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열과 통제에 대한 학술 논문 모음

캠브리지 대학교의 Steven Murdoch과 하버드 대학교의 Hal Roberts가 “인터넷 검열과 통제 Internet Censorship and Control”이라는 주제로 묶일 수 있는 학술논문을 한 자리에 모아 놓았다. 여기에 소개된 글은 모두 ‘열린 접근 Open Access’가 가능한 글이다.

모여진 글의 범위는 다행스럽게 법학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실명제에 기초한 중국의 검열제도에 대한 분석, 인터넷 거버넌스에서 권력분점의 문제, 인증기관의 보안문제 등 소개된 글의 테마가 폭넓다.

몇가지 눈에 띄는 글을 소개하면,

미국 상원 공개서한: 구글 글래스와 개인정보보호

구글의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Google I/O 2013)가 절정을 행해달려가던 지난 5월 16일, 미국 상원의 개인정보 위원회는 구글 CEO 래리 페이지에게 8가지 질문을 담은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공개서한의 핵심은 구글 글래스가 평균적인 미국인(“average American”)의 사적 공간을 침해하는지 여부이다.

첫 번째 질문은, 구글이 스트리트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Wi-Fi 정보를 수집했던 사례를 지적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있다. 다분히 공격적이다. 이와 유사하게 구글 글래스가 이용자 또는 비이용자의 데이터를 의도하지는 않지만(“unintentionally”) 수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조치를 구글이 취하는지를 묻고 있다.

이어지는 질문들은 더욱 흥미롭다. 얼굴인식 기능이 존재하는지 여부, 구글이 구글 글래스 이용자 정보를 수집하는지 여부, 수집한다면 어떤 정보를 수집하는지에 대한 질문, 구글 글래스 앱 개발과 관련해서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는지 여부, 구글 글래스와 관련해서 수집되는 정보는 어디에 저장되는지에 대한 질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2013년 구글 개발자 컨퍼런스에서는 구글 글래스 개발팀과 이야기(Fireside Chat)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 구글 글래스에 장착된 카메라가 어떻게 타인에 대해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개발팀은 사진 및 영상 촬영을 타인이 인지할 수 있다고 답변하고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서는 손 동작이나 언어 명령이 필요하기 때문에 또는 영상 촬영시에는 구글 글래스에서 빛이 나오기 때문에, 구글 글래스를 착용한 사람이 “당신을 응시하고 있다면, 그가 사진 및 영상 촬영을 하고 있는 여부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The Verge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당신은 누군가-구글 글래스를 착용한 사람-를 바라볼 때 헤드셋을 착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당신은 눈은 다른 곳을 보고 있거나 감고 있을 수 있다 The Fact is that you can use the headset without looking at someone. Your eyes can be pointed away, or even closed, if that’s what you want to do.”

구글 글래스! 새로운 컴퓨팅 환경과 사용 유익을 가지고올 혁신적인 제품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구글 글래스는 움직이는 CCTV가 되어 구글 서버에 세상의 변화를 기록할 것이다. 이는 반드시 해결되어야할 다양한 사회, 정치적 갈등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 ORG, 디지털 감시 보고서

기록 차원의 글

————-

영국에 소재하며 디지털 시민권을 위한 단체인 Open Rights Group(ORG)는 지난 2013년 4월말 ‘디지털 감시 보고서(Digital Surveillance Report)‘를 발표하였다.

DigitalSurveillance

이번 보고서는 현재 영국에 진행되는 ‘통신망과 인터넷에서 개인정보 수집 및 보관’과 관련된 법안 논쟁과 관련되어 있다. 이른바 ‘탐정 법 Snoopers’ Charter’이라 불리는 ‘Communications Data Bill’은 경찰과 정보국에 통신 데이터에 대한 접근궙을 허락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의 내용 소개 및 비판적 견해는 아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Communications Data Bill – aka the ‘Snooper’s Charter’

보잉보잉의 Cory Doctorow는 이 법안을 “(영국) 보수정부가 관철시키려고 하는 매우 광범위하고 전체주의적인 인터넷 감시 법안a sweeping, totalitarian universal Internet surveillance bill that the Conservative government had sworn to pass”이라 묘사하고 있다.

ORG는 Communcations Data Bill과 관련되 위키사전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위에서 언급한  ’디지털 감시 보고서(Digital Surveillance Report)‘를 제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목차를 살펴볼 때) 영국의 Communications Data Bill에 대한 비판적 분석 뿐 아니라 인터넷 감시에 대한 일반적 접근도 이뤄내고 있는 듯 하다. 또한 이번 보고서는 저널리스트, 학자, 개발자 등 멋진 협업의 산물이다.

독일 언론사와 구글: 로비에 위협받는 월드와이드웹

지난 3월 1일 독일연방의회는 찬성 293표, 반대 243표로 ‘저작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에 통과된 저작권법 개정안(원문 보기)은 일명 “(언론사) 성과보호법(Leistungsschutzrecht)’라 불린다. 이번 사건의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언론사)성과보호법’의 역사와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

“구글이 언론사의 지적 재산을 도둑질해간다”

2009년 6월 독일신문협회는 “독일 언론사는 인터넷에서 정당한 대가없이 언론사의 지적 재산이 착취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일명 ‘함부르크 선언(원문보기)’을 채택한다(관련 글: 돌아온 한국에서 바라본 독일 인터넷 선언). 함부르크 선언에 표현된 착취자는 구글이다. 기사를 위한 투자와 생산은 언론사가 하는데, 그 과실의 적지 않은 부분이 구글 검색과 구글 뉴스를 살찌우고 있다는 주장이다. 함부르크 선언에 참여한 언론사는 약 600여개. 정치적 색깔을 떠나 사실상 독일 언론사 대부분이 선언행렬에 동참했다. 또한 함부르크 선언은 그 해 가을에 있었던 독일 총선을 노린 언론사의 공개적 로비활동이다. 독일 기성 정당 중 이들의 목소리를 거부할 곳은 아무 곳도 없었고, 선거에서 승리하여 집권하게 된 보수 기민당/기사당(CDU/CSU)과 자민당(FDP)은 연립정부 협정서에 언론사의 지적 저작물이 전달자(=구글)에 의해 침해받지 않도록 관련 법을 개정한다는 계획을 담아낸다. 

독일 집권 여당과 언론사의 저작권법 개정 움직임에 대항한 거센 저항이 구글을 비롯한 블로거, 해적당 등 인터넷 활동가들에 의해 조직되었다. 해를 거듭하며 밀고 당기는 과정을 반복한 법 개정 논의는 마침내 2013년을 맞게 되었다. 바로 독일 총선이 다시 있는 해이다. 집권여당 입장에서는, 연립정부의 공약을 지켜야한다는 난처한 처지를 떠나 목전으로 다가온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독일 언론사와의 우호적인 관계가 절실하다. 또한 공식적으로 저작권법 개정에 반대입장을 취하고 있는 야당 사민당(SPD), 녹색당(Die Grünen), 좌파당(Die Linke)의 당 대표, 원내 대표 등 지도급 의원 총 57명이 투표에 불참했다(투표 통계 보기). 야당의 높은 투표 불참율과 그로 인해 저작권 개정법이 의회를 통과한 것이 독일 언론사의 막강한 여론 장악력을 고려한 야당의 전술적 선택이었는지는 물론 확인할 길 없다.

문제가 된 구글의 도둑질: 기사 제목 + URL + 발췌

그렇다면 구글이 독일 언론사를 착취하고 있다는 주장의 내용은 무엇일까?

아래 그림에서 빨갛게 처리된 기사의 발췌(excerpts 또는 snippets)가 경제적 대가없이 구글 뉴스 또는 구글 검색에 노출되는 것을 독일 언론사는 지적 재산 침해라고 주장한다.
snippet

독일 황색저널 ‘빌트(Bild)’를 소유한 악셀 쉬프링어(Axel Springer)의 되프너(Döpfner) 대표는 라이센스 협약없이 언론사의 기사 제목, 발췌를 노출하는 구글을 ‘장물아비 집단’으로 비난하고(출처), 악셀 쉬프링어의 로비스트는 한발 더 나아가 “구글은 탈리반의 한 종류다(Google ist eine Art Taliban)“라며 구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다. 이 정도되면 어느 독일 정치집단이 언론사의 거친 감정을 무시할 수 있을까?

독일 다수 블로거들과 해적당은 독일 언론사의 요구를 “택시가 레스토랑까지 손님을 모셔가니, 레스토랑 주인이 택시에게 돈을 달라는 꼴”이라며 저작권법 개정에 반대운동을 조직한다. 나아가 “어쩌면 구글은 독일 언론사에 경제적 대가를 지불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 기사를 인용하거나 링크를 거는 행위에 블로거나 신규 뉴스 서비스는 대가를 지불할 처지가 아니다. 아니, 이것은 월드와이드웹의 기본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이기에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2013년 2월 수정안: “몇 개의 단어와 최소한의 발췌는 사전협의 없이 가능”

독일 의회는 양측 입장을 중재하기 위해  약 2년에 걸쳐 담당 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영하였고, 지난 2013년 2월에는 ‘수정안’을 제시한다. 이 수정안이 지난 3월 1일 독일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이다. 수정 내용은, 검색 서비스를 비롯하여 블로거는 언론사의 기사를 제목과 함께 몇 개의 단어 또는 최소한의 발췌(single words or the smallest excerpts)를 통해 링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의 경우는 라이센스 협의를 의무화하고 있다. 여기서 “최소한의 발췌”는 매우 모호한 개념이다. 독일 정치권은 이에 대한 해석을 사실상 법원의 몫으로 돌려 놓은 것이다.

리어 왕: “이 시대의 비극은 미친 사람들이 눈 먼 사람을 이끄는 것이다”

이번 법안을 따라야 한다면 기사의 일부를 참조를 위해서 또는 비판하기 위해서 ‘인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링크라는 월드와이드웹의 기본 질서를 붕괴시키는 시도다. 빠르게 변화하는 인터넷 환경에서 언론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혁신과 협력 정신이지, 언론을 정치 권력화하는 것은 인터넷 전체를 파괴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하나인 <리어 왕>에는 두 딸에게 배신당한 리어왕을 빗대어 멋진 표현이 등장한다.

이 시대의 비극은 미친 사람들이 눈 먼 사람을 이끄는 것이다. ‘Tis the time’s plague when madmen lead the blind.” (이러한 인용은 저작자와 사전 협의 없을 경우 불법이 될 수 있다)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의 기본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독일 정치인이 눈 먼 사람들인지, 피할 수 없는 종이신문의 몰락 앞에 떨고 있는 독일 언론사가 눈 먼 사람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집단이 역사를 비극으로 몰고가고 있다는 점이 가슴 아프다.

 

첨언: 구글의 문제점

2011년 한 해 구글의 독일 시장 점유율은 95퍼센트다. 그렇다면 구글이 독일 (주)정부에 내고 있는 세금은 얼마일까? 사실상 0에 가깝다. 독일 언론사가 저작권법 개정 논쟁에서 천문학적 수익 대비 무세금이라는 구글의 문제점을 제기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전술이었다.

 

애런 스워츠(Aaron Swartz)를 기리는 로런스 레식의 강연 “디지털 시대의 법과 정의”

로런스 레식이 지난 19일 하버드 법대의 Roy L. Furman Professor of Law and Leadership 으로 지명되었다. 이에 대한 수락연설을 애런 스워츠에 대한 헌사강연으로 구성했다.

아래는 그 강연 영상.

아래는 발표 슬라이드(키노트) + 육성

누가 인터넷을 통치할 것인가?

(아래 글은 미디어 오늘에 게재된 것입니다)

누가 인터넷을 통치할 것인가?

미국 및 유럽국가 등 이른바 서방국가는 인터넷이 앞으로도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의해 관리되기를 원하고 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등은 인터넷이 유엔(UN)의 관리 아래 놓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의견이 지난 2012년 12월 두바이에서 개최된 국제전기통신연맹(ITU: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 총회에서 충돌했다.

인터넷 거버넌스: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동등하게 함께 결정하자

인터넷은 1969년 소수 학자들의 연구프로젝트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현재 약 30억 지구인이 사용하고 있는 거대 사회공간으로 성장했다. 또한 인터넷은 사회 혁신의 공간이자  경제적 가치창출의 동력이며, 정치적 논쟁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인터넷의 눈부신 발전은 어떤 중앙집중 방식의 조절 및 조정장치 없이 진행되어 왔다. 일부 국민국가 정부차원의 결정이 오늘날의 인터넷을 만들지 않았고, 소수 선구자의 헌신적 노력때문에 지금의 인터넷 구조와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일반 이용자, 개발자, 기업, 시민단체, 정부 등 다양한 이용자 그룹이 인터넷의 구조와 발전방향을 ‘함께 결정’해 왔다. 이러한 공동 협의 및 공동 결정의 문화를 일부에서는 ‘다중 이해당사자주의 (multi-stakeholderism)’라고 부른다. 이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인터넷은 훌륭하게 공동 관리되어 왔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다중 이해당사자주의가 앞으로도 인터넷 관리의 원칙으로 자리잡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 입장에 따르면, 인터넷에 기초한 사회 및 경제 혁신은 이용자 그 누구도 제3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열정을 인터넷을 통해 말하고 표현할수 있는 열린 환경에서만 비로소 가능하다. 탈중심적인 구조, 다양한 기능의 중복을 자동으로 축소시키는 시스템, 서로 이질적인 시스템 환경에서 작동하는 상호운용성, 연결 보편성을 가진 하이퍼텍스트 전송 프로토콜(HTTP) 등 현재 인터넷 구조 및 표준은 IT 전문가 중심으로 1986년 개최된 ‘인터넷 표준화 기구(IETF: Internet Engineering Taskforce)’ 회의를 시작으로 국제적 표준과 운영원리로 발전해 왔다. 초기 인터넷 탄생과 IETF의 선구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클라크는 “우리는 왕, 대통령, 선거를 거부한다. 우리는 거친 의견일치와 작동하는 코드를 믿는다 We reject: kings, presidents and voting. We believe in: rough consensus and running code(출처)”라는 다소 직설적인 표현을 통해 초기 인터넷 운영 정신을 웅변했다.

다중 이해당사자주의: 과도한 이상주의?

1998년에는 ‘국제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기관(ICANN: 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이라는 비영리단체가 탄생하여 인터넷 주소 관리를 담당한다. 단체 본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다. 이 단체 또한 ‘다중 이해당사자주의’를 조직운영 원리로 채택했다. 기술자, 인터넷 이용자, 기업, 그리고 정부 대표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회담 형식의 논의 과정을 통해 도메인 네임 시스템(DNS), IP 주소 할당 등을 결정한다. ICANN의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베르트랑 드 라 샤펠(Bertrand de la Chapelle)은, 모든 사람에게 (인터넷) 정책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의미하는 ‘다종 이해당사자주의’는 “단순하면서도 혁명적인 원칙(출처)”이라고 치켜세운다. 드 라 샤펠에 따르면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 사이에서 형성되는 복수의 네트워크가 ‘인터넷 거버넌스’의 생태계를 구성한다. 이들 ‘다중 이해당사자주의’ 지지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또 다른 조직의 이름은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IGF: Internet Governance Forum)’이다. 2006년 탄생한 IGF는 각국 정부 대표와 NGO 대표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 인터넷 주요 정책을 함께 결정하는 이른바 인터넷 정상회의다.

각자가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만큼 목소리를 내는 느슨한 조직과 회담 문화! 무언가 도덕적 규범 냄새가 난다. 참여자에게 발언권이 이상적으로 부여되고, 위계적 질서가 없는 회담! 마치 하버마스가 꿈(!)꾸어 온 ‘이상적 대화상황(ideal speech situation)’ 또는 ‘위계질서 없는 대화(non-hierarchical discourse)’가 마침내 인터넷에서 가능해진 느낌이다. 때문에 이들 인터넷 거버너스 지지자들에게는 지금까지 훌륭하게 작동해온 완벽하고 순결한 인터넷 운영원리를 수정할 아무런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 러시아, 브라질, 인도의 반기: 사이버 주권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 등 일부 국가들은 인터넷을 ‘사이버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국민국가의 책임아래 두고자 하며, 지금까지 지켜져 온 ‘다중 이해당사자주의’에 대한 반대입장을 지난 2012년 12월 국제전기통신연맹(ITU) 회담에서 천명했다. 최근 인터넷 이용자가 급상승하고 있으며 그 중 대부분이 이른바 비서방국가에서 속한다. 그런데 이들 비성방국가 정부입장에서 보면 다양한 인터넷 구조, 표준, 운영원리 논의는 여전히 서방 전문가, 서방 기업, 서방 시민운동가 그리고 서방 정부 대표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모두가 함께 규칙을 정한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국제회의 및 협상에 참여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 전문성, 폭넓은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함 등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들 대표들의 몫이다. 서방 시민대표들은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지만 비서방국가 시민대표들은 회담장에서 어색한 미소만 지어야 한다. ‘국제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기관(ICANN)’이 미국 정부와 기업의 영향력 아래에 있지 않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미국, 스위스 등에 위치한 각종 인터넷 정책기구부터 남아메리카 또는 아시아로 옮겨야 한다. 인터넷 운영 규칙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주체를 차라리 유엔(UN)으로 하자. 이러한 일렬의 주장을 중국,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이 지난 12월 회담에서 제기하였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자유로운 인터넷’에 대한 유엔의 “기습(sneak attack)”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인터넷 감시체계가 인터넷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다

그러나 이와같이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를 유엔(UN)이 주도하는 것을 위협으로 보는 시각은 두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첫 째는, 2012년 7월 유엔(UN) 인권이사회가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 등 인터넷 권리 보장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했다는 점과 이 결의안에 미국 및 유럽국가 뿐 아니라 브라질, 이집트, 나이지리아, 튀니지, 터키 등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현재 인터넷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보안’, ‘안보’, ‘트래픽 관리’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감시체계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로운 인터넷을 옹호하는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이란, 중국, 러시아 등 인터넷 검열을 강화하는 비서방 국가를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미국 보잉의 자회사인 네이러스(Narus)는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투르크메니스탄, 오만 등 독재국가에서 시민감시와 검열에 사용되는 DPI(Deep Packet Inspection) 설비 등 다양한 사이버 보안기술을 수출하는 대표적 기업이다. 감시기술을 수출산업화하는데 있어 독일 기업, 스위스 기업, 프랑스 기업들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지난 2012년 11월 유럽연합 의회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이른바 독재국가를 대상으로 미국 및 유럽기업에 의해 생산된 인터넷 및 통신 감시 및 검열 장비 수출이 최근 크게 증가하고 있다. 또한 2012년 11월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퍼트레이어스(David Petraeus)는 혼외관계가 드러나 이에 대한 책임으로 사임했다. 이 사건이 알려진 것은 미국연방수사국(FBI)에 의한 퍼트레이어스 국장의 이메일 검열을 통해서다.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미국 중앙정보국 국장의 이메일 또한 얼마나 손쉽게 감시체계 아래에 놓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인터넷에 대한 감시와 검열이 보편성을 띄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몰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기술을 확산시키는 데 작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에 유럽국가와 미국은 자유롭지 않다. 물론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터넷 감시국가임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internetFreedom2012년 인터넷 자유지도(출처)

인터넷이 민주주의를 확대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에서 일어난 26살 야채상 청년의 분신은 ‘재스민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장기독재와 경제정책 실정을 비판하는 저항운동은 2011년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등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이른바 ‘아랍의 봄’ 사건이다. 이 때 아랍 민주화 운동의 확산에 있어 인터넷과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강조하며, 연쇄적으로 진행된 아랍인의 저항을 ‘페이스북 혁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페이스북과 휴대폰은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넘어 저항을 조직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고, 인터넷은 저항운동을 보다 쉽게 조직하고, 저항운동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끌어내는데 이용되었다.

그렇다고 민주주의에 대한 인터넷의 기여가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권위적인 국가는 비판적인 내용이 인터넷에서 소통하는 것을 손쉽게 차단하고 있으며,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식이 전파될 수 있는 서비스를 금지시키고 있다. 이란 시민의 경우 정부가 부여한 인터넷 사용증을 소지할 때만 인터넷, 아니 인트라넷(intranet)에 접속할 수 있으며, 러시아의 경우 마침내 전화와 인터넷에 대한 100퍼센트 감시망 구축을 완료했다. 나아가 인터넷은 권위적인 정부를 홍보하는 선전, 선동의 도구로 언제든지 활용될 수 있다.

인터넷 거버넌스의 과제: 인터넷 이용자의 권리 확대

이른바 비서방국가가 지금까지 지켜져온 ‘다중 이해당사자주의’ 관행을 비판하는 논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 표준화 기구(IETF)’,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IGF)’, ‘국제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기관(ICANN)’ 등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국가의 시민단체, 개발자, 기업 등이 보다 쉽게 협의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직의 구조를 개혁할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미국과 유럽에 위치한 기구의 본부를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로 옮기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 및 유럽국가에서 산업화되고 있는 인터넷 감시기술에 대한 제한 또는 반대를 위한 운동에 나서야 한다. 페이스북, 구글, 애플 등이 이용자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이용자 보호 정책을 각 기구의 중심과제로 발전시켜야 한다.

시민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레베카 멕키넌(Rebecca MacKinnon)은 자신의 책  ‘연결된 자들의 합의(Consent of the Networked)’에서 ‘인터넷 시민(citizens of the internet)’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다. “인터넷 시대에서 자유의 미래는, 시민이 미래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넘겨받고 그리고 이를 위해 행동하는 의식을 형성하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여기서 ‘인터넷 시민’은 이용자, 소비자 개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러한 인터넷 시민(의식)을 형성하는 것, 이것이 인터넷의 희망이자 인터넷 거버넌스의 새로운 원칙이다.

2013년, 웹의 귀환을 꿈꾸다

아래 글은 슬로우뉴스에 게재한 것입니다.

——————–

웹에 공개한 콘텐츠가 모든 인터넷 사용자에 의해 검색되고, 읽히며, 링크되고, 댓글을 생성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홈페이지 또는 블로그를 통해 인터넷에서 개인과 단체가 자아를 만들고 가꾸고 나누는 시대 또한 지나갔다.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서로 다른 생각이 기록되고 쌓이는 공간, 거칠고 다채로운 감정이 연결되는 ‘공적 공간’으로서 월드와이드웹은 점차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모래로 덮인 월드와이드웹

숨 가쁜 하루에 맞닿은 일상의 단면이 트위터에 기록되고, 친구와 나누고 싶은 글과 동영상이 모래알이 되어 페이스북 사막에 파묻힌다. 혹 타임라인이라는 모래폭풍이 지나가면 한 친구가 공유했던 멋진 동영상은 다시는 찾을 수 없다. 가끔 긴 글을 쓸 때면 구글+를 찾는다. 구글이 혹시 여느 다른 서비스처럼 언젠가 구글+서비스를 포기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만약 bit.ly가 수익성을 고려해 3.ly처럼 URL 단축 서비스를 중단한다면 수억만 개의 링크가 사라지게 된다. 혹은 애플이 iOS에서 앱만을 허용하고 웹 브라우징을 차단하기로 결정한다면, iOS 사용자는 월드와이드웹에 접근할 수 없으며 애플이 만든 또 다른 인터넷에 갇혀 살아가야 한다. 앱은 서로가 서로에 링크로 연결될 수 없으며, 뉴스 앱에서 개별 뉴스의 URL은 확인할 길 없다.

만약 스마트폰에서 앱만이 작동한다면, 만약 페이스북이 계속해서 오픈그래프를 특정 기업에게만 허용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월드와이드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다. 특히 1999년 공인인증서 제도가 도입된 이래로, 공인인증서를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 구현하는 액티브엑스는 한국 웹 브라우징 환경을 그 밑동부터 썩게 만들었다.

월드와이드웹이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폐쇄적인 인터넷 환경이 보편화되는 것을 넋 놓고 지켜볼 수 없는 일이다. 2013년은 웹을 되찾는 해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웹은 ‘좋았던 (그들만의) 과거’를 허풍떠는 이들이 말하는 웹이 아니다. 여기서 웹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을 악마화하고, 보이콧하는 웹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네이버, 카카오, 페이스북, 애플, 구글 등으로부터 배워야한다. 사용자를 멍청한 바보로 취급하지 않고, 수많은 사용자의 필요(needs)에 정확하고 훌륭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이들 기업은 경제적으로 성공했다. 이들 기업은 RSS나 트랙백, 이메일 기반 공유 등 어려운 시스템을 사용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인터넷 엘리트,  진화하지 않는 서비스에 대한 집착

한편에서 일부(!) 블로거, 개발자, 웹 디자이너, 인터넷 활동가 등 이른바 ‘인터넷 엘리트’는 독특한 양념으로 만든 요리를 먹지않는 이들을 조롱하고, 요리 예술로 돈을 벌려고 하는 자를 무시한다. 다른 한편에서 네이버, 카카오 그리고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업은 차분하게 평균 사용자의 필요(needs)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어떤 기술적 사전지식 없이도 재미있게 사용할 수 있는 쉬운 온라인 서비스를 만들어왔다. 이들 기업이 ‘서비스 이용약관’을 통해 수많은 사용자의 권리 축소를 시도할 때 인터넷 엘리트들은 팔짱 끼며 방관했다.

이들 기업은 공통적으로 사용자의 필요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개별 사용자의 행위 하나 하나를 통해 돈을 벌 수 있음을 깨달았다. 구글은 애드워즈(AdWords)와 애드센스(AdSense)를 통해 링크를 웹의 화폐로 전환시켰다. 애플은 바이러스, 스팸 그리고 잦은 컴퓨터 다운을 경험한 사용자에게 깔끔한 인터넷 생태계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 개발자와 저작권자가 수익원을 찾고 있고, 사용자는 편안함이란 무엇인지 새롭게 깨닫고 있다. 트위터는 콘텐츠 링크 공유를 위해 복잡한 블로그가 필요 없음을 알아차렸고, 페이스북은 웹에서 사용자가 1분 안에 각자의 관계망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손쉬운 서비스를 제공한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쉬운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사용자의 (공유)행위를 웹의 화폐로 전환하고 있다. 핀터레스트(Pinterest)는 수천 개의 단어 또는 낯설게 보이는 URL보다 한 장의 사진이 적잖은 경우 더욱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직관적이며 호소력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들 기업을 (경제적으로) 성장시켰던 환경은 열린 웹이다. 그런데 이들 기업 스스로 열린 웹을 무시하고 망치고 있다. 그렇다고 열린 웹에 대한 배반이 언젠가 이들 기업에게 복수로 돌아갈까? 유감스럽지만, 아니다. 한국 10대와 20대 중 대다수는 ‘링크’를 알지 못한다, 아니 알 필요가 없다. 공유된 콘텐츠는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에서 단 한 번 클릭으로 또 다른 확산의 길을 걷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메일을 인터넷 중심 소통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를 강요받을 때 이들은 저항한다. 열린 인터넷 환경을 경험하지 못한, 그래서 그 필요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대가 성장하고 있다.

열린 웹과 멀어진 게으른 자의 고백

나에 대해 고백한다. 지난 3년간 트위터, 페이스북, 아이폰을 누구보다 열심히 사용했다. 그러는 동안 오히려 블로그와는 멀어졌다. 노트북을 켜서 블로깅하기 보다는 스마트폰을 통해 그때 그때의 생각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담았다. 게으름이다. 블로그에 남겨진 댓글보다 페이스북의 ‘좋아요’ 수와 트위터의 ‘RT’ 수에 민감했고 페이스북에 달린 댓글에 다시 댓글을 달았다. 또 고백한다. 이메일로 전달되는 블로그 댓글 소식에 브라우저를 켜서 댓글 달기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없다. 형편없는 인터페이스로 이뤄진 워드프레스(WordPress) 앱은 블로그 댓글에 대한 애정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지금쓰고 있는 이 글 또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질 것이고 토론될 것이고, 그리곤 쉽게 잊힐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그리고 트위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글에 대한 반응에 내 마음이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게으름과 얄팍한 마음을 탓하지만, 월드와이드웹이 단지 수십 개에 지나지 않는  기업의 손에 떨어진 상황을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웹은 인류 문명의 지식과 문화를 축적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인터넷에 접속한 모든 이에게 열려있어야 한다. 만약 열린 공간에서 서로 엮여 있는 지식과 문화가 점점 닫힌 공간에서 쌓여가고, 이 공간이 소수 기업에 의해 지배된다면, 그리고 정보를 남길 곳이 이들 소수 기업의 폐쇄 공간(서버)에 한정된다면, 사용자는 스스로 권리를 잃어 갈 테고, 이때 월드와이드웹은 천천히 망가지고, 그리고 결국 사라질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부터 작은 글 추천도 블로그에 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글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공유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반응을 스토리파이(Storify)를 통해 블로그에 기록할 것이며, 열린 공간에서 축적되고 연결되는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 노력할 것이다.

2013년 월드와이드웹의 귀환을 함께 꿈꿉시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만으로 열린 웹을 만들지 못한다. 디자이너, 개발자, 기획자 등의 참여가 절실하다.

개발자와 디자이너에게 부탁합니다. 블로그를 처음으로 알게 된 10대가 사용해도 쉽고 간편한 것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계속해서 블로그 기능과 블로그 디자인을 혁신하고 확장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 주십시오. 모바일 환경에서도 서로 다른 블로그 글을 엮을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해 주십시오. RSS(리더)처럼 복잡하지 않으며 페이스북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블로그 구독시스템을 만들어 주십시오. 플래터(Flattr) 또는 페이스북 ‘좋아요(like)’와 유사하지만 열린 웹에서 작동하는 평가시스템을 만들어주십시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소수 기업에 의해 성격이 결정되지 않은 열린 웹을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제안해 주십시오.

블로거, 개발자, 디자이너, 인터넷 활동가 여러분, 2013년 월드와이드웹의 귀환을 함께 꿈꿔봅시다.

독일 2013년 주유소 실시간 가격 공개 의무 법제화

2013년부터 독일 소재 모든 주유소는 가격 변동을 실시간으로 공개해야만 한다. 한국도 다음, 한국석유공사 등이 제공하는 주유소 가격을 비교하는 유사 서비스가 존재한다. 그러나 가격변동이 실시간으로 반영되고 있지 않으며, 주유가격정보 대상으로 모든 주요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단점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12년 11월 8일 독일연방의회를 통과한 ‘시장투명청’ 법안은, 1. 전기 및 도시가스의 도매가격과 2. 모든 주유소 소매가격을 ‘실시간’으로 그리고 기계가 읽을 수 있는 데이터로 공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과 이를 담당할 행정부서인 ‘시장투명청(Markttranspranenzstelle)‘을 한국식 ‘공정거래위원회’ 산하에 설치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정보출처를 밝힌다면 누구나 시장투명청이 제공하는 실시간 가격정보를 활용하여 웹, 앱 등 상업(!)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투명하게 공개되는 가격정보를 활용한다면 1. 소비자에게 유익이 되는 주유소 가격 정보를 스마트폰, 자동차 네비게이션 등에 신속하게 제공될 수 있다는 장점 뿐 아니라, 2. 예를 들면 SK, GS 등 업체별 가격정책의 차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어 공급자의 불투명한 가격정책을 개선할 수 있는 시장유익이 가능하다.

이번 독일 에너지 정보공개법은 ‘(긍정적) 외부효과’라는 경제학 개념으로 설명 가능하다. 외부효과는 어떤 한 경제주체-여기서는 ‘정부’-의 결정이 이 결정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시장참여자-여기서는 ‘주유 업체와 소비자’-에게 긍정 또는 부정의 경제효과를 미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외부효과는 양봉업자, 환경오염 유발 기업 등 정부가 아닌 기업의 행위가 다른 경제 주체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 등 시장실패를 설명할 때 언급되는 개념이다.

이번 독일의 경우 정보공개 또는 Open Data 등 정부정책이 1. 가격하락을 유도하여 소비자 경제 유익과 2. 가격투명성 등 시장투명성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후 정보공개 및 Open Data 정책이 경제학적 논쟁으로도 확산될 중요한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참조: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유사한 주유소 정보공개 의무화 정책을 이미 2012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지난 1년간의 정보공개 효과에 대한 보고서가 분명히 공개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찾게 되면 블로그를 통해서 소개하겠다.

망 중립성이란 무엇인가?

인터넷은 지난 30년을 거치면서 20억 명 이상의 이용자를 연결하는 전 지구적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인터넷은 다양한 혁신을 가져왔으며,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정보에 대한 쉬운 접근을 가능케했다. 또한 인터넷은 예기치 못한 수 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이용자에게 표현의 자유에 대한 빼앗겨서는 안되는 권리를 요구케하였다. 인터넷은 우리의 다양한 일상의 변화를 가응케했다. 서로가 쉽게 소통하고, (함께) 지식을 만드며 나아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논쟁에 이용자가 참여하는 것을 가능케했으며, 경제 환경 뿐 아니라 국민경제 전체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렇게 인터넷에 대한 다채로운 이용 가능성이 증대할 수록, 이렇게 인터넷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가 커질 수록 인터넷의 시스템 구성(architecture)과 운영 원칙들에 대한 논쟁도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인터넷 트래픽은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nternet Service Provider: ISP)에게 특정한 데이터를 차단하거나, 선호하거나 또는 억제하고자 하는 동기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가능성 또는 동기는 표현의 자유, 경제 (혁신) 등에 결코 작지않은 영향을 미쳐왔고 앞으로도 그 영향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망 중립성은 결코 전문 망 기술자만이 관심을 가져야하는 주제가 아니다.

인터넷 초기의 데이터 전송은 매우 단순했다.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은 자신들의 망에 어떤 데이터가 전송되는지 관심가질 이유가 없었다. 또한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는 자신들의 망에 어떤 데이터가 전송되는지 기술적으로도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이용자는 인터넷을 어떻게 사용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게임, 메신저, 이메일 또는 서핑을 하든 상관없이 이용자 모두는 인터넷에서 자신이 사용하는 데이터에 대한 동일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망의 끝단(the end of internet)’에 위치한 이용자에 대한 비차별 그리고 이용자가 선택하는 데이터에 대한 비차별은 인터넷이 가진 놀라운 혁신능력이며, 현재까지 인터넷과 이용자가 함께 이룬 놀라운 진보의 힘이기도 하다. 초기 미국의 AOL은 이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 및 애플리케이션을 통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 이용자들은 망 중립성이라는 개념을 알고있지는 않았지만 AOL 담장 너머 흐르는 인터넷의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했고 소비함으로써 AOL의 이른바 ‘닫힌 정원(walled garden)’ 전략을 좌절시켰다. 하지만 인터넷을 둘러싼 기술적 환경이 변화였다. 오늘날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는 전송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구별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 놀라운 기술의 이름은 “데이터 패킷 통제 Deep Packet Inspection: DPI”다. DPI는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에게 그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인터넷에 흐르는 데이터의 종류와 내용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을 제공한다.

때문에 망 중립성 논쟁의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망 운영자, 다시말해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에게 DPI 기술을 사용케 할 것인가?”, “누가 어떤 조건에서 인터넷에 전송되는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을 가질 것인가?” 또는 “인터넷 이용자 모두가 인터넷을 어떻게 이용할지 스스로 결정할 주권을 가져야하는가?” 또는 “우리는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가 특정 데이터나 특정 애플리케이션을 차단하거나 그 속도를 늦추거나 하는 개입행위를 허락할 것인가?” 등의 질문이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는 QoS 등 다양한 ‘망 관리 (net management)’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유선 및 무선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는 고객들에게 결코 100퍼센트 제공한 적 없는 ‘전송속도’를 판매하고 있다. 광고와 계약서에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최대”라는 표현을 통하여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는 자신들이 필요할 때 그리고 필요한 데이터의 흐름을 조정하고 있다. 누가 또는 어떤 데이터가 우선권을 가지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다. 이들은 때론 자사 또는 계열사 서비스 및 데이터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한편으로 파일공유(filesharing)의 속도를 늦추고 다른 한편으로 자사의 주문형 비디오(Video on Demand:VoD) 서비스는 안정적인 속도로 제공한다. 이동통신사업자는 마이피플, 보이스톡을 차단하거나 추가 요금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언제 무엇이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고객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이들의 “최대” 속도 OO의 상품을 판매는 계속되고 있다.

끝으로 망 중립성 정의에 있어 이용자는 개인 및 기업 인터넷 이용자 뿐만아니라 네이버, 다음, 카카오톡, 구글 등 콘텐츠 및 서비스 공급자(Content & Service Provider: CSP)도 포함된다.

“Fuck you, this is my culture”

지난 11월 초 아제르바이젠의 바쿠(Baku)에서는 UN에서 개최한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The Internet Governace Forum)“이란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의 연설자 중 한 명으로 나선 스웨덴 해적당 유럽의회 의원 아멜리아 안데르스도테르(Amelia Andersdotter)는 짧지만 매우 명쾌하게 저작권과 (이동)통신사업자가 현재 인터넷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정치, 사회, 문화의 걸림돌임을 지적하고 있다.

연설 후반부에는 조지 마이클(George Michal)의 멋진 표현인 “Fuck you, this is my culture”가 등장한다. 해적당을 떠나 인터넷 거버넌스에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동영상과 발표문에 잠시 관심을 가져보시길!

연설문:

Thank you, Chairman, ladies and gentlemen, participants of the Internet Governance Forum 2012.

My name is Amelia Andersdotter. I am a member of the European Parliament on behalf of the Swedish Piratpartiet since December 2011. I am mindful of the fact that I am one of only two women speaking in the opening session. Also, I am probably the youngest person speaking. I am only 25 years old.

The Piratpartiet wants to change the legislative framework for communication, interaction, innovation and culture. We formed around the idea that communication technologies and culture present fantastic ways of building broad global communities.

We want interactions, social, cultural and economical to be determined by and under the control of the people interacting.

When information, communication and culture can be freely accessible and used, which on the internet is basically always the case, this should as a general principle always be allowed and any exceptions or deviations to that general rule must be kept exceptional.

Unfortunately, laws at both nation state level and the international level are very ill‑equipped to achieve these goals.

For instance, direct interventions by nation states into communication and cultural flows of their citizens are ubiquitous in the world. More insidious are the restrictions on communications imposed on users by private network operators or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holders.

We hear words like ”freedom of speech” and ”Human Rights must be respected online”, but so far very few top political figures in the world have acknowledged, or are willing to acknowledge, that this will require regulatory intervention on some private sectors. We may also have to let go of some regulatory protections for private sector actors that we’re currently putting in place to block communications between people.

It is clear to me both at the personal and at the political level that we need to fundamentally reconsider our approach to communication. We need communication to be open and accessible. This is how we make friendships, it is how we make societies, it is how we form worlds.

The control over communities and the ability to shape them must be with the communities themselves. Infrastructure must be regulated to enable that ability and such autonomy.

The raw material for cultural identities, the culture itself, must be made more accessible than is currently the case. Copyright is not only an untimely instrument for the 21st century, it is doing active harm to culture and to communities around the world.

During one of my travels this summer I met a young man who told me with a straight face that he liked open torrent trackers because he wants to be able to seed the unpopular files[1]. I want to seed the unpopular files. I want to see the unpopular torrents and I want to live in a world where a social network, a community on its own initiative preserves the cultural wealth through the spontaneous contribution of all its members. All of the changes that are needed in our laws to ensure that these communities can exist must be undertaken and now.

To all of you here and to all of the Governments and to the public officials and lobbyists that haven’t been able to bring themselves to support these actually very extensive reforms that are necessary for these places and creative communities to exist, I would like to paraphrase George Michael from I think 1992, ”fuck you, this is my culture”[2] and if copyright or telecommunications operators are standing in the way, I think they should go.

Thank you.

[1] In the conference transcription they have put ”see the unpopular files”.
[2] Cruising culture and George Michael, in the Guardian from 2006. And the real quote was ”Fuck off, this is my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