판의 뭇매를 맞았다(참조기사). 한국 기업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독일사회에 남긴 것이다.
게임 개발팀/회사가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이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니 단기간에는 게임 프로젝트에 지원되는 보조금이 이득이 될 수 있으나 반드시 유럽 시장에서 사업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자.
디지털 유목의 시대… 가자! 독일로!!
다른 생활권에서 이질적인 문화환경에서 살아가고 일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디지털 유목민(노마드)의 시대이지 않은가. 게임이 4대 악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국가기관이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하듯 가정과 학교의 일까지 대신하겠다는 이 상황에서 독일은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자! 독일로!
후대는 우리의 선택을 한국판 메이플라워호로 기록할 것이다. 4년 후쯤 라인강의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서로 만나 떠나온 한국의 겨울을 이야기하자. 그리고 재외국민도 투표권이 있음을 잊지 말자.

포털 뉴스 논쟁: 저널리즘 시장질서 재편

아래 글은 슬로우뉴스에 3회에 걸쳐 게재한 글-1회, 2회, 3회-을 하나로 편집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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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은 뉴스 중개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른바 ‘포털 뉴스’다. 이 포털 뉴스를 둘러싼 공정성 논란이 다시 심화하고 있다. 핵심 질문은 이렇다. 포털은 저널리즘의 주체인가?

상황과 함의

상황 1: 조중동 vs. 연합뉴스 + 네이버·다음

지난 2013년 7월 10일 조선일보는 “언론사, 연합뉴스와 계약 중단 확산“이라는 기사에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이어 동아일보가 연합뉴스와의 전재 계약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 배경으로는 “포털사이트 문제”가 언급되면서, “신문사에 연간 3억~7억 원씩 받고 제공하던 통신 기사를 네이버·다음 등 포털에 공짜로 노출”한 연합뉴스의 행태가 갈등의 씨앗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행하는 ‘신문과 방송’ 2013년 3월호에는 “조선과 중앙, 연합과 작별인사 온라인 뉴스 유통 개혁의 신호탄?, ‘연합뉴스 사태’의 원인과 전개 양상“이라는 글이 실렸다. 해당 글에는 “포털에 대한 종속”과 “온라인 뉴스 시장의 왜곡”을 연합뉴스 사태의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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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의:
조중동 입장은, ‘네이버·다음은 뉴스 서비스하지 마시라’, ‘ 네이버·다음이 계속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면 조중동은  네이버·다음에 뉴스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 ‘그런데 연합뉴스가 계속 네이버·다음에 뉴스를 공급하면, 조중동의 뉴스 공급 중단의 효과가 미미할 수 있으니 연합뉴스도 뉴스 공급 중단 대열에 동참하라’ 등으로 ‘추론’할 수 있다. 나아가 과연 온라인 뉴스 시장이 ‘왜곡’되었는지, 아닌지는 세밀하게 따져볼 일이다.

상황 2: 네이버 뉴스캐스트 vs. 네이버 뉴스스탠드

한국언론정보학회가 2013년 7월 2일 개최한 “온라인 뉴스 유통 서비스의 현황과 쟁점 세미나’는 네이버 뉴스스탠드에 대한 성토장이었다. 또한, 세미나를 통해 다수 언론사들이 감추어 온 ‘뉴스캐스트로의 회귀 열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집단적 열망에 짐짓 놀란 듯 네이버 유봉석 NHN 미디어서비스실 실장은 “공유지의 비극”을 반복할 수 없다며 (선정적) 제목 낚시가 판을 쳤던 네이버 뉴스캐스트로 다시 되돌아갈 수 없음을 강한 어조로 못 박았다.

함의:
대형 언론사를 제외한 중소 언론사들은, 트래픽 급감으로 결과한 뉴스스탠드 서비스를 개혁하기를 원하고 있다. 가장 좋은 방안은 트래픽 폭탄을 선사했던 과거의 뉴스캐스트로 돌아가는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물론 뉴스스탠드의 52개 기본형 언론사 대열에도 포함되지 못한 곳은 뉴스스탠드에 자사 뉴스를 공급할 기회를 갈망할 것이다. 나아가 네이버 검색에도 제외된 언론사는 검색 결과에 자사 뉴스가 포함될 수 있기를 열망할 것이다.

상황 3: 포털 뉴스편집의 공정성 논쟁, 이른바 ‘볼드체 시비’

네이버 뉴스캐스트 및 뉴스스탠드를 매개로 한 개별 언론사의 ‘뉴스 선정성 논란’과는 별도로 네이버·다음 뉴스 서비스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존재한다. 특히 다음의 뉴스서비스에서 사용된 ‘볼드체(굵은 글씨)’가 공정성 논란의 주인공이다.

2012년 10월, 새누리당이 다수당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네이버 대표와 다음 대표를 국정감사장으로 불러냈다. “여당 악재는 볼드체로 표시하고 야당 후보는 긍정적인 이미지의 사진이나 글을 배치”한다는 비판과 함께 볼드체를 통해 특정 기사가 강조되고 이를 통해 정치적 편향성이 조장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나아가 문화일보 2013년 7월 3일 보도에 따르면, 새누리당과 여의도연구소는 포털에 의한 유통시장 장악과 여론 왜곡 문제 등을 개선하기 위해 “대형 포털을 언론의 범주에 넣어 뉴스 편집권에 대한 법적 제한을 받게 하거나, 편집권을 뉴스를 제공하는 해당 언론사에 전적으로 맡기는 방안을 법안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참조: 포털 뉴스 담당자에게 듣는다 1: 포털 뉴스 볼드체 논란)

함의:
포털 뉴스서비스에 대한 공정성 시비의 배경에는 포털 뉴스는 편집권을 행사할 수 없거나 ‘법 제약’ 아래 제한적으로 포털 뉴스에 편집권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똬리를 틀고 있다.

상황 4: 네이버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다

이른바 ‘공룡 포털’ 네이버에 대한 정치권의 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매일경제는 지난 2013년 7월 9일 ““네이버가 중소업체 다 잡아먹는다” 與野 규제법 착수” 등의 기획을 통해 이른바 ‘약탈자 네이버’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조선일보는 ‘온라인 문어발 재벌 NAVER‘를 연속 기획물로 쏟아내고 있으며, 한국경제는 ‘공룡 네이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시리즈를 발행하는 등 주요 언론사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네이버 분쇄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나아가 여야, 미래창조과학부 그리고 청와대까지 네이버에 대한 “일정한 규제와 공정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폭넓은 공감대를 보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네이버와 다음에 관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진행되었다.

함의:
네이버를 소비자 가격이 존재하지 않는 검색시장의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할 수 있는 경제학적 근거의 존재 여부와는 별개로, 네이버 및 다음의 불공정 거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래서 고발에 기초하여 진행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네이버 및 다음에 대한 조사는 합법적 행위다.

문제는 네이버 규제에 찬성하는 진영이 이른바 ‘네이버 법’으로 포털을 규제할 수 있는 핵심근거로서 ‘시장 왜곡’ 또는 ‘시장 실패’를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이다. 현행법 위반에 대한 처벌과 규제를 위한 새로운 법 제정은 질적으로 완벽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저널리즘과 디지털 시장

네이버·다음으로 대변되는 포털의 뉴스서비스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을 조정하고 포털에 대한 규제가 타당하고 적절한지를 따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들이 있다.

뉴스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 및 다음은 언론사(업자)인가? 종이신문에 기초한 언론의 공정성은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가? 뉴스생산 사업자와 뉴스중개 사업자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 네이버·다음 등 뉴스중개자가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임 또는 저널리즘 규범은 무엇인가? 검색시장의 네이버를 이동통신시장의 SKT, 전기시장의 한수원 및 한전처럼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할 수 있는 경제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절대 간단치 않은 답변을 찾기 위해 몇 가지 새로운 개념을 아래에 소개한다.

분석 1: 대중매체와 공정성의 탄생, 기술과 저널리즘

대중 또는 대중 사회(mass society) 그리고 저널리즘에서 독자와 시청자를 표현하는 개념인 공중(the public)은, 19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비로소 탄생한 기술과 연결된 개념들이다. 1981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가 ‘군중과 권력(Masse und Macht/Crowds and Power, 1960)‘에서 멋지게 분석하였듯이, 19세기 (종이)신문은 길거리 또는 토론장 등 특정 지리적 공간과 매우 제한된 인원을 넘어 대중 또는 공중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렇다고 종이신문이 개별 국민국가에서 처음부터 이른바 ‘전국 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종이신문이 19세기 이후 매체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증기동력 윤전기’와 ‘신문 배달 전용기차’라는 두 가지 기술발전이 놓여 있었다.

이중 실린더 윤전기 (1812년)

1814년 11월 29일 영국 런던 지역신문 타임즈(The Times)는 역사상 처음으로 ‘증기 이중 실린더 윤전기(The Double Cylinder Machine)‘를 도입한다. 증기동력에 의해 작동되었던 이 윤전기는 시간당 1,000부를 찍어낼 수 있는 당시로써는 상상할 수 없었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타임즈는 이후 발전을 거듭하며 1817년에는 하루 7,000부를 판매하는 언론사로 성장하였고 1855년에는 하루 약 60,000부를 발행하는 언론사로 진화하였다.

윤전기 기술의 발전은 신문의 하루 발행 부수를 빠르게 끌어 올렸고, 해당 신문의 ‘도달거리’를 딱 그만큼 확대했으며, 신문을 통해 연결되는 공중의 규모도 증가시켰다. 1870년 즈음에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는 하루 20만 부 발행 능력을 자랑하며 당시 세계 최대 언론사로 기록되고 있다.

한편 윤전기 기술이 발전하여도 마차와 자전거 중심의 신문 유통시스템은 신문의 성격을 지역신문으로 철저하게 제한하였다. 런던, 맨체스터 등 특정 도시의 경계를 넘어 서로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을 연결하여 단일 독자층 또는 공중으로 묶어낼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 기차 및 철도 발전의 몫이었다. 기차에 기반을 둔 신문유통시스템이 19세기 말 영국 저널리즘의 새로운 기회를 마련한다.

그러나 영국 (지역) 언론사들이 철도를 이용한 고비용 신문 유통시스템을 자연스럽게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말 영국 제국과 남아프리카 지역에 거주하던 네덜란드계 보어족 사이에는 ‘보어전쟁‘으로 불리는 아프리카 식민지 전쟁이 일어난다. 당시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의 전신인 ‘맨체스터 가디언’ 등 지역신문 일부는 식민지 전쟁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전 세계로 식민지를 빠른 속도로 넓혀가고 있었던 영국 제국에 ‘맨체스터 가디언’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1896년, 데일리 메일: 윤전기 + 철도 = 대중매체의 탄생

마침 1896년 하루 최대 40만 부를 발행할 수 있는 윤전기를 도입한 보수 일간지 데일리 메일(Daily Mail)이 런던에서 창간되었다. 영국 제국은 보어전쟁에 지지를 보내는 데일리 메일에 맨체스터 지역으로 신문을 배달할 수 있는 전용 기차를 재정적으로 지원하였다. 이것이 특정 지역을 넘어 전국에 흩어진 독자를 연결하는 대중매체의 탄생 순간이다(참조: Harold Herd, “The March of Journalism. The Story of the British Press From 1622 to the Present Day, London, 1952, p. 130, 153, 166).

데일리 메일 창간호 1면 (1986년 5월 4일 자)  출처: Daily Mail first edition 1896

데일리 메일 창간호 1면 (1986년 5월 4일 자)
출처: Daily Mail first edition 1896

가디언의 역사 (1921년)

‘가디언의 100년 이슈’ (1921년)
출처: [가디언의 역사] 중에서

고속 윤전기와 철도 배달시스템을 갖춘 영국 데일리 메일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것은, 기술 발전을 배경으로 저널리즘의 내용과 역할이 변화한 점이다. 당시 런던, 맨체스터 등 (지역) 신문의 독자층의 중심은 상류 시민계급과 지식인이었다. 소수 지역 독자층을 대상으로 타임즈(The Times), 맨체스터 가디언,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 등 당시 영국 지역신문은 특정 사건에 대한 의견 및 견해를 담아내고 있었다.

현재 언론에서 일반화된 특정 사건에 대해 최대한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사실 중심으로 서술하는 ‘보도(report)’라는 저널리즘 형식은, 약 40만 부의 발행 부수와 런던을 넘어 영국 전국으로 독자층을 처음으로 확대한 데일리 메일(Daily Mail)에 의해 탄생했다. 데일리 메일은 ‘대중 교육을 받은 중하층(lower-middle class market)‘을 위한 신문’을 목표로 하였다. 대중의 눈높이를 맞춘 저널리즘 형식과 내용이 바로 ‘보도’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윤전기와 철도라는 기술발전에 힘입어 저널리즘은 육하원칙에 따라 사건의 사실 전달에 충실한 보도(report)라는 새로운 저널리즘 형식을 만들어 냈고, 보도 형식은 그 이후 유럽과 북미에서 언론의 공정성 개념의 탄생 배경이 된다.

분석 2: 생산 중심 1차 언론과 중개 중심 2차 언론

증기 윤전기와 기차가 신문 생산과 신문 유통의 혁신을 가져왔고 이를 통해 종이신문이 대중매체로 성장해 갔다면, 인터넷은 저널리즘의 또 다른 질적 변화를 가능케 하고 있다. “뉴스의 미래 1: 문제는 공급과잉이다“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온라인 뉴스는 종이신문과는 다른 상품으로 신문시장과는 다른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종이신문이 다양한 기사가 하나로 엮인 묵음상품(bundling)이라면, 온라인 뉴스는 개별 뉴스가 독립된 객체로서 원자화(atomization)되어 월드와이드웹에서 다양한 중개자를 만나 새로운 문맥에서 소비된다.

언론사, 다시 말해 종이신문 생산 주체는 기사 생산부터 윤전기에 의한 신문 생산, 신문 유통, 최종 소비에 이르는 가치 사슬 구조 전체를 장악 또는 관리한다. 반면, 온라인 뉴스 생산 주체는 기사 생산에 대한 통제권을 여전히 가지나 기사 및 뉴스의 유통 및 소비에 대한 독점적 지배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뉴스 플랫폼의 다변화

뉴스 플랫폼의 다변화

위 그림에서 온라인 뉴스 생산자는 ’1차 뉴스 플랫폼’으로 정의된다. 1차 뉴스 플랫폼이 생산하고 편집한 뉴스는 해당 뉴스 사이트를 방문한 이용자에 의해 소비된다. 나아가 생산된 뉴스는 ‘뉴스 판매-콘텐츠 신디케이션’과 검색 크롤러에 의해, 또는 이용자 추천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복수의 뉴스 중개자(이를 ’2차 뉴스 플랫폼’이라 부를 수 있다)에게 모인다.

다양한 뉴스 생산자로부터 수집되거나 구입된 뉴스는 2차 뉴스 플랫폼에서 자동으로 또는 수동으로 편집되어 새로운 맥락에서 이용자를 만난다. 한편, 개별 이용자는 스스로 1차 뉴스 플랫폼에서 소비한 뉴스를 추천 등의 형식을 통해 중개 및 확산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2차 뉴스 플랫폼의 네 가지 유형

2차 뉴스 플랫폼은 내부 가치 창출 구조 또는 편집 방식 및 편집 주체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별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유형에서는 구매된 개별 기사/뉴스가 구매자의 편집의도 및 편집기획에 따라 ‘주제별 뉴스’, ‘오늘의 이슈’, ‘이 시각 주요뉴스’, ‘댓글 많은 뉴스’ 등 새로운 맥락에서 제공된다. 다음 뉴스네이버 뉴스가 이 유형에 속한다.

두 번째 유형은 (반)자동으로 수집된 뉴스가 순위 알고리즘 등 다양한 편집 원리에 따라 이용자에게 제공되고, 이용자는 해당 뉴스를 소비하기 위해 생산자인 1차 뉴스 플랫폼으로 이동하게 되는 뉴스 중개서비스다. 특정 뉴스 소재 및 뉴스 이슈에 대해 어떤 언론사의 해당 뉴스가 어떤 순서에 따라 노출되는지는 기계 알고리즘에 따라 또는 자체 편집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유형에 속하는 중개 뉴스서비스는 ‘구글 뉴스‘, 구글 검색, 네이버 (뉴스) 검색 및 다음 (뉴스) 검색 등이다.

세 번째 유형은 네이버 뉴스캐스트 및 뉴스스탠드로서 편집 기능이 1차 뉴스플랫폼에 부여되는 경우로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사한 예를 찾을 수 없다.

네 번째로 2차 뉴스플랫폼의 마지막 유형은 디그(Digg), 뉴스바인(newsvine), 뉴스메이트 등처럼 1차 뉴스플랫폼의 이용자 추천이 집단화하는 편집 방식을 통해 다양한 뉴스를 중개하는 뉴스서비스다.

이들 뉴스 중개서비스는 서로 다른 편집 방법론 또는 뉴스 재가공 과정(news-rebundling process)을 가지고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 볼 때, 바로 이 편집 방법론이 뉴스 중개서비스의 주요 가치이며 매력인 것이다. 윤전기 및 기차와 유사하게 월드와이드웹은 이렇게 저널리즘에 대한 정의 및 편집 개념에 새로운 지평선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뉴스 중개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와 다음을 저널리즘의 주요 주체로서 인식해야 한다. 네이버와 다음의 편집권을 존중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네이버와 다음이 어떻게 저널리즘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인지를 보다 치열하게 논의해야 한다.

저널리즘 몰락의 시작 

스타 기자 출신으로 현재는 교수로 활동 중인 제네바 오버홀저(Geneva Overholser 2005)는 “우리가 알고 있던 저널리즘은 끝났다”는 표현으로 저널리즘의 위기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뉴욕타임즈를 중심으로 미디어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비드 카(David Carr 2007)는 “역사가는 미국 역사에서 아마도 지금을 저널리즘이 사라지는 시기로 기록할 수 있을지를 검토할 것이다”며 쇠퇴의 길로 접어든 저널리즘에 대한 진혼곡을 애처롭게 부르고 있다.

제네바 오버홀저(2012), 데이비드 카(2013)
출처: UCR, 위키커먼스

이들이 말하는 ‘저널리즘 위기’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윤율이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는 언론사의 수익성 악화를 말하는 것일까? 한국일보 사태와 같이 사주가 편집권을 당당하게 그리고 폭력적으로 침해하는 경우를 위기라 불러야 할까? 이집트, 이란, 베트남, 러시아 등에서 기자 또는 블로거가 정부 비판 목소리만으로 어두운 감옥으로 끌려가는 억압된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저널리즘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하며 그리고 공정한 보도를 추구하는 이른바 ‘독립 언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부패지수‘에서 언론은 최근 가장 큰 신뢰도 하락 폭을 기록하고 있다. 독립 언론이 빛바랜 슬로건이 된 지 오래다. 한국은 교육계보다 언론계가 더 부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39쪽).

이런 사실들에서 저널리즘의 위기를 추론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지독한 열병처럼 전 세계 언론에 빠르게 번지고 있는 저널리즘 위기는 비민주적 정치 및 사회 구조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출구를 찾기 어려운 경제 위기에도 살아남는 기업이 있다지만, 언론 산업에 들이닥친 한파는 ‘종이신문’을 버릴 때에만 물러나는 도도하고 오만스러운 선전포고와 같다.

저널리즘 1차 위기: 디지털 전환 실패

여전히 종이신문의 전통 아래 놓여 있는 저널리즘은 세 가지 영역에서 압력을 받고 있다.

첫 번째 압력은 젊은 독자 대다수가 인터넷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신문 읽기를 권장하려는 절망에 가까운 시도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다. 인터넷으로 떠난 독자는 돌아오지 않았고, 종이신문의 매력은 교과서에서나 배울 수 있는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 성장하고 있다.

두 번째 압력은 독자와 함께 광고주도 종이신문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잠시 흥미로운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어떤 근거에 기초해서 언론사 경영진은 ‘인터넷 신문(internet newspaper)’이라는 유별난 공간에 값비싼 종이 위에 인쇄된 기사를 처음부터 무료로 공급했을까?

기사의 무료 공급은 경제적 합리성을 쉽게 찾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2000년대 초반의 닷컴 버블이라는 신기루 현상에 취해 헛된 꿈을 꾸었을지 모른다. 아마도 언론사 경영진은 무료 기사를 미끼로 더 많은 독자들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독자가 있는 곳에 광고주도 함께한다. 독자 수 또는 클릭 수로 협소하게 이해된 방문자 수는 언론사가 광고주에게 과시할 수 있는 매체 영향력으로 동시에 광고 효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사 경영진은 여기서 결정적인 판단 착오를 한 것이다. 인터넷은 종이신문 시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경쟁 공간’이다. 전 세계 언론(1차 뉴스 플랫폼)이 몇 번의 마우스 클릭으로 도착할 수 있는 땅이다. 뉴스 선별 및 중개를 담당하는 다양한 유형의 2차 뉴스플랫폼이 만들어졌고, 인기를 얻었으며 이용자에게 버림을 받았고, 그리고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언론사가 종이신문을 통해 고이 품어 왔던 광고주는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만난 물고기가 되어 다른 경쟁자의 품으로 달아나고 있다. 그 품이 네이버이며 다음이다. 더욱 큰 대자연의 품이 구글이고 페이스북이다. 광고주에게 이러한 경쟁 강화는 너무나 멋진 세상이다. 헨리 포드는 종이신문과 잡지의 광고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광고에 쓰는 예산의 절반은 (효과를 측정할 수 없기에) 낭비에 불과하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낭비에 해당하는 예산 절반이) 어느 쪽 절반인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종이매체와는 달리 인터넷 기반 광고기술의 진화는 광고주에게 광고 효율성을 빠른 속도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 때문에 언론사는 참담한 패배자의 심정으로 자신의 품을 떠난 자식들을 바라볼 뿐이다. 최근 뉴욕타임즈, 가디언 등이 광고주를 설득하기 위해 광고기술 개발에 막대한 재정투자를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한국 언론사와 달리 영미 및 유럽 언론사의 경우 광고매출 하락은 더욱 심각하다. 이른바 구인, 부고, 중고차, 부동산, 데이팅 등 안내광고(Classified advertising) 시장의 변화가 영미 및 유럽 언론사를 처참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미국 종이신문의 안내광고 총매출은 약 200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런데 200억 달러의 종이신문 안내광고 시장은 2012년 약 45억 달러로 크게 축소되었다(Newspaper Association of America 2012, 2013). 여기서 2000년 당시 안내광고 시장 매출이 미국 종이신문 전체 매출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개닛(Gannett)과 뉴육타임즈의 현재 주식 가치가 당시와 비교하면 1/10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안내 광고  Khantipol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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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antipol (CC BY)

저널리즘이 받고 있는 세 번째 압력은 2차 뉴스플랫폼의 활성화에 따른 개별 언론사의 의제 설정 능력의 급격한 상실에 기인한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 뉴스 서비스에 대한 대중적 인기는 꺼질 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한 뉴스 중개 경향도 조금씩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강화되고 있다.

온라인 뉴스 시장에서 2차 뉴스플랫폼은 결코 기형아가 아니다. 기사의 원자화에 따른 피할 수 없는 결과이며 중개의 무한한 가능성은 월드와이드웹의 구조적 특징에서 기인한다. 나아가 인터넷에서 발생하고 있는 뉴스 유통 및 뉴스 소비 과정의 변화는 인터넷에서 지식이 구성되는 과정과 전달되는 과정이 변한 것과 관련 있다. 백과사전 편집자가 지식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네이버, 다음, 구글 등 검색서비스가 우리가 사는 세계를 거대한 목록(index)에 담아내고 있다. 검색서비스에 의한 지식의 목록화는 지식 구성에 있어 결정적 변화를 함께 가져온다.

근대화 및 산업화 시기에 정보와 사실은 전문가로 구성된 기관(institution)에 의해 검증되는 과정을 거쳐 옳고 그름이 가려졌다. 정보 및 사실이 가지는 의미가 탐구된다. 그리고 그 의미가 지식, 진실, 규범, 원칙, 공리 등으로 인정받는 과정과 그 결과물을 ‘카논(canon)‘이라고 불린다. 종이신문을 생산하는 언론사는 기자와 편집인으로 구성된 하나의 ‘기관’이며, 정기적으로 생산되는 종이신문 그 자체는 하나의 ‘카논’이라 칭할 수 있다.

사실과 정보가 전문가에 의해 정제되고 선별되는 과정이 ‘카논’을 의미한다면, 이와 반대로 검색서비스는 사실과 정보가 엄청나게 큰 목록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목소리의 합창’과 같다. 검색 알고리즘은 특정 질문에 대해 하나의 의무적인 답변이나 웹사이트를 제시하지 않는다. 특정 질문에 서로 경쟁하는 복수의 결과 값이 제시되고, 이용자 개인은 결과 값 중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함께 결정한다.

인터넷에서 하나의 사실이 진실성을 얻게 되는 과정은, 외부 기관이 아닌 복수의 동료 전문가에게 평가받는 방식인 동료평가(Peer Review)의 확장된 형태다. 동료평가처럼 여전히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인터넷에서 하나의 진술, 정보 및 뉴스는 서로 다른 판단력에 근거한 다양한 평가를 거쳐 사실과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무한에 가까운 복수의 행위에 기초한 지식 형성과정은, 일찍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이야기한 것처럼,  “다양한 관점을 가진 복수의 사람들에 의해 조명 받는 과정에서 그 자체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 때문에 검색서비스와 2차 뉴스플랫폼은 인터넷 시대에 사실 및 뉴스가 지식 및 진실과 더욱 가까워지도록 돕는 중요한 도구다. 그리고 검색서비스와 2차 뉴스플랫폼이라는 인터넷의 지식 도구는 다양한 비판과 혁신의 영향을 받으며 새롭게 태어나고 진화하고 있다. 개별 목소리(웹 페이지) 및 개별 뉴스의 집합체 및 합창은 인터넷에서 목록(index) 형식으로 제공되며, 이러한 인터넷 지식의 질서는 언제나 임시적인 상태라는 특징을 가진다. 특정 사실에 대한 새로운 목소리 및 새로운 뉴스가 이용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목록에 등장한다. 이 목록은 특정 질문에 대한 진실을 규정하지 않고 다만 이용자에게 방향성을 제시할 뿐이다.

결국, 무엇이 유효한지를 판단하는 것과 목록의 개별 결과를 이해하는 것은 이용자 자신의 몫이다. 나아가 인터넷을 통한 이러한 다양한 목소리의 합창과 다원주의는 지식의 민주화를 일정 수준 가능케 하고 있다. 지식의 민주화만큼 기관, 특히 개별 언론사의 지식 결정력 및 의제 설정 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언론사의 의제 설정 능력 상실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인터넷에 의한 구조적 특징이라 말할 수 있다.

저널리즘 2차 위기: 기자와 정보원의 공생관계

나쁜 뉴스 (뉴프레스, 2010)

나쁜 뉴스 (뉴프레스, 2010)

경제 및 금융 전문기자 출신인 미국의 안야 쉬프린(Anya Schiffrin)은 2010년  ”나쁜 뉴스: 어떻게 미국 경제지는 세기의 사건 보도를 망쳤는가 (Bad News: How America’s Business Press Missed the Story of the Century)“라는 책을 대표 집필한다. 여기서 ‘나쁜 뉴스’라 함은 역설적이게도 비판적 시각을 담아내고 있는 뉴스를 말한다. 당돌한 제목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2008년 전후에 일어난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와 관련하여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저널리즘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쉬프린의 남편인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는 이 책에서 당시 비판적 언론 하나만 있었어도 투기 거품을 일으켰던 집단적 광기를 막을 수 있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세계 금융위기 이전에 비판적 언론이 단 하나만이라도 존재했다면, 그 비판적 언론에 의한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 이뤄졌다면, 현실과 연관성을 상실한 (금융) 시장이 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며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Stiglitz 2011, 24-26).

또한 같은 책에서 딘 스타크맨(Dean Starkman)은 2000년 초반부터 2007년 중순까지 미국의 9개 경제지의 기사내용을 분석했다. 스타크맨에 따르면 9개 언론사의 기사 중 총 730개의 기사가 경제위기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같은 기간 동안 생산한 기사의 수가 약 220,000개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730개는 턱없이 부족하다. 스타크맨의 표현을 빌리자면, “홍보(PR)자료에 기초한 기사(“좋은 뉴스 Good News”)의 홍수에 비교한다면 730개의 비판 기사(“나쁜 뉴스 Bad News”)의 양은 …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에 흐르는 한 개의 코르크 마개와 같다”(Starkman 2011, 43).

그 때문에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담당할 비판언론의 존재는 스티클리츠에게는 단지 희망 사항일 수밖에 없다. “기자라고 사회 다른 편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다. … 위기 이전에는 기자들은 스스로 투자 거품 속으로 들어갔고, 거품이 터진 이후에는 깊은 절망으로 빠져들었다”(Stiglitz 2011, 24).

여기서 스티글리치는, 기자와 정보원 또는 기자와 홍보(PR)담당의 공생관계를 현대 저널리즘의 가장 큰 위협으로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현재 미국 언론사의 편집국은 이른바 ‘카더라’식 보도(he said, she said reporting)에 빠져있다. 또한, 기자 및 편집국의 분석이 빠진 상태로 다양한 입장을 소개하는 것을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보도라고 생각하는 것도 ’카더라’식 보도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색맹인 기자가 하늘의 색채가 파랗다고 믿는 사람에게 ‘하늘은 오렌지색이야’라고 주장하는 다른 목소리를 전달하면서 기자 스스로 중립적이고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널리즘 스스로 신뢰도를 붕괴시키는 행위다(Stiglitz 2011, 30).

더구나 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저널리즘의 신뢰도를 붕괴시키는 새로운 위험요소가 등장했다. 비판 기능과 분석 능력이 축소된 저널리즘의 틈 사이를 돈과 전문능력으로 무장한 홍보 전문가가 비집고 들어서고 있다. 특히 블로그, SNS 등 소셜 미디어 홍보 및 마케팅이 확산하면서 정부, 기업, 그리고 시민단체 등은 온라인 홍보에 적지 않은 규모의 투자를 진행해 왔다. 정부 및 기업의 목소리가 언론의 기고문 형식으로 공중에게 전달되면서 언론사에는 작은 규모지만 새로운 수익이 발생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기고문은 저널리즘의 신뢰도 하락에 기여하고 있다. 더욱이 클릭 몇 번만으로 보도자료가 저널리즘으로 둔갑하는 일들이 일상화되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정부, 기업 및 시민단체는 온라인을 통해 공중과 만나는 기회가 확대하고 있어 높은 비용이 드는 광고, 기고문, 보도자료보다는 공중과 직접적인 소통을 확대하고 있다.

인터넷은 언론사 사이의 경쟁을 확대해 ‘뉴스의 공급과잉’을 낳았을 뿐 아니라, 과거에는 언론사의 중재를 반드시 필요로 했던 정부, 기업, 시민단체가 홍보 콘텐츠의 대량 생산을 통해 언론과 직접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경쟁 과잉으로 인한 언론사의 수익성 악화는 저널리즘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고, 언론사의 비용 절감은 사전조사 생략, 하루 기사 생산량 증가 압력 등 저널리즘을 악화시킨다. 질적 저하를 겪고 있는 저널리즘은 높은 투자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는 홍보전문가와 경쟁하는 상황에 부닥치고 있다. 저널리즘 몰락의 소용돌이가 바야흐로 시작된 것이다.

물론 ‘카더라’식 보도가 장마철 한강물처럼 넘쳐나도, 눈부시게 아름답고 때론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하며 때론 마음을 일으켜 세워 몸을 광장으로 이끄는 언론 보도가 존재한다. 이러한 값진 보도와 기사가 점차 열악해지는 경제 환경 및 편집국 환경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저널리즘이 처한 이러한 역설은 연구자들이 간간이 제기해온 언론 신뢰도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사회적 반향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Franklin 2008, 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

저널리즘의 위기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매력적인 문장이 기사에서 사라지기 때문이 아니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가혹한 해고 또는 편집국 폐쇄에도 흔들리지 않는 멋진 기자들이 우리 곁에 없기 때문이 아니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정치적 경향을 떠나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기획기사로 둔갑한 홍보 기사가 넘쳐날 때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홍보처의 보도자료를 받아 적는 기자가 한두 명씩 늘어날 때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기자 한 명이 하루에 3개 많게는 4개의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노동 강도를 피할 수 없을 때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연예인 사진 한장 한장이 개별 기사가 되어 네이버 및 다음에 노출될 때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포털의 인기 검색어를 따라잡기 위해 기자의 노동현장이 이른바 ‘우라까이’(기사 베끼기)지옥으로 전락한 때다.

전 세계적으로 특히 한국사회에서 저널리즘은 멸종 위기 종이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남은 저널리즘을 가리키며 ‘저널리즘의 아름다운 복권’을 주장하는 것은, 신음하며 절망하며 눈물을 삼키며 하루하루 거친 노동을 견디고 있는 절대다수의 기자를 보지 못하는 행복한 낭만일 수 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이야기하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저널리즘은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석 3: 언론 공정성의 과잉

‘포털 뉴스 논쟁 1: 포털은 저널리즘의 주체인가’에서 살펴본 것처럼, 언론의 공정성 개념은 기술의 발전 그리고 정치 및 경제 환경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신문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생산기술 및 유통기술의 진화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대중신문’과 ‘보도’라는 새로운 뉴스양식의 출현이 가능해 졌다. 같은 배경에서 언론의 객관성 및 공정성 규범이 생겨났다. 데이비드 카(David Carr 2013)가 훌륭하게 정리하고 있듯이 저널리즘에서 “정치적 의도없는 정보(Information absent a political agenda)” 또는 독립 언론(independent press)에 대한 추구는 언론의 기업화를 추진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시작되었다.

다른 한편 20세기 북미 및 유럽에서 형성된 일련의 저널리즘 규범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 이론은 막스 베버의 가치중립(Wertfreiheit, value-freedom) 및 객관성 요구다. 가치중립이라는 표현은, 막스 베버가 1904년 발표한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의 객관성(‘Objectivity’ in Social Science and Social Policy)’이라는 논문에 처음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베버의 가치중립 요구는 언론의 공정성, 중립성, 객관성, 불편부당성 등 다양한 저널리즘 규범으로 이어졌다.

베버(1864~1920) vs. 아도르노(1903~1969)

그러나 베버의 이론은 아도르노를 통해 거센 비판은 만나게 된다. 지난 1961년부터 1969년까지 지속한 실증주의 논쟁에서 아도르노는, 비정치적인 자세는 권력에 굴복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나아가 가치중립은 지배적인 가치체계에 복종하는 행위이며 비판의 중단을 의미한다(Adorno et al. 1969, 71-75). 한편 아도르노에게 있어 특정 가치를 강조하는 가치지향(value-orientation)과 가치중립은 동전의 양면이다. 왜냐하면, 가치중립 또한 특정 가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value)라는 단어는 두 개의 구별되는 뜻이 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재화에 대한 교환척도 및 비교척도로서 가치①[1]다. 여기서 재화의 가치①는 생산비용 또는 기대효용을 통해서 결정되며 가격을 통해 표현된다. 두 번째 가치②는 이상(ideal)의 다른 표현이다. 가치②는 개인, 문화 또는 사회와 관련된 특별한 의미 또는 규범과 관련된 의미를 통해 만들어진다. 첫 번째 가치①가 경제 가치① 또는 교환 가치① 등에 사용된다면, 두 번째 가치② 개념은 가치 판단(value judgement), 정서적 가치(sentimental value) 등으로 쓰인다.

아도르노로 잠시 돌아가 보자. 아도르노에 따르면 베버의 가치②중립 개념은 1900년도를 전후하여 맑스의 가치 이론에 대항하는 반론으로 탄생했다. 베버의 가치② 개념은 재화의 생산과 관련된 사회적 관계와 거리는 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버에게 있어 가치②는 사회적인 비교 척도이며 교환 척도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 및 정치적) 입장, 행동, 행위자 등에 대한 가치② 평가가 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가치② 평가에는 다양한 가치①②의 사회적 생산 및 배분에 있어 어떠한 가치② 척도를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빠져있다.

또한 19세기를 경과하면서 경제학에서 교환 가능한 재화의 비교 수단으로서 가치① 개념이 자리를 잡았다면, 동시에 가치②철학(axiologyvalue theory)이 발전하였다. 가치②철학은, 영원한 가치②를 추구하며 그 판단의 척도를 순수한 감정으로 부터 창조하려고 시도한다. 한편 가치②철학의 발전은 가치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어느 정도 상쇄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와 유사한 흐름을 저널리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 프리즘(PRISM)을 폭로하는 과정을 함께한 영국 가디언 블로거 글렌 그린왈드(Gleen Greenwald)의 역할과 관련된 논쟁에서 주류언론은 기자가 가져야할 가치②판단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있다.

jeffschuler, "uncle sam wants your privacy" (CC BY)

jeffschuler, “uncle sam wants your privacy” (CC BY)

스노든의 행위는 국가기밀을 폭로하는 불법행위이며, 그린왈드는 보도 과정에서 스노든을 (개인적으로) 돕는 정치행위를 통해 기자의 규범 또는 저널리즘의 규범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국 주류언론의 비판이다. 또한 그린왈드와 관련된 저널리즘 정체성 논쟁에서 미국 주류언론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독립 언론’의 가치②가 중요하며 때문에 언론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지원이 절실함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저널리즘 위기와 관련된 저널리즘의 가치①에 대한 사회적 관심, 다시 말해 저널리즘의 사회적 생산과정에서 생산과 배분의 문제에 대한 관심은 저널리즘의 가치②논쟁으로 둔갑한다.

현재 네이버 및 포털의 뉴스서비스의 가치①논쟁 또한 위의 흐름들과 유사성을 갖고 있다. 개별 언론사가 온라인에서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 등 저널리즘 가치①의 문제가 포털 뉴스서비스에 의한 공정성 훼손 주장, 공정한 여론 형성을 위한 포털 뉴스서비스 중단 요구 등 저널리즘의 가치②의 문제로 둔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치②는 언제나 가치①와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여론이 활력있게 생겨나고 흐르는 민주주의, 언론의 공정성 등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가치②는 경제적 교환관계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한편으론 저널리즘의 가치②를 주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조금 등 국가(=국민)의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거나 네이버에게 과거 뉴스캐스트가 선사했던 트래픽 축복을 요청하고 있다면, 저널리즘을 재화로 인식하고 저널리즘의 생산과 연관된 가치①를 솔직하게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널리즘이 위기를 넘어 몰락으로 이이지고 있는 이 때, 저널리즘의 가치①를 어떻게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해법이 절실하다. 인터넷 뉴스시장에서는 저널리즘의 생산비용-공급-과 기대효용-소비- 사이에 가격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저널리즘이 재화로서 기능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를 통해 시장에서 지속가능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격형성 방안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

저널리즘의 시장 가치①를 회복시키는 시점이 늦어지면 늦어질 수록, 저널리즘의 가치② 주장은 더욱 더 현실성을 상실하며 정치적 해결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이 현재 겪고 있는 암울한 질곡은 가치②에 관한 사회적 합의 및 학술적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저널리즘에게 시급한 것은 재화로서의 가치①를 시장논리를 존중하는 가운데 시급하게 회복하는 것이다.

네이버 및 다음의 뉴스서비스가 사라진다면 한국 저널리즘이 겪고 있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언론사 경영진, 관료, 정치인이 존재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자동차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시점에 멋진 말과 빠른 말로 마차가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동차를 이길 수 있다는 마음과 같다.

“뉴스는 와인처럼 숙성시켜야 가치가 증가한다.” (모벌리 벨) 

1785년 창간한 영국 일간지 ‘더 타임즈(The Times)’는 그동안 소유주가 여러 차례 바뀔 만큼 경제적으로도 거친 굴곡의 역사를 겪어왔다. 현재는 루퍼트 머독이 지배하고 있는 뉴스코퍼레이션이 ‘더 타임즈’의 세 번째 소유주다. ‘더 타임즈’가 겪은 첫 번째 (경제적) 위기는 1890년대다. 저가 신문 출현 등으로 신문시장 경쟁 압력이 높아지면서 신문 판매 가격이 하락했다. 한편 최초로 해외에 특파원까지 파견했던 ‘더 타임즈’는 높은 원고료, 윤전기 고도화 및 생산설비 투자 등 고비용 구조로 경영난을 겪게 된다.

Charles Frederic Moberly Bell

모벌리 벨
(1847~1911)

이 때 ‘더 타임즈’ 창업가문이자 첫 번째 소유주 가문인 ‘월터 가문’은 경영 능력이 탁월한 모벌리 벨(Moberly Bell)을 편집장으로 임명한다. 그는 신문사 최초로 이른바 ‘끼어팔기’ 마케팅을 도입한 인물이다. 모벌리 벨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더 타임즈’를 묶음 상품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이를 시작으로 높은 신뢰도를 자랑하는 ‘더 타임즈’는 자사 브랜드를 타상품에 빌려주고, 이를 신문을 통해 광고하며, 상품판매까지 진행한다.

이렇게 ‘직접 마케팅(direct marketing)’이 역사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모벌리 벨의 경영수완을 통해 수익률을 높인 ‘더 타임즈’는 19세기 후반의 재정위기를 극복하고 1966년 ‘톰슨 미디어‘에 매각될 때까지 ‘고급 저널리즘’의 아이콘으로 성장해갔다.

1890년부터 1911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더 타임즈’의 편집장을 역임했던 모벌리 벨은 경영 능력만 출중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뉴스는 와인처럼 숙성시켜야 가치가 증가한다 (News, like wine, improves by keeping)”라는 표현을 통해 속보보다 정밀한 사실확인에 기초한 정확한 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Hansen 2012). 그는 저널리즘의 브랜드 가치가 지켜져야 이에 기초한 부가 비즈니스도 가능하다는 매우 중요한 원칙을 세웠다. 이 때문에 모벌리 벨은 뛰어난 경영능력 못지않게 동시에 ‘보도의 정확성’이라는 저널리즘의 가치를 풍부화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디지털 시대, 늘어난 뉴스의 유통기한

네이버 및 다음에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또는 ‘실시간 이슈’를 불나방처럼 따르는 뉴스가 넘쳐난다. 심지어 제목만 있는 속보 뉴스가 등장한 지 오래다. 숨 가쁘게 진행되는 디지털 뉴스의 속도 경쟁에서 ‘클릭 수’로 표현되는 뉴스 방문자를 높이려는 언론사의 열망 때문이다. 그렇다면 뉴스경쟁 강화와 24시간 뉴스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뉴스 시장에서 던져야 하는 중요한 질문이 있다.

뉴스 유통기간은 짧아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대답을 개별 뉴스에서 찾지 않고 전체 디지털 뉴스시장의 특징에서 찾는다면, 뉴스 유통기간은 오히려 더욱 길어졌다.

첫 번째 부정의 실마리는 크리스 앤더슨을 통해 유명해진 롱테일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롱테일 이론은, 80:20의 분포에서 소수에 의해 분할되는 80이라는 쏠림현상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작은 빈도수의 길고 긴 결합인 20이 디지털 시대에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모든 객체에 URL, IP주소 등 주소값을 부여하고 서로를 연결하는 월드와이드웹은, 앞에서 언급한 20에 해당하는 긴 꼬리에 분포된 책, 음악, 뉴스, 블로그 등에 다양한 발견의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영국 등반가 조 심슨(Joe Simpson)은 1988년 자신의 체험담에 기초한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Touching the Void)”라는 소설을 발표한다. 이 글은 심슨과 그의 친구 예이츠(Yates)가 남미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시울라 그란데(Siula Grande) 서벽(6,400 m)을 오른 이후 하산 길에서 겪은 조난사고를 다루고 있다. 아쉽게도 이 책은 출반 이후 큰 조명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1997년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희박한 공기 속으로(Into Thin Air)’는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Touching the Void)’를 세상의 빛으로 다시 끌어냈다.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조난사고를 다룬 ‘희박한 공기 속으로’가 인기를 얻자,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는 아마존(amazon) 등 온라인 서점의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다시 이용자의 관심영역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좌) 때문에 뒤늦게 빛을 본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우)

‘희박한 공기 속으로’(좌) 때문에 뒤늦게 빛을 본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우)
각각 영화로 제작될 만큼 큰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가 됐다

두 번째 실마리는 1995년부터 영국 ‘가디언’의 편집장으로서 저널리즘 혁신을 이끌고 있는 앨런 러스브러저(Alan Rusbridger)의 뉴스에 대한 ‘관심 지속 시간(attention span)’에 대한 주장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트위터를 넘어 월드와이드웹 이용자의 관심과 이해가 과거의 뉴스를 새롭게 발굴하고 현재의 문맥으로 끌고 나오는 매개체가 됨을 강조한다.

“트위터 이용자는 전문기자들의 열차가 떠난 한참 후에도 특정 이슈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고 수집한다.(They(Twitter users) will be ferreting out and aggregating information on the issues that concern them long after the caravan of professional journalists has moved on.)” (Rusbridger 2010)

이용자는 자신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관계망에 전파시킴을 통해 현재를 기록하는 주체 중 하나로 기능할 뿐 아니라, 이용자는 수북이 쌓여 있는 과거의 뉴스 및 정보를 현재화한다.

뉴스의 유통기한이 많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실마리는 “뉴스가 중요하다면, 나를 찾아올 것이다(If the news is important, it will find me)”라는 표현에 담겨있다(Stelter 2008). 뉴욕타임즈 기자 쉬텔터는 지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즈음하여 당시 젊은 층의 뉴스 소비 방식을 취재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각자에게 관심 있는 특정 뉴스를 친구에게 이메일, SNS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천하고 있음을 관찰했고, 친구 관계망에 기초한 뉴스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종이신문, 방송 뉴스 등 전통적인 뉴스 소비 방식은, 뉴스 생산자가 제공하는 뉴스를 뉴스 생산자가 결정한 특정 시간에 소비자가 소비하는 형식이다. 도서관 등 과거 문헌을 보관하는 특수 저장시스템을 제외한다면 과거 뉴스는 다시 소비되지 않는다. 그러나 디지털 뉴스에서는 아날로그 뉴스와 달리 뉴스 소비 선택권이 이용자에게 넘겨졌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현재 및 과거의 뉴스가 흘러다니고, 반복적으로 추천되는 뉴스는 개별 이용자의 관심을 끈다. 특정 주제 및 소재와 관련된 개별 뉴스 모두가 고유주소(URL)를 가지며 관계망에 연결된 무수한 이용자에 의해 계속해서 추천되고 새롭게 가공되고 새롭게 해석된다.

그러나 이렇게 뉴스의 유통기한이 늘어나고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 마냥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뉴스 소비 방식의 변화와 편향성

파하드 만주  (1978~현재)

파하드 만주
(1978~현재)

파하드 만주(Farhad Manjoo)는 ‘이기적 진실(원제: True Enough, Learning to Live in a Post-Fact Society)’에서 정보 및 뉴스의 폭발적 증가와 수많은 이용자에 의한 정보의 (재)해석 가능성은 이른바 선택적 노출(selective exposure) 또는 선택적 인지(selective perception)에 의한 편향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월드와이드웹은 개별 이용자로 하여금 믿고 싶은 것에 어긋나는 정보는 무시하고, 믿고 싶은 것을 뒷받침하는 정보만을 소비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2].

만주는 이렇게 지적한다.

“역설적이게도 새 기술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연결해주는 동시에 세상에 대한 시야를 좁히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만이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

또한,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형성되고, 집단 구성원은 서로의 믿음을 진실이라고 강조하며, 타 집단의 믿음을 거짓이라 주장하는 등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그래서 만주는 위키피디아, 기트허브(GitHub) 등 인터넷 집단지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더욱이 월드와이드웹에 연결된 이용자 집단은 선택적 지각에 따라 자기반성 능력이 제한된 상태다. 그에게 비친 디지털 시대는 객관성과 진실이 무너지고, 특정 믿음에 기초한 선택과 그에 따른 갈등만이 남아있는 피폐한 사회다. 따라서 만주에게 남은 것은 ‘현명하게 선택하자’는 막연하고 공허한 충고뿐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대중(mass, crowd) 및 공론장[3]에 대한 만주의 비판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대중의 비합리성, 조작 가능성, 편협성, 쏠림 등에 대한 비판은 19세기 이후 적지 않은 기자와 학자에 의해 꾸준히 주장된 내용이다. 1841년 찰스 매카이(Charles Mackay)에 의해 쓰인 ‘군중의 망상과 광기(Extraordinary Popular Delusions and the Madness of Crowds)’는 17세기 네델란드에 일어난 어처구니 없었던 ‘튤립 파동(tulip mania)’에서 나타난 당시 귀족과 상인의 잘못된 ‘믿음의 확산’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어쩌면 2008년 전후로 발생한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는 튤림 파동의 현대적 재현에 다름 아니다.

또한,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은 1895년 발간된 ‘군중심리(원제: Psychologie des foules)’에서 개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게 되면 개인과 집단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조종자의 암시에 따라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1944년 ‘계몽의 변증법(Dialektik der Aufklärung)’을 통해 영화, 라디오 등 자본가의 이해를 담은 문화산업은 은유와 암시를 통해 대중을 조작한다고 지적한다. 파하드 만주의 비판 또는 적대적 매체 지각 이론은 대중의 쏠림현상을 해석하는 도구를 제시할 뿐이다. 더욱이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시대에서 정보소비 및 뉴스 소비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으로 말할 수 없다.

문제는 서로 다른 크고 작은 ‘부분’ 공론장이 형성되고 갈등하며 각자의 믿음에 빠지는 결과에만 있지 않다.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월드와이드웹, 스마트 기기 등 변화된 네트워크 환경에서 정보 및 지식이 형성되고, 확산하고, 재가공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에 관한 이해이다. 한 사회의 지식 및 여론 형성의 제약을 극복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은 그다음 수순이기 때문이다.

뉴스 생산자와 뉴스 소비자 사이의 중개가 이뤄지는 2차 뉴스플랫폼에서 동일한 사건을 다루는 복수의 뉴스가 공정하게 경쟁하는 환경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용자가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만 빠지는 것이 아니라 ‘감히 현명하고자하는 용기(Sapere Aude)’[4]를 낼 수 있는 디지털 정보 및 디지털 뉴스 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뉴스 생산자, 뉴스 중개자, 뉴스 소비자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며, 이들 사이에 공정한 시장규칙을 만들어나가는 디지털 뉴스시장에 대한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

분석 4: 투명성과 구글뉴스 순위 알고리즘

먼저 구별해야 하는 것은 뉴스 생산자인 1차 뉴스 플랫폼의 ‘뉴스 편집원칙’과 뉴스 중개자인 2차 뉴스플랫폼의 ‘뉴스 편집원칙’은 다르다는 점이다. 뉴스 생산자의 뉴스 편집은, 뉴스 가치(news values) 이론 등에서 분석한 것처럼, 영향성, 시의성, 저명성, 근접성, 갈등성 등 사실과 사건을 뉴스화하는 언론사별 기준에 따른다. 디지털 시대에도 영국 가디언의 ‘열린 저널리즘(open journalism)‘, 기자와 독자의 협업에 기초한 ‘크라우드소싱 저널리즘(crowdsourcing journalism)‘ 등 뉴스를 생산하고 편집하는 방식도 다양한 혁신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뉴스를 중개하는 2차 뉴스플랫폼의 뉴스 편집에 대한 연구가 지금까지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다. 단일 사안을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하고, 단일 사건에 대한 사실의 파편을 서로 다르게 재구성하는 수많은 뉴스가 뉴스 소비자를 찾아 월드와이드웹이라는 단일한 공간에서 경쟁하고 있다. 다양한 언론사 및 블로거가 생산한 뉴스와 뉴스 소비를 중개하는 뉴스시장(news market)인 2차 뉴스플랫폼은 경쟁하는 뉴스를 목록(index) 형식으로 제공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뉴스) 목록(index)의 순서를 누가 어떠한 기준에 기초하여 결정할 것인가이다. 바로 이 ‘뉴스 목록 순서’는 시장의 공급과 수요를 조절하는 매커니즘이며 동시에 2차 뉴스플랫폼의 편집 방식이다. 그리고 앞선 글 ‘포털 뉴스 논쟁 1: 포털은 저널리즘의 주체인가‘에서 살펴본 것처럼, 뉴스목록 순서는 2차 뉴스플랫폼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별하는 기준이다. 그렇다면 한국 디지털 뉴스시장의 가장 강력한 중개자인 네이버 뉴스 및 다음 뉴스의 편집장식 또는 시장중개원칙은 무엇일까.

네이버 및 다음 등 포털뉴스에서는 담당 뉴스팀이 직접 또는 (독립된) 외부 전문가 그룹과 협업을 통해 목록의 운영원칙을 결정한다. 네이버는 현재 총 5개의 뉴스편집 원칙을 공개하고 있고, 총선 및 대선 등 선거 직전에 강화된 뉴스 편집 원칙을 ‘공지사항’을 통해 공개해 왔다. 다음은 ‘미디어 다음 공지사항’을 통해 뉴스 서비스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네이버 및 다음이 차지하고 있는 한국 뉴스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중개 역할을 고려할 때 이렇게 공개된 편집원칙의 한계는 명확하다. ‘다양한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겠습니다’거나 ‘균형 잡힌 편집으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습니다’ 등 뚜렷하지 않고, 막연한 편집원칙만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뉴스 중개시장의 원칙을 가지고서는 어느 뉴스 생산자도 시장의 소비 신호를 효과적으로 수신할 수 없다.

사람의 편집을 타지 않는다고 알려진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와 다음 ‘실시간 이슈’에 넘쳐나는 이른바 ‘우라까이’(기사 베끼기)에 대한 편집원칙은 무엇일까. 특정 소재에 뉴스를 배치하는 것은 뉴스 생산 시간대에 따른 결과일까 아니면 다른 원칙이 있는 것일까.

공급과 소비를 중개하는 시장 신호가 모호할수록, 뉴스 생산자, 뉴스 중개자 그리고 뉴스 소비자가 가진 시장 정보의 비대칭(asymmetric information) 성격이 강할수록 시장은 끊임없이 갈등과 마찰(frictions)을 일으키고, 시장 마찰이 구조화된 불완전 시장(incomplete market)은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의 효용을 감소시킨다. 그 때문에 네이버 뉴스 및 다음 뉴스가 중개시장의 순기능을 효과적으로 담당하고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실증적 연구가 절실하다.

이와 대조적인 구글은 지난 2005년부터 두 번에 걸쳐 특허방식을 통해 구글뉴스 편집원칙(=시장 중개 신호)을 상세하게 공개하고 있다. 2003년 출원 및 2005년 공개된 1차 구글뉴스 순위 알고리즘, 그리고 2009년 출원 및 2012년 공개된 2차 구글뉴스 순위 알고리즘(내려받기)을 살펴보면, 구글뉴스의 경우 뉴스 목록의 순서가 어떤 기준에 의해 정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며, 뉴스목록 순서 변화의 가능성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GoogleNewsAlgorithm

구글뉴스 순위 알고리즘

구글뉴스 순위 알고리즘은 위 그림처럼 총 13개 평가 영역으로 구별되어 있다. 13개 평가 영역 중 흥미로운 몇 가지를 간단히 살펴보자.

1. 언론사의 생산량: 특정 언론사가 일정 기간 생산한 뉴스 및 기사의 양이 많을수록 해당 언론사는 높게 평가된다. 이 기준은 중복 기사는 제외한다고 하여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흐름에 맞춰 기사를 대량 생산하는 언론사가 높게 평가될 수 있다는 단점을 포함하고 있다.

2. 뉴스 및 기사의 길이: 단어 수가 많은 기사를 생산할수록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두세 문장으로 구성된 속보 기사를 많이 생산할수록 또는 연예인 사진 한 장에 설명 문장 달랑 하나 있는 기사는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3. 언론사 보도범위의 중요성: 다소 모호한 기준이다.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는 사건을 적시에 다양한 각도에서 기사화할 경우 높은 점수를 받는다. 문제는 사회적 화제 또는 중요성을 어떤 기준에서 판단할 수 있는지 구글이 공개한 문서를 통해서는 알 길이 없다.

4. 속보 뉴스 출처: 사실 확인 없이 일단 쓰고 본다는 의도로 기사를 생산할 경우 감점을 받을 수 있다. 한편 화제가 된 사건을 다룬 기사를 모두 모아놓고(clustering) 개별 기사를 생산된 순서로 나열하고 개별 기사의 중복성을 점검하면, 첫 번째로 속보를 전한 언론사가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자연스럽게 (현장)기자 자원이 풍부한 대형 언론사에 이로운 평가기준이다.

5. 뉴스이용 양식: 구글 검색순위 알고리즘인 페이지랭크(PageRank)의 평가항목을 말한다. 개별 기사가 다른 기사 또는 블로그에 많이 인용(=링크)될수록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6. 언론사 신뢰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개별 언론사에 대한 신뢰도 설문조사, 언론수용자 인식조사 등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가 반영된다.

10. 보도 대상의 실명성: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 장소, 조직 등이 실명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항목이다. 현장 취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명성 강조는 구글의 유익과도 부합한다. 실명이 빈번하게 등장할수록 시맨틱 웹(semantic web)을 구현하는 검색이 더 쉽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11. 언론사 보도범위의 크기: 대형 언론사에 매우 유리한 평가항목이다. 정치, 사회, 경제 등 다루는 주제 영역이 폭넓을수록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3. 뉴스 및 기사의 양식: 오타 있는 기사를 다수 생산할수록, 틀린 문법의 기사가 많을수록 나쁜 평가를 받는다. 놀라운 점은 이를 평가할 수 있는 구글의 기술력이다.

구글뉴스의 순위 알고리즘에 따르면 대형 언론사가 선호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통 언론사임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충격’, ‘경악’, ‘몸매’, ‘미모’, ‘물오른’ 등 뉴스 소비자의 클릭에 몰두하는 언론사 또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기사 생산의 나침판으로 삼고 있는 언론사는 충분히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네이버 및 다음이 구글뉴스처럼 기계적 편집으로 편집 방법론을 바꿀 이유는 전혀 없다. 구글뉴스가 따라야 할 모범이다라고 말할 근거는 없기 때문이다. 설령 기계적 편집[5]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및 ‘실시간 이슈’ 또는 뉴스 검색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그리고 혹 네이버 뉴스 및 다음 뉴스가 기계적 수집 및 편집 방식을 도입한다고 하여도, 구글뉴스 순위 알고리즘이 한국 뉴스시장에도 유의미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꼼꼼하게 따져볼 일이다.

그러나 뉴스 공급과 뉴스 소비를 중재하는 사업자는 시장 마찰을 최소화하고 공급자가 소비정보를 얻고 소비자가 공급자를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를 제공할 시장의 책무 및 사회적 책무를 가지고 있다.

1. 두개의 서로 다른 가치 개념을 구별하기 위해 아래에서는 ①과 ②로 구별하고 있다.

2. 파하드 만주가 뉴스소비의 편협성을 설명하는데 활용한 이론인 ‘선택적 노출’ 또는 ‘선택적 인지’는 ‘적대적 매체 효과(hostile media effect)‘ 또는 ‘적대적 매체 지각(hostile media perception)’과 유사한 개념이다. 적대적 매체지각에 따르면, 자신의 입장과 일치하는 뉴스가 공정하고 반대 입장의 뉴스는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3. 하버마스를 통해 대중화된 개념인 공론장을 뜻하는 독일어 표현은 <Öffentlichkeit>다. 이는 영어 <Public Sphere>로 번역되었고,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공론장>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독일어 ‘Öffentlichkeit’는 형용사 ‘Öffentlich(→public)’에 명사형 접미사 ‘-keit(→-ness)’가 결합된 단어다. 독일어 <Öffentlichkeit>는 특정 공간 또는 특정 매체을 매개로 형성된 여론(publich opinion)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때문에 제프 자비스(Jeff Jarvis)는 독일어 <Öffentlichkeit>의 적절한 영어표현으로 <Public Parts>을 제안하고 있다. ‘공론장’은 신문, 방송 등 대중매체를 통해 형성되는 특정 부분(!) 여론 뿐 아니라, 개인 및 집단의 생각 또는 의견 등이 표현되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기술)요소 및 환경의 총합이며, 복수의 집단 내부 및 집단 사이에서 진행되는 대화가 구조화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월드와이드웹의 공론장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웹의 구조와 특징, 웹에서 정보가 유통 및 확산되는 과정, 웹에서 지식이 누적되고 진화하는 특성 등에 대한 이해와 관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4. ‘감히 현명하고자 하는 (인간의) 용기 (라틴어: Sapere Aude, 영어: Dare to be wise)’는 칸트가 1784년 “계몽주의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계몽주의의 핵심이다.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존재하는 기만, 속임수, 편협, 무비판 등 인간의 사고를 옥죄는 끝없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현명하고자 하는 ‘용기’ 그리고 그 용기를 북돋는 사회 환경을 만드는 일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회적 과제이다.

5. 기계적 편집 원칙, 다시 말해 알고리즘을 만드는 일도 결국 사람의 몫이다. 마틴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술의 본질은 결코 기술적인 것이 아니”며, “기술은 (인간이 세운) 목적을 위한 수단”이며 동시에 “기술은 인간 행위”이다.(Heidegger, 1954). 따라서 뉴스 순위 알고리즘은 구글 뉴스처럼 자동화되어 작동하는 편집 원칙일 수 있고, 또는 네이버 뉴스 및 다음 뉴스처럼 중개편집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세운 기준일 수도 있다.

참조한 글

파하드 만주, 2011, 이기적 진실, 비즈앤비즈

Arendt, Hannah, 1996, Vita Activa oder Vom tätigen Leben, München 1996, p. 72

Adorno, Theodor W. / Dahrendorf, Ralf / Pilot, Harald / Albert, Hans / Habermas, Jürgen / Popper, Karl R., 1969, Der Positivismusstreit in der deutschen Soziologie, pp. 71-75

Carr, David, 2007Muckraking Pays, Just not in Profit, in: New York Times.

Carr, David, 2013Journalism, Even When It’s Tilted, in: New York Times

Franklin, Bob, 2008, The Future of Newspapers, in: Journalism sStudies Vol. 9 (5), pp. 630–641

Hansen, James F., 2012, New Journalism And the Boer War, Lawrence University Honors Projects, Paper 18 

Heidegger, Martin, 1954, Die Frage nach der Technik, München

Overholser, Geneva, 2005, On Behalf of Journalism. A Manifesto for Change, Annenberg Foundation/Annenberg Public Policy Center, University of Pennsylvania, http://editor.annenbergpublicpolicycenter.org/wp-content/uploads/OnBehalfjune20082.pdf

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 The state of the News Media

Rusbridger, Alan, 2010The splintering of the fourth estate, In: The Guardian (2010년 11월 19일)

Schiffrin, Anya (ed.), 2011, Bad News. How America’s Business Press Missed the Story of the Century. The New Press, New York / London

Starkman, Dean, 2011, Power Problem, in: Schiffrin, Anya (ed.), Bad News. How America’s Business Press Missed the Story of the Century. The New Press, New York / London, pp. 37–53
Stelter, Brian, 2008, Finding Political News Online, the Young Pass it On, In: The New York Times (2008년 3월 27일)

Stiglitz, Joseph E., 2001, The media and the Crisis: an Information Theoretic Approach, In: Schiffrin, Anya (ed.), Bad News. How America’s Business Press Missed the Story of the Century. The New Press, New York/London, pp. 22-36.

Weber, Max, 1988, Die ‘Objektivität’ sozialwissenschaftlicher und sozialpolitischer Erkenntnis, in: Winckelmann, J. (ed.),  Gesammelte Aufsätze zur Wissenschaftslehre, Tübingen

 

인터넷은 매력적인 곳이다 (1): Olivia Bee 사례

인터넷은 젊은이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곳이다. 먼나라 미국의 이야기지만, 인터넷은 학력을 떠나 재능과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이다. 최근 플리커는 올리비아 비(Olivia Bee)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16세 때 그녀는 학교의 동영상 수업에 참여하지만, 사진 수업에 더욱 매료된다. 그 때부터 플리커에 사진 작업을 올리고 공유한다. 바로 그녀 나이 16세 때 Converse에서 사진 작업을 함께 하자며 제안이 들어온다. 그 이후 피아트(Fiat), 에르메스(Hermès), 나이크 등의 사진 작업 제안이 이어졌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한국에서도 들을 수 있는 날을 간절히 바라며 아래 동영상을 공유한다.

굿바이, 움베르토 에코

아래는 슬로우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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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7월 6일 조선일보에는 “종이책이 사라진다고? 인터넷도 사라진다.”라는 움베르토 에코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에코가 가진 지적 권위 때문이지 아니면, 인터뷰에 담긴, 인터넷의 대중화로 인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에코의 비판적 진단이 갖는 설득력 때문인지 모르지만, 해당 인터뷰 기사는 트위터 등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에코가 말한 아래와 같은 주장은 조선일보 등이 한결같이 주장해 온 SNS 폐해와 네이버 등 포털에서 자극적인 제목 장사에 빠진 일부 인터넷뉴스업체 대한 비판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TV는 지적 빈자를 돕고, 반대로 인터넷은 지적 부자를 도왔어.”

“(인터넷은…) 정보의 진위나 가치를 분별할 자산을 갖지 못한 지적인 빈자들에게는 오히려 해로운 영향을 미쳐요. 이럴 때 인터넷은 위험이야.”

“블로그에 글 쓰는 거나 e북으로 개인이 책을 내는 자가 출판(Self Publishing)은 더욱 문제요. 종이책과 달리 여과장치가 없어요.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선별과 여과의 긴 과정이오.”

“특히 쓰레기 정보를 판단할 능력이 부족한 지적 빈자들에게는 이 폐해가 더 크지. 인터넷의 역설이오.”

움베르토 에코의 이와 같은 자기 우월감에 빠진듯한 주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06년 재론 라니에(Jaron Lanier)는 ‘Digital Maoism(디지털 마오이즘)’에서 그리고 2007년 앤듀류 킨(Andrew Keen)은 “The Cult of the Amateur(아마추어를 추종함)”에서 웹 2.0, 공유 문화, 블로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이 우매한 사용자를 선동하고, 기자와 교수 등 지식 엘리트를 공격하는 등 공산주의 또는 칼 맑스의 21세기 재현이라며 한탄하고 있다. 또한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다.” 등 검색서비스가 인간의 독립적 사고능력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는 주장은 에코가 말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안타까워요. 휴대폰이나 카메라 없이는 요즘 아이들은 세상을 볼 수 없나 봅디다.”라는 비판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 문화에 대한 에코, 라니에, 킨 등의 주장에 동감을 표할 것인가 아니면 비판적 입장을 취할 것인가는 결국 인터넷이 가져오는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에 대한 영향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기차여행이 가져온 인식의 충격과 변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차 및 철도의 탄생이 미친 사회적 또는 문화적 영향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독일인 볼프강 쉬벨부쉬(Wolfgang Schivelbusch)는 1977년 “철도여행 이야기: 19세기 공간과 시간의 산업화에 대하여(Geschichte der Eisenbahnreise: Zur Industrialisierung von Raum und Zeit im 19. Jahrhundert, 영어번역 The Railway Journey: The Industrialization and Perception of Time and Space영어요약본 내려받기)”에서 기차와 철도라는 새로운 기술이 19세기 당시 어떠한 문화적 두려움과 거부감을 야기했는지 상세하게 실증하고 있다.

19세기 말 기차여행은 어떠한 문화적 충격을 당대 사람들에게 던졌을까? ‘장발장(레 미제라블)’을 창작한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달리는 기차의 창으로 들어오는 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얼룩으로 보일 뿐이다. 푸른 들판의 곡식이 노란 머리카락으로 보인다. 마을과 교회 첨탑 그리고 나무들이 미친듯이 춤을 춘다”. 걸어서 여행하거나 때론 마차를 타고 여행했던 공간이동 경험이 전부였던 빅트로 위고에게 달리는 기차의 속도는 보는 행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요구했다. 기차여행 이전에는 사물 각각은 인간의 눈에 그 자체로서 인지되었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기차에서 인간의 눈에 들어오는 사물은 항상 이웃한 사물과 함께 ‘괴상한 덩어리’로 인식되었다.

다시 말해 기차 여행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인식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인식체계는 늘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놀라움보다는 두려움이 지배적 반응이었다. 현대의 초고속 기차와 비교해보면 느려터졌던 당시 기차 속도에 놀라 스트레스와 두려움에 빠졌던 건 빅토르 위고만이 아니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쓴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는 기차 여행이 동반하는 속도의 두려움 때문에 기차 여행길을 항상 위스키와 함께했었다고 한다. 기차여행이 가져다주는 시각적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디킨스의 방법이 위스키였다면, 이를 극복하자고 노력했던 실험의 결실은 바로 ‘파노라마’다. 파노라마는 사물을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연관된 사물과 함께 보는 19세기 사회적 시각의 산물이다.

기차여행은 당대 사람들에게 시각적 인식 외에도 또 다른 문화 충격으로 이어졌다. 언제 내릴지 모르는 사람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장시간 여행을 같이 한다는 것 당시 사람들에게는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였다. 볼프강 쉬벨부쉬는 당시 신문 문화면 기사 분석을 통해 ‘낯선 타인과의 여행’이 많은 이들에게 심리적 질병으로 이어졌음을 밝혀내고 있다. 이로 인해 병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처방전으로 등장한 것이 ‘여행 중 독서’다. 그 결과로 기차에 오르기 전 책과 신문을 사는 행위가 나타났다. 낯선 사람 앞에서 책을 읽는 행위는 마치 오늘날 지하철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행위처럼 고립과 단절을 의미했다. 이 때 탄생했던 개념이 ‘사적 공간(Privacy)’이다. 공적 공간(=기차)에서 단절된 개인 공간을 방해하거나 그 개인의 이른바 신상을 알려해서는 안된다는 기차 여행 예절이 당대 신문에 소개되었다.

아우구스투스 에그, “여행하는 친구들 The Travelling Companions” (1862)

미래를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이렇게 하나의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도입되고 확산할 때, 기술은 경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은 적지 않은 경우에 사회적 병리 현상을 동반한다. 그리고 이 병리 현상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새로운 사회적 습관 및 행동양식이 형성된다. 트위터 타임라인의 모든 트윗을 읽지 못할 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 마치 서점에 있는 모든 책을 평생에 걸쳐 읽어야 한다면 이 또한 스트레스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서점 스트레스를 갖고 있지 않다. 모든 책을 읽어야 할 의무감을 벗은 지 오래며, 모든 책이 진실을 담고 있거나 유익하다는 생각과 작별한지도 오래기 때문이다. 네이버 뉴스케스트에 올라온 낚시성 기사를 클릭하며 호기심을 채우거나, 위키피디아의 폭넓은 집단지성보다는 네이버 지식인이 던져주는 단편적인 정보에 만족할 때도 있다. 이것이 에코가 말한 “정보의 진위나 가치를 분별할 자산을 갖지 못한” 사람의 태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성장통’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로 인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살아가는 ‘어린아이’와 같다. 어린아이에게 새롭게 인식된 사물은 언제나 혼란을 주기 마련이다. 새로운 사물을 빠르게 이해하고 수용하는 아이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때론 환경변화가 주는 불확실성에 아파하는 아이도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불안감 또는 스트레스에 직면할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인터넷 등 새로운 기술이 가져오는 변화에 다소 거리감을 두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과거를 되돌아 보며 “아~ 이런 변화가 있었구나!”라며 회고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용기를 내어 새롭고 다양한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실험하고 그 부작용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어린아이가 용기있는 실험에 상처를 받을 때 우리는 “괜찮아(It’s OKAY!)”라고 위로하면서 아이의 또 다른 탐험을 독려해야 한다. 알랜 케이(Alan Kay)가 말했듯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미래를 발명하는 것(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invent it)”이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움베르토 에코 씨, “당신의 상처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독기어린 비판도 괜찮습니다. 월드와이드웹과 함께한 인터넷의 역사는 이제 고작 20년이 지났을 뿐입니다. 그 역사는 당신이 르부르 박물관 창밖으로 던진 ‘장미의 이름’보다 짧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월드와이드웹과 관련된 실험을 계속하렵니다. 그리고 당신의 상처와 비판을 겸허히 듣도록 할게요. 우린 괜찮습니다”.

 

베를린로그 운영: 뮤즈어라이브 블로그, 블로그+책 프로젝트

오랫동안 이 공간에서 새로운 글이 올라오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뮤즈어라이브(www.muzalive.com)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음악 관련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신생기업입니다. 이곳에서는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에 대한 데이타 마이닝에 기초한 서비스들이 하나 둘 씩 공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제가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 미디어 경영 관련 소재의 글을 이곳에 올리게 될 경우 무의식 중에 ‘뮤즈어라이브’를 고려한 글이 될까봐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때문에 당분간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 미디어 관련 소재 글은 ‘뮤즈어라이브 블로그‘에만 올릴까 합니다.

혹 ‘뮤즈어라이브 블로그‘에 쓴 제 글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여기!‘를 클릭해 주십시요.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시리즈로 디지털 경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뮤즈어라이브 블로그‘에 풀어볼 계획입니다.

또한 곧 2권의 ‘블로그+책’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독립 블로그에는 책을 만드는 과정, 책에 담기는 개별 글에 대한 짤방(?^^)과 평가, 영상 인터뷰, 각종 자료 등이 담길 예정입니다. 곧 이 두 개의 프로젝트를 이 곳에 소개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베를린로그’를 방치하지 않겠습니다. ‘인터넷주인찾기‘, ‘디지털 사회운동’ 등에 대한 소식은 더욱 열심히 이곳에 담아낼 계획입니다.

앞으로 베를린로그에 보다 많은 애정을 담아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팀 버너스 리: 페이스북, 애플 그리고 구글이 웹을 위협하고 있다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 그는 1989년 3월 월드와이웹을 구상하고 1990년 12월 25일 벨기에 학자 로베르트 카죠(Robert Cailliau)와 함께 하이퍼텍스트와 하이퍼링크에 기반한 오늘 날의 월드와이드웹을 탄생시킨 웹의 아버지다. 지난 20년간 웹은 정보의 제한없는 상호 연결을 통해 공유와 열림의 가치를 실현하는 간단치 않은 길을 걸어왔다. 결코 평탄치 못했던 과정에서 끝없는 도전을 제기했던 쪽은 언제나 ‘가두리 양식장(Walled Garden)’들이다. 미국의 AOL(America Online)이 그렇고, 한국의 네이버(naver)가 또 다른 예다.

팀 버너스 리 (출처)

그리고 공유와 열림의 웹이 최근 또 다시 심각하게 큰 위협을 받고있다는 것이, 팀 버너스 리의 최근 진단이다(출처보기). 지난 2010년 11월 22일 Scientific American 기고문을 통해, 그는 페이스북, 애플 등이 열린 연결과 공유정신을 저버리고 웹에 서로서로 고립된 섬을 만들어 가고 있다며 날선 비판의 칼을 세우고 있다.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만약 우리 웹 사용자가 이러한 흐름을 용인한다면, 웹은 조각 조각 떨어진 섬들로 변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웹페이지가 연결될 수 있는 자유를 잃게 될 것이다.  If we, the Web’s users, allow these and other trends to proceed unchecked, the Web could be broken into fragmented islands. We could lose the freedom to connect with whichever Web sites we want.”

팀 버너스 리의 이번 글은, 웹 2.0이라는 용어를 사회화시킨 팀 오렐리(Tim O’Reilly)가 2009년 11월 제기한 비판과 맥을 잇고 있다(팀 오렐리의 ‘The War For the Web’ 보기). 팀 오렐리는 이미 1년 전에 페이스북과 애플이 웹을 가두리 양식장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팀 버너스 리는, 특히 페이스북에 모이고 있는 생일, 이메일 주소, 사진, 선호(Like) 등 사용자 정보가 사용자에게(!) 과연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반문하고 있다. 이러한 사용자 정보는 ‘회사 페이스북’에게는 커다란 경제적 가치를 선사하고 있을 뿐이다. 웹의 기본작동 원리인 정보와 정보를 연결(link)하는 것은 (추가)가치를 창출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이 단지 페이스북 안에서 또는 ‘소셜 그래프’라는 페이스북의 지붕 아래에서만 진행되고 있다(참조: 구글과 페이스북, 검색과 관계 줄게, 광고다오!). 이 때 각각의 정보는, 팀 버너스 리의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닫힌 콘텐츠 저장창고(a closed silo of content)”가 되어버린다. 또한 이러한 정보를 제공 또는 창작한 사용자 스스로도 이 정보를 재가공할 수 없게된다.  6억 명에 이르는 사용자가 많은 정보를 생성할 수록 이들 사용자와 정보는 더욱 더 페이스북에 묶이게 되고, 이를 통해 페이스북은 웹 전체에 대한 ‘독점력’을 강화하게 된다. 그리고 한층 강력해진 페이스북의 독점력은 웹의 혁신능력을 현격하게 감소시킨다는 것이 팀 버너스리의 주장이다.

또한 팀 버너스 리는 애플에 대한 비판을 이어간다. 웹의 정보가 ‘아이튠즈와 앱스토어’에 중앙집중식으로 모이고 관리되며, 이들 정보는 외부세계와 철저하게 단절된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그의 비판과 대안이다.

“스마트폰 용 앱(app)에 집중하는 언론기업의 흐름은 웹 전체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앱에 갇혀있는 정보를 당신은 즐겨찾기할 수 없고, 이메일로 친구에게 추천할 수 없고, 블로그에 링크로 연결할 수 없고, 트윗할 수 없다. 대안은 웹 앱(Web app)에 있다. 스마트폰 브라우저로 에서 작동하는 웹 앱을 지원하는 기술-HTML 5-은 그 어느 때보다 발전했다. (의역!) The tendency for magazines, for example, to produce smartphone “apps” rather than Web apps is disturbing, because that material is off the Web. You can’t bookmark it or e-mail a link to a page within it. You can’t tweet it. It is better to build a Web app that will also run on smartphone browsers, and the techniques for doing so are getting better all the time.”

물론 일부 사용자는 ‘가두리 양식장’을 사용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선호할 수 있다. 그러나 가두리 양식장이 아무리 멋지고 훌륭하다 하여도, 다양성, 풍성함 그리고 혁신으로 가득찬 연린 공유의 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팀 버너스 리는 끝으로 망중립성을 훼손하려고 하는 구글과 버라이즌을 비판한다. 망중립성이 훼손되면, 망사업자는 자사의 동영상 서비스를 더욱 빠르게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다른 한편 경쟁사의 그것을 상대적으로 느리게 제공할 수 있게된다.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차별이고 경쟁을 왜곡하는 행위이다(참조: 구글과 버라이즌의 망중립성 훼손 시도: 인터넷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러나 팀 버너스 리의 다소 ‘규범적인(normative)’인 비판이 어느정도 현실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가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는 자유로운 공유의 웹이 어쩌면 먼 훗날 우리가 우리들의 손녀, 손자들에게 들려주는 미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 혼자만이 것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추천: 민노씨네, 반쯤 닫힌 웹의 월드가든에서 아이폰 들고 블로깅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아이폰, 그리고 블로그

아이패드 전용 뉴스서비스 The Daily 평가: 흐르지 않는 정보

스티브 잡스와 루퍼트 머독의 주도아래 지난 몇달 동안 비밀리에 준비된 아이패드 전용 뉴스서비스인 The Daily가 다가오는 12월 9일 세상에 모습을 드려낸다(출처 1, 출처 2). The Daily의 특징은, 무려 100명에 이르는 전문기자들을 포함하여 약 150명의 인력이 투입되어 종이로도 제공되지 않고, 온라인으로도 접근이 불가능한 순도 100퍼센트 아이패드 전용 뉴스 서비스다.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긍정적이고 그리고 작지 않은 기대감을 국내 언론을 포함하여 전 세계 언론 뉴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참조). 이러한 높은 기대감 또는 기쁨에는 나름 충분한 이유가 있다.

아이팟과 아이튠즈, 아이폰과 앱스토어, 아이패드와 아이북스(iBooks)로 이어지는 현란한 마술을 세상에 펼쳐보이며 매우 폭넓은 소비자의 애정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티브 잡스가 이번 프로젝트의 주인공 중 한명이기 때문이다. 20세기 폭스, 폭스 방송, 스카이 방송 등 일렬의 영화 및 방송사, The Sun, The Times, New York Post, WSJ 등 60개가 넘는 신문사, 마이스페이스(MySpace), 훌루(Hulu.com, 31%) 등 인터넷 서비스 등을 소유한 세계 최대 미디어기업의 대표 루퍼트 머독이 또 다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언론기업들은 웹을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된 무료 뉴스시대가 끝나기를 갈망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많은 공을 들여 생산하는 뉴스정보가 ‘종이’의 확장판인 타블렛에서 마침내 응당한 댓가를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The Daily는 더 이상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에 의해 침범당하는 저주받은 땅이 아닌, 매주 99센트를 지불하는 독자들’만’ 들어올 수 있는 약속의 땅이다.

그러나 보다 치밀해져 가는 (인터넷) 연결망 구조에서 타블렛 전용 뉴스서비스가 성공할 가능성은 유감스럽게도 낮아 보인다. 이러한 주장 또는 부정적 전망의 근거를 아래에 정리해 본다.

1. 공적인 그 무엇, 공론장 (publicness/Öffentlichkeit)

종이신문을 읽는 행위에는 ‘나만 신문을 읽는 것은 않니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나와 다른 그 누군가가 뉴스/기사를 읽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 뉴스/기사에 대한 비판적인 뉴스/기사가 있다는 사실에서도 위와 같은 전제는 확인할 수 있다. 종이신문에 기사화된 사건이 방송 뉴스에서 다루어지곤 한다. 나를 위해서만 쓰여진 뉴스가 아닌, 다른 누군가도 함께 읽는 뉴스이기에 내가 그 뉴스를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지 모른다. 다시 말해, 개별 뉴스/기사는 사적 메시지가 아니라 공적인 그 무엇이다. 웹은 뉴스/기사의 이러한 ‘함께 읽는 공적인 그 무엇’으로서의 성격을 더욱 강화시킨다. 링크에 기초한 추천과 인용, URL에 기초한 댓글 등을 통해 뉴스/기사를 발행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행위가 된다. 따라서 앱(App)에 갇힌 뉴스/기사에는 ‘함께 읽는 공적인 그 무엇’이 사라지게 된다.

2. 주목/관심 (attention)

인터넷 공간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 접근성은 거칠게 구분하면 1과 0값을 가지고 있다. 사용자에게 접근성이 열려있어 1의 값을 갖는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발생하는 이동비용(transport cost)는 사살상 0에 가깝다. 클릭 몇번 만으로 사용자는 출처를 달리하는 다양한 뉴스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다음 등이 다양한 뉴스생산자의 뉴스를 사용자들에게 제공하기에 서로 다른 뉴스를 소비하는데 발생하는 이동비용은 0이다. 이동비용이 0이 될 때, 이들 콘텐츠는 소비자의 관심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관계에 빠지게 된다. 거친 경쟁이 이뤄지는 1의 값을 갖는 매우 큰 규모의 콘텐츠 시장과 달리, 0의 값을 갖는 콘텐츠 시장은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규모를 이루게 된다. 규모의 차이만큼 소비자 관심의 총합도 달라진다. 뉴스/기사가 ‘함께 읽는 공적인 그 무엇’의 성격을 잃을 때, 다시 말해 접근성에 제한이 가해질 때 소비자의 관심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3. 연결성

뉴스/기사의 발행은 소통의 과정이다. 뉴스/기사가 링크를 통해 다양한 공간으로 확대될 때, 다양한 공간의 수 만큼 다양한 소통이 발생한다. 링크로 대변되는 연결성이 사라진다면, 나의 친구는 내가 읽고 감동하고, 영감을 얻고, 분노하는 뉴스/기사를 나와 공유할 수 없다. 순도 100퍼센트 아이패드 뉴스/기사는 나와 내 친구가 함께 이야기할 대상을 빼았는다.

아이패드로 상징되는 태블릿의 장점은 무엇인가? 바로 ‘이동성’이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인터넷에 접속하여 콘텐츠를 소비하고, 친구와 소통하는 것! 이것이 아이패드의 장점이다. The Daily는 이러한 태블릿의 장점과 매력을 소비자에게 앗아간다.

4. 커뮤니티

트위터를 통한 뉴스의 확산은 트위터라는 거대한 네트워크에 매우 다양한 부문 네트워크/커뮤니티를 탄생시킨다. 경향, 한겨레의 기사를 링크로 전달하며 소통하는 커뮤니티, 조선, 동아의 기사를 링크로 전달하며 서로의 유대감을 확대하는 커뮤니티 등이 존재한다. 물론 획일적으로 이 두 커뮤니티를 구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옆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사용하는 사람이 어떤 영화를 보는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내 옆자리 앉아 조선일보를 읽는 사람과 한겨레 신문을 읽는 사람은 그들의 소비행위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든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한 뉴스소비가 갖는 과거 포탈중심의 온라인 뉴스소비와의 차이점은 뉴스소비가 사회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회적 뉴스소비에 역행하는 것이 앱에 갇힌 뉴스 The Daily다.

이러한 4가지가 The Daily의 성공을 우려하는 근거다. 그러나 머독과 잡스의 용기있는 실험정신에는 큰 존경을 보낸다.

어떤 한국 언론기업이 이러한 시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삼성, LG가 콘텐츠 혁신에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보여주었던 기억이 내겐 없다. 다음과 네이버가 저널리즘 혁신에 어떤 투자를 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