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자유 선언: 인터넷이 위협받고 있다!

영국 학자 찰스 리드비터(Charles Leodbeater)는 그의 저서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원제: We Think)’에서 인터넷이 사회 및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바라보는 다섯 가지 서로 다른 시각을 훌륭하게 소개하고 있다.

첫번 째 시각은 인터넷이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다(“No Big Deal”)라는 입장이다. 이베이(eBay)는 벼룩시장의 온라인 변형일 뿐이고, 아마존(Amazon)은 훌륭한 추천서비스를 제공하기는 하나 배달 시스템 이상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입장을 오래동안 견지한 대표적인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MS)다. 최근 온라인 사업에 대한 입장을 크게 수정하기는 하였으나 MS는 인터넷이 가져오는 변화를 과소평가했고 그 때문에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감내해야만 했다.

두번 째 시각은 인터넷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크나, 그 영향을 지금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주장이다. 데비드 에저튼(David Edgerton)은 “The Shock of the Old(오래된 기술의 충격)”이라는 책에서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확산되어도 구식 기술이 사라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자동차가 발명되었다고 바로 마차산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음원소비가 대중화되어도 CD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독일인 칼 벤츠(Carl Benz)가 1885년 처음으로 가솔린으로 구동되는 자동차를 만든 것 자체는 시장질서파괴 기술(disruptive technologies)이 아니었다. 벤츠의 가솔린 자동차는 엉청난 매연을 쏟아 내고 쉬이 고장나는 기이하고 값비싼 물건일 뿐이었다. 자동차가 마차산업을 몰락시키고 새로운 대중교통으로 자리매김을 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차 대전을 전후하여 포드자동차의 대량생산체계가 확산되고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곳곳에 만들어진 이후에야 자동차는 마차를 역사의 뒤안길로 내쫓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인터넷이 가져올 변화를 지금 예측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르다는 것이 에저튼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매우 급진적이다. 카카오톡, 스카이프, 페이스타임, 보이스톡 등으로 인해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전통통신산업의 몰락이 또는 미국과 영국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종이신문산업의 몰락이 이제 겨우 ‘서막’일 뿐인가? 월드와이드웹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지 겨우 20년이 지났을 뿐이다.

세 번 째 주장은 인터넷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긍정적 영향보다 압도적으로 크다는 입장이다. 앤듀류 킨(Andrew Keen)은 “The Cult of the Amateur(아마추어를 추종함)”에서 세상의 복잡한 관계를 해석하고 수많은 정보 중에서 주요 정보를 솎아 내는 전문가의 권위가 인터넷을 통해 땅에 떨어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다”며 검색서비스가 인간의 독립적 사고능력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고 비난한다. 2006년 발표된 존 라니에(John Lanier)의 화제작 ‘Digital Maoism(디지털 마오이즘)’도 세번 째 주장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네 번 째 주장은 인터넷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강조한다. 이를 대표하는 사람은 클레이 셔키(Clay Shirky), 요차이 벵클러(Yochai Benkler) 등이다. ‘집단지성이라 무엇인가(원제: We Think)’의 저자 리드비터 또는 제프 자비스(Jeff Jarvis)도 이러한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대두되고 있는 주장은 인터넷은 긍정적 효과를 가지고 있으나 근래 빠른 속도로 그 긍정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바이러스 및 악성코드의 확산, 이를 막기 위해 탄생한 심층패킷검사기술(DPI)이 인터넷의 데이타 흐름을 검열 및 조정하는 경향, 독재국가에 의한 인터넷 검열, 다양한 망중립성 훼손 시도 그리고 페이스북 및 애플이 만들어가는 ‘가두리 양식장(Walled Garden)’ 등이 그 위험의 징후들이다. 요나단 찌트레인(Jonathan Zittrain)의 “The Future of the Internet, How to Stop it(인터넷의 미래, 어떻게 막을 것인가)”이 다섯번 째 입장을 대표하는 저작이다.

이러한 다섯 번째 입장을 대표하는 목소리들이 지난 7월 2일 “인터넷 자유 선언 Declaration of Internet Freedom”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2012년 1월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된 SOPA와 PIPA 반대 시위 참여 단체 및 개인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최소한의 요구를 이번 선언문에 담아냈다. 또한 이에 동의하는 단체 및 개인을 찾아 서명운동에 나선 것이다. 현재 서명에 참여한 단체는 EFF, Free Press, Amnesty International, Mozilla 재단, Reddit 그리고 독일의 Digitale Gesellschaft 등이다.

슬로우뉴스는 이번 인터넷 자유 선언을 아래에 간략하게 번역 및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는 자유롭고 열린 인터넷을 지향한다.

우리는 (유선 및 무선)인터넷과 관련된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이 투명해지고 그 과정에 참여가  보장되도록 힘쓸 것이다. 또한 이를 위해 아래의 다섯 가지 원칙이 지켜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 인터넷을 검열하지 말라.

접근권: 빠르고 경제적으로 적절한 수준의 (유선 및 무선)인터넷이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열림: 인간 모두가 자유롭게 서로 연결하며,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열린 인터넷. 인간 모두가 자유롭게 쓰고 읽으며, 자유롭게 서로를 지켜보고 서로에게 말을 하며 서로를 경청하며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열린 인터넷. 인간 모두가 자유롭게 창조하며 혁신할 수 있는 열린 인터넷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

혁신: 제 3자의 허가나 방해없이 혁신하고 창조할 수 있는 자유를 우리는 보호하고자 한다. 새로운 기술이 차단되어서는 안되며 혁신적인 서비스가 (널리) 사용된다고 그 혁신 서비스를 처벌해서는 안된다.

개인(정보)보호: 인터넷에서 사적 정보는 보호받아야 한다. 또한 사용자 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사용자 개인이 알 수 있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하며, 각 개인 사용자가 어떠한 기계를 사용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번 ‘인터넷 자유 선언’의 탄생 배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 글을 참조하십시요.

The Declaration of Internet Freedom: how the net’s minutemen plan to protect the future

노동력 남용 사회: 불 타버린 대한민국

한국으로 돌아온 지도 이제 2년 반을 넘어서고 있다. 대학에서 강의하며 벤처를 공동창업하며 다양한 곳에서 강연하며 인터넷주인찾기슬로우뉴스를 통해 멋진 블로그 벗들을 알아가며 숨가쁘게 지내온 시간이다.

‘노동’의 날을 맞아 지난 2년 반 동안 느낀 한국사회에 대한 단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노동력

지난 1992년 리우 지구 정상회의를 통해 탄생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개념은 그 이후 환경운동에 있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지속가능성은 환경운동을 넘어 사회적 기업, IT 생태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이 개념은 농업경제에서 차용된 것으로 새롭게 자라나는 것 보다 많은 양이 소비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1997년부터 7년 간 연립정부에 참여한 독일 녹색당에 대한 감성적 지지 때문인지 몰라도 독일 생활을 통해 내 몸에 벤 것은 적게 소비하는 습관이다. 가능하다면 흐르는 물에 설거지를 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고, 운전을 무척 좋아하지만 가능하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음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애쓰고, 오래 사용하기 위해 자주 청소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독일에선 녹색당만이 ‘지속가능성’을 외치는 것이 아니다.

건설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낮은 독일경제에서는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은 금지에 가까운 수준으로 제한되고 있다. 이미 1960년대 보수당인 독일 기민당(CDU)은 부동산을 10년 이내 팔고 사는 거래행위를 통해 생기는 시세차익 대부분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대를 낮게 유지시키고 이를 통해 인금을 안정시켜 파업 등 노사갈등의 원인을 줄여 자본주의를 보다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지속가능한 자본주의 발전모델’의 원조는 보수 독일 기민당에서 비롯되었다. 기민당은 부동산 세금정책을 심지어 주식 거래에도 적용하여 주식을 1년 내로 사고팔 경우 발생하는 시세차익 대부분을 세금으로 환수하고 있다. 투자는 하되 투기는 하지말라는 정책의도였다. 이 1년이 과하다며 그 기간을 6개월로 줄인 것은 1997년 집권한 독일 사민당(SPD)이다. 집세 걱정 없는 사회, 전세값 및 집값 동향과 관련된 뉴스를 읽지 않아도 되는 사회, 부동산과 주식을 통한 한탕주의가 없는 사회, 바로 지속가능성의 출발이다. 노동하는 한 개인에게 천문학적 액수인 수도권 아파트 시세. 이를 위해 대다수는 새롭게 생겨나는 노동력보다 야근, 주말근무 등을 통해 사라지는 노동력의 규모가 큰 삶을 살아가고 있다. 대다수가 화전민처럼 부동산과 자녀 교육비를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불 태우며 살아간다.

노동력 뿐 아니라 양심도 불 태우고 있어

이념을 떠나, 지지하는 정당을 떠나 최소한의 양심으로 판단할 때 잘못된 것은 우리 주변에 수 없이 많다. 타인의 재산을 강탈하는 행위, 성희롱을 강한 남자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마쵸 근성 등등. 개인 양심에는 다양한 사회환경에서 살아가다 보면 사라지는 부분도 있고 새롭게 성장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 균형이 깨지게 되면 양심도 지속가능성을 상실하게 된다.

대학에는 특수 대학원과 각종 고위자 과정이 넘처난다. 제한된 강의제원에서는 자연스럽게 학부강의는 부차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영어강의 비율에 따라 교과부의 대학지원예산규모가 비례하자 각 대학에는 모순덩어리 영어강의가 확산되었다. 이렇게 몰락하는 대학교육을 질타하는 대학 교직원의 성명서를 볼 수 없었다.

대다수 언론사의 뉴스사이트를 보자. 성인광고로 둔갑한 비뇨기과광고가 넘쳐난다. 기사 내용 및 수준과 상관없이 한국 저널리즘 전체가 황색 저널리즘으로 변한지 오래다. 이에 괴로워하며 기자직을 계속할지 말지를 술자리에서라도 고민하는 기자를 난 아직 만나지 못했다.

지난 설 명절. 컨설팅하고 있는 모 회사의 정규직 직원에게는 작지 않은 액수의 상품권이 명절선물로 전달되었다. 대다수 비정규직원은 그들에게만 주어진 화장품 세트를 들고 퇴근하며 “내가 비정규직이야”라는 명찰을 달았다. 이에 가슴 아파하며 상품권을 반납하고 화장품 세트를 들고 퇴근한 정규직 직원이 과연 있었을까. 참고로 이 기업의 노조는 민주노총 산하다.

에너지 경제만 지속가능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재충전 기회를 잃고 내일의 노동을 두려워하는 사회, 괴로워하는 양심마저 마음에서 자라나지 않는 영혼. 화전민처럼 불 태워버린 노동과 양심. 2012년 노동절을 맞은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일본 대지진과 기술의 진보

21세기 들어 본격화되고 있는 디지털화는 인류에게 많은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를 통해 쉽고 저렴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다양한 웹 서비스를 통해 시공간의 장애를 넘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있다. 트위터는 정보 유통의 효율을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으며, 유튜브는 새로운 오락과 표현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개개인의 만족감을 높이고 업무의 효율성을 크게 끌어올리는 훌륭한 웹 서비스들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인간의 기본 욕구와 최소한의 존재적 위엄이 이뤄지거나 보장되어야 한다. 시급 4110원으로 고된 삶을 살아가는 청소노동자에게, 평균 수면시간에 턱없이 모자라는 잠을 자며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고등학생에게, 불공정한 관행에 시달리는 영화계 비정규직 스태프에게, 굶어죽어가는 예술가에게 진일보한 클라우드 기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는,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는 페이스북의 소셜 게임은, 공유와 협업에 기초하여 인류의 지식을 체계화하는 위키피디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3월 11일 일본에 닥친 예상치 못한 강도 높은 지진과 쓰나미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들이 처한 어둠과 죽음의 공포가 트위터를 타고 전달되며, 위험에 처한 이들이 내쉬는 숨소리에 담긴 절망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

한편 수 백만, 수 천만 명이 처한 위급한 상황과 파괴된 그들의 생활 공간은 지구촌 사람들에게 매우 강렬한 슬픔과 연민을 자아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자연재앙은 나에게 기술진보의 의미와 한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연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폭풍, 화산폭발, 지진 등 천재지변이 일어난다면, 그리고 이로 인해 전기가 끊기고 전화가 두절된다면 현재 내가 빠져 있는 다양한 소셜 미디어 서비스는 무슨 의미를 가질까? 블로깅, 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스카이프에서 검색 서비스까지 이 모든 것은 자연의 변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명제에 대한 찬반 논쟁보다 근본적인 질문들을 나는 지금 대면하고 있다. 거주공간이 물에 잠긴다면, 전기가 나가 어떤 물건도 살 수 없다면, 수도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땅과 건물의 흔들림에 놀라 밖으로 뛰어 나갔지만 모든 교통수단이 멈추어 있어 어디로 향할지 막막해진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디지털화의 가속, 전통 신문의 몰락과 흥분되는 다양한 온라인 저널리즘의 시도, 만질 수록 사용할 수록 즐거운 스마트폰의 다채로운 기능, 온라인을 통해 접하는 멋진 영상들, 공유, 소통, 연결의 다양한 가능성, 이 모든 것은 자연의 변덕스러움에 자유롭지가 못하다. 더우기 많은 연구자들이 예고하듯 지구 환경의 불규칙성이 앞으로 더욱 증폭된다면 디지털의 자연 종속성은 더욱 심해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웹 서비스의 상업화에는 많은 돈이 몰리고 있다. 게임 산업에도 천문학적 액수의 돈이 투자되고 있다. 이에 비해 디지털 영역에서 자연을 연구하고, 자연 재앙을 예측하고, 재앙 발생시 대피를 돕는 디지털 시스템 연구에 대한 산업적 그리고 사회적 관심은 미미한 편이다. 자연 재앙이 발생할 경우 병원, 소방소, 공공 대피장소, 주요소, 위험성 높은 산업시설, 통신망 시설을 통합하여 위기 정보를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대피를 조직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모바일 기초 웹 서비스 개발에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다.

노동하는 인구 중 절반이 넘는 수치가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이들의 경제적 불안감과 그리고 이와 연결된 인간 존재감에 대한 회의가 한국 사회에 팽배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의 발전과 구성원의 행복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 사회적 재앙이 예견되는 이 때,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을 매우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공유하는 웹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부동산 정보와 교육 정보가 모이고 유통되는 수 많은 웹 서비스에 몰리는 자본 규모 만큼은 못될지언정 다양한 사회적 연대를 투명하게 지원하는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와 투자 또한 필요하다.

수 백, 수 천명의 목슴을 앗아가고 수 백만, 수 천만 명의 삶의 터전을 파괴한 일본 대지진을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며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투자를 기대해 본다.

2009년을 보내며: WAR IS NOT THE ANSWER?

2009년 하반기는 블로그와 거리를 두었던 시기였다. 핑계라면, 새로운 생활환경에 대한 적응 때문에 읽고 쓸 시간이 부족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음~ 내년에는…^^

그래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 되니, 지난 시간을 살짝 뒤돌아 보며 ‘개인적인 교훈’ 하나 쯤은 여기에 적어두고 싶다.

새롭게 시작한 한국생활, 남이 보기에 난 참 ‘불만 덩어리’였으리라. 이것도 맘에 안들어하고, 저것고 맘에 안들어하고. 작은 일에 넘 민감하고. 이런 모습을 그렇다고 2010년에 싹 버리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은 일에 걸려 넘어지는 일은 없어야 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하여 여기에 어울리는 동영상 하나를 소개한다.

원전이 저탄소, 녹색성장에 도움이 된다?

원자력 에너지 옹호론자들은 원전을 옹호하는 그들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1. 원자력은 CO2를 배출하지 않는다.
그럼 방사능 배출은 친환경인가?라는 비판에 직면하는데, 여기에도 나름 반론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2. 기술이 발전하여 방사능 배출 가능성 이제 없다.
그럼 핵 폐기물에서는 방사능이 배출되지 않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크고 작은 원전 사고는 뭔가?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는데, 여기에도 나름 반론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3. 폐기물은 땅속 깊은 곳에 묻으면 된다. 원전사고는 기술력이 떨어진 나라에서 발생하는 거다. 우리는 아니다.
그리고 원전 옹호론자들은 몇가지 추가적인 근거들을 제시한다.
‘핵 기술’은 Spillover 효과가 크다. 즉 연관산업에 미치는 긍정적 산업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모두 독일에 살 때 들었던 얘기들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원전 옹호론자들의 논리가 어디까지 발전할지 지켜볼 일이다.
원전이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주장, 독일 원전옹호론자들도 미처 생각치 못했던 상상력의 새로운 지평이다. 원전이 녹색이라니….. 말문이 막힌다.
그냥 ‘원전 플랜트’ 수출해서 외화 벌어들인다고 얘기하지….
원전이 녹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황당하지만, 이 주장을 여과없이 받아들여 재생산하고 있는 한국언론들을 보면 넘 가슴 아프다.
이와 연관된 유쾌한 동영상 시리즈를 보자.
독일에 RWE라는 커다란 전력기업이 있다. 한국의 ‘한전’ 같은….
이곳에서 올 가을 ‘녹색 이미지’를 얻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광고를 제작했다. 아래 광고가 그것이다.

며칠 후 YouTube에 이 광고에 대한 패러디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린피스가 제작한 패러디:
끝부분에 나오는 자막은, 독일의 2008년 재생에너지 비율은 18%인데 RWE의 에너지 생산량 중 재생에너지 비율을 2%밖에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즉 RWE의 위선을 두 문장으로 폭로하고 있다.
가장 압권은 다음의 동영상이다. RWE의 광고 장면 장면에 사실에 근거한 반박 자막을 달았다.
첫번째 자막은, RWE의 풍력 비율은 0.1%라는 점,
두번째 자막은, 현재 화면에 나오는 ‘조력’발전을 RWE는 하지 않는다는 점,
세번째 자막은, 전선망 교체를 하지 않아서 대부분 낙후되어 문제라는 점,
다섯번째 자막은, RWE의 연간 CO2 배출량은 1억7천만톤이라는 점 (독일 전체의 20%에 이르는 수치라는 점),
마지막 자막은, RWE는 총 5개의 원전을 가지고 있는데 왜 이 광고에는 이 원전들은 나오지 않냐고 묻고 있다.
‘한전’ 광고나 삼성의 Tomorrow 광고에 이러한 패러디를 한다면? 아마 명예훼손 소송을 각오해야할 듯….  다수의 소비자들은 각종 법제도에 의해 상상력의 날개가 꺽여있는 데, 원전 옹호론자들은 원전이 녹색성장이라는 녹색 상상력을 내걸고 2009년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트위터와 해적당: YEAAHH~

트위터에 기반한 소통이 정치운동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 그 대표적인 그리고 매우 재미있는 사례가 지난 9월 독일에서 있었다.
웃음이 절로 나오는 그 사례를 당시 소개하고 싶었으나, 한국생활 적응기라 여유가 없었다. 약 2주 전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트위터 컨퍼런스(140conf)‘ 에서 이 독일 사례가 발표된 것을 보고 짬을 내서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지난 9월 독일 총선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현직 독일 수상이었던 앙겔라 메어켈(Angela Merkel)이 선거운동-유세-을 위해 독일 북부 항구도시 ‘함부르크’를 방문하게 된다. 그 소식을 알리는 포스터가 거리에 붙게되고, 그 포스터 위에 한 시민(?)이 Und Alle so: “Yeaahh”라고 적는다(관련 플리커 사진보기). 플리커 사진을 보면 DIE KANZLERIN KOMMT (수상이 온다)가 크게 쓰여 있고 그 옆에 Und Alle so: “Yeaahh”, 즉 “그럼 모두가 이렇게: Yeah라고 외치는 거야”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Yeah는 영어-독일어 아니다-다. ‘오 정말’, 이 정도의 뜻(?)이다. 보통 힙합 가수들이 공연할 때 대중들이 함께 외치는 “Yeah”다.

그런데 유세 때 연설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단적으로 Yeah라고 외치면, “오 정말”은 어느새 비야냥이 될 수도 있다.
“일자리를 창출하겠습니다”
“정말”
“선진국가를 만들겠습니다”
“정말”
“비정규직의 차별을 시정하겠습니다”
“정말”
“집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정말”
실제 어떤 모습이었는지 동영상으로 보자. 긴 동영상을 다 볼 필요는 없다. 앞의 1-2분 정도면 충분하다.

위의 “Yeah 운동”은 모두 트위터를 통해 조직되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트위터를 기반으로 ‘독일 해적당(영어 위키 보기)’의 주도아래 모인 사람들의 운동이다. 함부르크는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독일 해적당의 활동이 매우 왕성한 곳이다. 위의 동영상에도 ‘해적당’ 깃발이 보인다. 그런데 Yeah 운동은 이른바 ‘사전에 조직된’ 것은 아니다. “Yeah운동”은 이른바 ‘번개’라고 번역할 수 있는 Flashmob(한글 위키보기)의 형태를 띄고 있다. 즉 해적당이 독일 수상 메어켈이 함부르크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조직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정치운동을 조직하고 있었던 함부르크에 거주하고 있던 트위터 사용자를 중심으로 많은 Follower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다. 이 날 이후 메어켈 수상이 가는 곳 마다 Yeah와 해적당은 선거 끝나는 날까지 함께 했다. 이와 관련된 독일 공영방송의 보도를 잠시 보자. (독일어를 못하시는 분은 보실 필요 없다^^)

이 “Yeah 운동”은 웹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었다고 한다. 보수당 CDU의 선거운동 관련 사진들이 플리커(Flickr)에 올려졌고, 그 밑에는 모두가 함께 Yeaahh라고 댓글을 달고, 트위터에 보수당 관련 뉴스가 링크되면 모두가 함께 Yeaahh라고 외친다. Yeah 이외의 군더더기는 없다. 즐거운 사용자 운동이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오늘 소개하고 싶었던 동영상,  ’트위터 컨퍼런스(140conf)‘ 에서 발표된 독일의 Yeah운동 소개 동영상을 보자. 5분짜리 동영상이다. 가능하다면 끝까지 보시기를….

추천: 박정희 시대를 위한 변명 / 최우성

한겨레를 그래도 꾸준히 찾는 이유는 가끔 훌륭한 글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이런 글도 이제는 아주 가끔이다.

추천글은, [한겨레프리즘] 박정희 시대를 위한 변명(최우성)이다. 성장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추상적인 수준에서, 그러나 대중적인 언어로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성장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분배’가 ‘성장’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외에는 그리 할 말이 많지 않다. ‘성장주의’의 무모함을 비판하는 위의 글도 그리 새로운 시각을 전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평등이 성장을 잡아먹고 있다는, 꿈을 심어주지 못하는 자본주의는 이미 죽은 것이라는 표현들이 읽는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경제학을 전공하면 배우게 되는 성장이론. 신고전학파의 ‘성장이론’이나 (포스트) 케인주의학파의 ‘성장이론’ 등에서 보이는 ‘성장 가능성’이라는 ‘블랙박스’에 대한 그 무한한 ‘신뢰’를 비판할만한 능력은 내게 없다. 그러나 죽기 전에 기회가 된다면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주제이다.

돌아온 한국에서 바라본 독일 인터넷 선언

11년이 지나서야 돌아온 땅이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새롭다거나 혼란스러운 느낌은 없다. 속타고 아픈 사연을 온라인 매체를 통해 경험하다, 거리의 얼굴에서
직접 느끼는 것이 다를 뿐.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옛친구를 만나는 기쁨 못지않게 두고온 정들이 발길을 묶는다. 마스크를 쓴 채 운동하는 사람들 틈에서 신선한 아침공기에 대한 유년의 아득한 기억을 떠올리기에 내 머리는 너무 늙어버렸다. 이렇게 적응하는 것이겠지… 매연과 끈끈하게 엉키어 살아가는 저 거리의 사람들 사이로 내 생활의 뿌리를 내려본다. 힘! 내보는 거다.


2주일이 넘도록 열어보지 못한 RSS 리더기에는 수많은 ‘피드’들이 쌓여있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몇몇 독일인들에-이들의 정체(?)는 후술- 의해 만들어진 ‘인터넷 선언문‘이다.

이 선언문의 배경을 간략히 설명하고, 짧은 평을 시도해 본다.

배경 1: 하이델베르크 호소와 함부르크 선언
이번 ‘인터넷 선언문’이 나온 배경은 두가지다. 하나는 독일 및 유럽의 작가, 학자, 그리고 언론사 및 다양한 미디어 기업 대표들이 공개적으로 구글의 ‘지적 재산 도둑질’을 비판하자, 이에 대한 반론으로 선언문이 탄생했다. 두번째는 지난 9월 12일 유럽 여러 도시에서 있었던 ‘freedom not fear’라는 데모의 사전 행사 성격을 선언문은 가지고 있다.
전자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올 3월 말,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모인 (노년의) 작가들과 학자들은 이른바 ‘하이델베르크 호소문’ (
원문 보기)을 통해 200여년 이어져 내려온 저작권법을 보다 강력하게 인터넷에 확대 적용할 것을 요구했다 (호소문에 대한 독일어 위키 보기). 호소문의 주적은 ‘구글 북스‘다.

그리고 지난 7월 초 독일 함부르크에 보인 600여 유럽 언론사 및 출판사 대표는 ‘구글 뉴스‘를 주적으로 하는 ‘함부르크 선언’에 동참한다(함부르크 선언 영어 원문 보기). 선언의 핵심은, 열심히 일한 것은 자신들인데 그 과실을 모두 따먹은 것은 구글 뉴스라는 것,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것, 하여 정치권이 나서라는 것이다. 그들의 영향력(!)은 역시 가공했다. 유럽연합 집행위가 이 문제를 본격 검토하기 시작했고, 9월말 총선-의원내각제인 독일에서 총선은 바로 대선을 의미-을 앞둔 독일 각 당 후보들은 이들 언론사 대표들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 했다.
이 두 가지 호소문과 선언문에 대한 찬반 토론이 신문지상과 온라인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독일 인터넷 선언’이 탄생했다.

배경 2: 아동 포르노 검열을 반대하다
트래픽 및 방문자 통계에서 세계 5위권 사이트에 속하는 youporn.com을 독일에선 합법적으로 접속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 검/경찰 당국이 비타협적으로 추적/검거하는 행위는 이른바 ‘어린이 포르노 (영어 위키 보기)’ 제작, 유통 및 소비행위다. 여기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문제는 ‘어린이 포르노’가 인터넷을 통해 유통 및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막기 위해 독일 여성부장관은 2009년 초 ‘모든 인터넷을 실시간으로 검열’하여 ‘어린이 포르노’의 확산 및 유통을 막겠다고 선언하였고, 관련법이 지난 6월 독일 연방의회에서 통과되었다. 독일 전체 인터넷 사용자의 0,01% 규모에도 못 미치는 어린이 포르노 유통업자 및 소비자를 잡기 위해 전제 100%를 실시간 감시하겠다는 어마어마한 법이다. 이 법 제정에 반대하는 거센 저항이 온라인을 통해 조직되었고, 급기야 독일 해적당이 창당되면서 반대흐름은 거리로, 선거운동으로 이어져 갔다. 그 흐름 가운데 ‘인터넷 선언’은 위치해 있다.

비판 1: 감동이 없는 선언문
그럼 비판을 시도해 보자. 첫째, ‘선언(manifest)’의 감량이 떨어진다. 선언이라함은 모름지기 역사적 흐름을 읽어내고, 선언 발의자들이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그림을 가능하다면 감동적으로 전달했어야 했다. 이러한 ‘감동’이 빠진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선언문이 마치 ‘컨설팅’용 발표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발의자들의 면모를 살펴보자.  Mercedes Bunz는 규모있는 베를린 지역신문 온라인 편집장으로 일하다 최근 영국 가디언으로 직장을 옮긴 박사급 여기자다. Thomas KnüwerJeff Jarvis를 능가하는 독일 미디어 전문 블로거다. 아니 그의 본업은 독일 최대 (보수) 경제일간지 ‘한델스블라트‘의 인터넷 전략담당 기자다. Sascha Lobo는 기자이면서 -사실 기자는 그만 둔 것 같다- 미디어 관련 컨설턴트로 일한다.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자랑하는 그는 최근 영국 이동통신사 ‘보다폰’ 광고에도 직접 출연하며 이른바 ‘블로거 세상’을 선포하기도 했다. 다음 Robin Meyer-Lucht. 박사급 미디어 컨설팅 회사대표다. 독일의 ‘허핑턴 포스트’를 만들겠다며 그가 만든 팀블로그 Carta는 일부에서 ‘컨설턴트들의 자기 PR장’으로 비판받고 있다. Mario Sixtus는 독일 ‘비디오 케스팅’의 선구주자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독일 제2공영방송의 인터넷 전문가로 고용되었다. Stefan Niggemeier는 독일 최고의 비판 블로거이자 이른바 파워블로거(2년 연속 전체 순위 2위)다. 전직은 ‘전업 기자’, 현직은 블로거이자 각종 언론 ‘자유 기고가’다. 아마 발의자 중 유일하게 사회적인 비판글을 많이 쓰는 사람일 거다. 그렇다고 이들의 경력이 문제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문제는 선언문의 깊이가 없다보니, 선언문이 그들의 경력에 기초한 ‘산업 지도’쯤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비판 2: 인터넷의 성격은 이를 만들어 가는 자들의 몫이다
인터넷에서 ‘자유’는 자연발생적으로 ‘불가침’한 그 무엇이 아니다. Andrew Dubber의 “The Internet was not made to make money. It was made for people to communicate”라는 말은 인터넷 탄생을 설명하는 정말 멋진 표현이다. 그러나 현재 인터넷에서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돈을 버는 기업과 사람’이다. 이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 주도아래 인터넷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음이 우려스럽다. 그들은 정치권, 법조계, 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들 중심의 인터넷 세상을 착착 빠른 속도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인터넷 사용자의 자유.
이것은 이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이 피나게 싸워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그리고 어렵게 지킬 수 있는 그 무엇이다. 독일 인터넷 선언문에는 안타깝게도 그 자유에 대한 갈망이, 그리고 이를 갈망하는 ‘사람’이 빠져있다.


바하문트님의 Death of the Swedish Model에 보내는 트랙백

개인적으로 ‘스웨덴 모델’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하문트님의 스웨덴 모델에 대한 비판아닌 비판은 잘못되었습니다. 이것은 ‘상대비교’의 오류입니다.

스웨덴 처럼 독일의 복지 제도는 ‘몰락(falling)’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배경과 원인을 나열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몰락’은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무상 의료(? 원래부터 무상 의료는 아니었습니다)’수준이었던 사회제도가 그 한계에 도달하면서 또는 사회적 요인(인구 구성 변화 등)의 변화로, 그 성격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1) 스웨덴 또는 독일 모델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의도’와 ‘기획’도 사회변동에 시기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균열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노동인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고령화 사회의 의료제도는 과거 70, 80년대 의료제도와 같을 수 없습니다.
2) 스웨덴이나 독일 사회에서 ‘불만’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금을 많이 내야하는 사람은 비판할 점이 수 없이 많을 것이고, ‘노동자’만 사회제도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일자리’ 없는 상대적 빈곤층 입장에서 바라봐도 스웨덴 및 독일 사회제도는 문제점 투성입니다.
그리고 여기 아주 훌륭한 ‘미국’의 동영상 뉴스를 함께 감상하시죠. ‘가난하고 전체주의에 찌들은 사회주의 국가, 스웨덴’을 The Daily Show에서 방문했습니다.
(영어가 저같이 힘드신 분들도 꼭 보세요. ‘비틀기’의 압권입니다. 어떻게 비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납니다.)
1탄
The Daily Show With Jon Stewart Mon – Thurs 11p / 10c
The Stockholm Syndrome Pt. 1
thedailyshow.com
Daily Show
Full Episodes
Political Humor Jason Jones in Iran
2탄

온라인 저널리즘의 길을 묻다 1: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 공론장

‘공론장 (Öffentlichkeit / public sphere)’에 대한 이해-다음 글-를 돕기위해 몇개의 곁가지를 치면서 시작해 보겠다.

1. Öffentlichkeit는 정확하게 번역하면, ‘사적이지 않은 공적인 그 무엇’을 말한다. 독일어가 영어, 영어가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장/영역 (sphere)’이라는 공간적인 추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공간 개념’이 ‘공론장’ 의미를 이해하는데 제약을 가한다. 그러나 번역어 ‘공론장’을 이 글에서는 일단 그대로 사용하겠다 (개인적으로 Öffentlichkeit에 조응하는 영어는 publicness라고 생각한다).
 
2. ‘개인 독백’이 아닌 대화(conversation) 또는 의사소통(communication)은 ‘공론장’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그리고 ‘의사소통’은 언제나 의사소통의 ‘구조 (structure)’를 동반한다. 또한 이 소통에 참여하는 ‘주체(actor)’와 소통의 구조를 형성하는 ‘과정 (process)’도 중요하다. ‘공간’보다는 ‘대화/소통’, ‘구조’,’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공론장’ 이해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과 ‘구조’는 변화 가능하다는 점도 기억하자.

3. ‘공적인 그 무엇’이라는 설명적인(descriptive) 공론장 개념에서 출발해, ‘모든 시민에게 열려있어야 한다 (open access)’ 등 ‘규범적인(normative)’ 공론장 개념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사람이 하버마스(Habermas)다. 그런데 하버마스는 그의 규범적 공론장 개념을 역사적 사례 분석을 통해 설명한다: 유럽 국민국가 형성과정과 그 과정에서 시민계급(부르조아지)의 공론장 형성 과정 분석이 그것이다. ‘A여야 한다’라는 규범적 정의와 역사 사례 분석. 뭔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비판적이고 심층적인 내용을 만들어 내는 신문 또는 (공영) 방송의 중요성을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에서는 유추할 수 있지만, 그 안의 세세한 작동원리를 분석하기에는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은 한계가 많다. 그러나 ‘지향점’을 훌륭하게 제시한 점은 하버마스의 업적임이 분명하다. 이 때문인지 ‘공론장‘ 개념이 하버마스의 전유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론장=하버마스’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4. 독일 사회학계와 언론학계에서 보다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공론장 개념은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의 그것이다. 루만의 공론장 개념과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통합시키려는 시각을 다음 글에 소개하겠다.

5. 2009년 한국의 공론장은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까? 어떤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을까? 어떤 구조적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하나의 우회로를 더 확인해 보자.

6. 하버마스가 공론장 개념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것은 1962년 발표한 그의 교수자격논문 “공론장의 구조변동 (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 / 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을 통해서다. 최근 독일 언론학과(media studies)를 중심으로 “공론장의 구조변동” ‘다시 읽기 강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평가할 때, 여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6.1.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정보기술 및 의사소통기술은 ‘사회변동’을 동반하고 있고, 이에 따라 ‘공론장의 구조변동’도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고 믿는 – 아직은 가설 수준 – 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공론장의 구조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면 ‘저널리즘/언론’도 새롭게 정의되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의구심이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6.2 독일학계에서는 비주류에 속하나 하버마스의 대중적 – 특히 68세대에 속하는 원로(?) 정치인들과 원로 기자들 사이에서 – 인기는 매우 높다. 이러한 그가 2007년 한 신문 기고문에서 ‘신문산업’을 지원하는 적시타를 날렸다.
하버마스가 기고한 일간지는 ‘쥐트 도이체 짜이퉁 (Süddeutsche Zeitung)’-독일 최대 전국일간지-이다 (관련글 보기). 당시 해당 신문의 수익률이 떨어지자-적자가 아니라!-, 소유주들은 신문사를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투자전문회사에 매각되는 것을 우려한 (관련글 보기) 하버마스가 자신의 ‘공론장 이론’에 근거하여 기고문을 작성한 것이다- 하버마스도 이렇게 쉬운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 처음 알았다 ^.^ -. 6.2.1. 신문사들이 지나치게 ‘이윤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도 문제인데, 이러한 신문사들이 투자/투기자본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공론장’의 건강성이 크게 해손될 것이다. 6.2.2. 비판적이고 심층분석에 기초한 신문기사들이 만들어내는 공론장은 민주주의의 필수조건이다. 6.2.3. 이러한(!) 신문이 만들어 내는 공론장은 ‘공공재’이다. 6.2.4. 물, 전기, 가스처럼 ‘언론 공공재’가 문제없이 공급/소비되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 과제이다. 이러한 하버마스의 주장은 2009년 현재 독일신문 경영진들에게 왜곡되어 활용되고 있다. 어려움에 처한 신문사에 대한 정부 구제방안이 필요하다는 각종 칼럼, 로비 등에 하버마스의 기고문이 주요 논거로 등장하고 있다. 하버마스는 기고문에서 ‘신문(newspaper)’이 아니라 ‘언론(press)‘이라는 단어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7. 다음번 글에서는 ‘인터넷/웹이 없는 공론장 모델’에 대한 설명을 시도해볼 계획이다. 그 구조와 특징을 기초로 인터넷/웹의 확산 이후 공론장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또는 변할수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개인적인 고민 하나: 글의 문체가 너무 ‘거만’하다. 양해를 구합니다.)

연결 글: 온라인 저널리즘의 길을 묻다: 연재를 시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