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다스: 2012년 최고의 콘텐츠 마케팅

2012년은 한국 사회에 소셜미디어 마케팅이 비로소 시작된 한 해로 기록될 만하다. 특히 기업들이 페이스북 팬페이지 운영에 뛰어들면서 다양한 성과와 사례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2013년에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여러분들의 주말은 어떠셨어요”라는 이른바 진정성(?) 있는 대화 또는 각종 이벤트 중심의 빈곤한 마케팅 전략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 1학기 대학에서 소셜미디어 마케팅을 강의(참조 1, 참조 2, 참조 3, 참조 4)한 이래로 잠시 관심 밖에 두었던 소셜미디어 마케팅에 관련된 글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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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8일, 마이클 조던 이후 미국 농구의 새로운 스타로 등극한 데릭 로즈(Derrick Rose)가 경기 중 부상을 입는다. 십자인대파열로 데릭 로즈는 치료와 재활을 위해 약 1년간 농구 코트를 떠나야 했다. 로즈의 부상 소식이 시카고 불스의 팬들을 멘붕에 빠지게 했다는 점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멘붕에 빠진 것은 시카고 불스 팬 만이 아니었다.  2012년 초 아디다스는 데릭 로즈에게 1억8500만 달러를 지불하고 13년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아디다스 마케팅 팀에게 로즈의 부상 소식은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아디다스는 160에서 200달러에 이르는 ‘D Rose 3′을 앞세워 마이클 조던을 앞세운 나이키의 조던 시리즈가 석권하고 있는 농구화 시장에 힘겨운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디다스 농구화를 신은 로즈가 농구 코트에서 사라졌고, 각종 프로모션 행사에서 로즈를 찾을 길 없다. 또한 언제 로즈가 코트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thereturn

출처: thereturn.adidas.com

농구화 시장에서 브랜드를 상징하는 스타의 부상은 매출 하락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고 나아가 상황을 역전시키고자 아디다스는 이후 소셜미디어 마케팅의 모범사례에 올릴 수 있는 수준의 훌륭한 콘텐츠 전략을 선뵈고 있다.

로즈를 다시한번 아이콘을 부활시킬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이는 로즈의 컴백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다. 물론 전통 미디어도 로즈의 부상과 재활 상태에 대한 뉴스를 생산한다. 그러나 전통 미디어의 한계는 명확하다. 기자들이 병원 또는 재활센터 입구에 늘어서 로즈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으려는 시도, 관련 의료진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는 것 등이 전부다. 목발을 딛고 있는 로즈의 모습, 허약해 보이는 영웅! 농구화를 팔아야 하는 아디다스에게는 가장 피하고 싶은 장면이다.

아디다스는 부상을 강함의 선언으로 연출하기 시작한다. 데릭 로즈에게 더 이상 보스턴 셀틱스, 마이애미 히트는 경쟁상대가 아니다. 데릭 로즈의 경쟁자는 그 자신의 육체다. 얼마나 멋진 골을 넣을 수 있는지, 얼마나 훌륭하게 드리블을 할 수 있는지가 농구 스타를 평가하는 척도가 아니다. 바로 컴백하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자가 스타다.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아디다스는 TV와 웹을 위한 광고를 제작한다. 아래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광고는 로즈의 부상과 ‘미래’에 있을 그의 컴백을 담아낸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절묘하고 천재적인 연출은, 로즈의 운명을 시카고 불스의 팬과 그리고 전체 시카고 시의 운명을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감상해 보자.

이 광고의 마지막에는 트위터 해쉬태그 #thereturn 이 적혀 있다.
두 번째 단계로 아디다스는 6개의 웹 동영상을 통해 전통 미디어가 담아낼 수 없는 ‘로즈의 현재에 대한 독접적 접근’을 팬들에게 선사한다. 만약 전통 미디어 기자들이 로즈의 ‘현재’를 확인한다면 그의 약함, 아직까지 회복되지 못한 그의 무릎 등이 보도될 것이다. 그러나 6개의 웹 동영상 시리즈에서는 컴백을 준비하는 영웅의 어떠한 허약함도 찾을 수 없다. 한국어 자막의 6번 째 동영상이다.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확산된 6개의 웹 동영상은 농구 코트에서 사라진 데릭 로즈를 다시금 사람들이 이야기하도록 만들었다. 아래 그림에 표현된 #thereturn이 포함된 트윗량의 변동 흐름을 보면, 아디다스의 thereturn 프로젝트가 집중된 10월과 11월에 높은 버즈량을 확인할 수 있다. 10월 26일 전후의 고점(peak)은 10월에 시작되는 농구시즌을 맞어 아디다스가 내보낸 TV광고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래 그림에서 재미있는 것은 시카고 불스의 경기결과가 좋지 않을 때 마다 #thereturn 양이 많아지는 현상이다. 경기결과와 트윗 양 사이에 부정의 상관관계를 예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시카고 불스의 시즌 경기결과 보기).

#thereturn tweets

출처: Topsy 

#thereturn 해쉬태그가 포함된 트윗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시카고 불스 팬들이 로즈의 복귀를 염원하는 내용이다. 두 번째는 로즈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는 사람들의 트윗이다. 여기까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이다. 특이한 것은 세 번째 유형으로 아래 스포티파이 트윗 모음에서 첫 번째 트윗이 여기에 해당된다. @matt_letterman은 시카고 불스이 팬이 아니다. 그는 #thereturn을 자신에 대한 조롱조로 사용하고 있다. #thereturn이 유행어가 되어 대중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케터 입장에서 볼 때는 이보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트위터를 활용한 마케팅 수단의 확장을 볼 수 있는 트윗은 위의 스포티파이 트윗 모음의 두 번째 트윗과 세 번째 트윗이다. 아디다스 마케팅팀은 트위터의 쪽지(DM) 기능을 활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로즈 복귀 소식을 가장 먼저 알고 싶으세요? 그럼 저를 팔로잉하세요! 그럼 쪽지(DM)로 그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드릴께요!” 로즈 팬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그 결과를 보자. @adidasHoops의 계정은 여느 마케팅 계정과 달리 팔로워(약 48000명)가 팔로잉(약 900명)대비 약 52배 규모다. 일반적인 기업 마케팅 계정에서 상상할 수 없는 팔로워/팔로잉 대비다.

로즈의 컴백이 확정되는 시기에 아디다스의 #thereturn 프로젝트는 트위터 사용자와 보다 친밀한 대화를 이끌어 가며 그 정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아디다스 프로젝트는, 비용대비 효과 측면 뿐 아니라 점점 중요성을 얻고 있는 콘텐츠 전략 및 콘텐츠 마케팅 측면에서도 소셜미디어 마케팅의 모범으로 기록될 가치가 있다.

누가 인터넷을 통치할 것인가?

(아래 글은 미디어 오늘에 게재된 것입니다)

누가 인터넷을 통치할 것인가?

미국 및 유럽국가 등 이른바 서방국가는 인터넷이 앞으로도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의해 관리되기를 원하고 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등은 인터넷이 유엔(UN)의 관리 아래 놓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의견이 지난 2012년 12월 두바이에서 개최된 국제전기통신연맹(ITU: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 총회에서 충돌했다.

인터넷 거버넌스: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동등하게 함께 결정하자

인터넷은 1969년 소수 학자들의 연구프로젝트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현재 약 30억 지구인이 사용하고 있는 거대 사회공간으로 성장했다. 또한 인터넷은 사회 혁신의 공간이자  경제적 가치창출의 동력이며, 정치적 논쟁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인터넷의 눈부신 발전은 어떤 중앙집중 방식의 조절 및 조정장치 없이 진행되어 왔다. 일부 국민국가 정부차원의 결정이 오늘날의 인터넷을 만들지 않았고, 소수 선구자의 헌신적 노력때문에 지금의 인터넷 구조와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일반 이용자, 개발자, 기업, 시민단체, 정부 등 다양한 이용자 그룹이 인터넷의 구조와 발전방향을 ‘함께 결정’해 왔다. 이러한 공동 협의 및 공동 결정의 문화를 일부에서는 ‘다중 이해당사자주의 (multi-stakeholderism)’라고 부른다. 이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인터넷은 훌륭하게 공동 관리되어 왔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다중 이해당사자주의가 앞으로도 인터넷 관리의 원칙으로 자리잡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 입장에 따르면, 인터넷에 기초한 사회 및 경제 혁신은 이용자 그 누구도 제3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열정을 인터넷을 통해 말하고 표현할수 있는 열린 환경에서만 비로소 가능하다. 탈중심적인 구조, 다양한 기능의 중복을 자동으로 축소시키는 시스템, 서로 이질적인 시스템 환경에서 작동하는 상호운용성, 연결 보편성을 가진 하이퍼텍스트 전송 프로토콜(HTTP) 등 현재 인터넷 구조 및 표준은 IT 전문가 중심으로 1986년 개최된 ‘인터넷 표준화 기구(IETF: Internet Engineering Taskforce)’ 회의를 시작으로 국제적 표준과 운영원리로 발전해 왔다. 초기 인터넷 탄생과 IETF의 선구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클라크는 “우리는 왕, 대통령, 선거를 거부한다. 우리는 거친 의견일치와 작동하는 코드를 믿는다 We reject: kings, presidents and voting. We believe in: rough consensus and running code(출처)”라는 다소 직설적인 표현을 통해 초기 인터넷 운영 정신을 웅변했다.

다중 이해당사자주의: 과도한 이상주의?

1998년에는 ‘국제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기관(ICANN: 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이라는 비영리단체가 탄생하여 인터넷 주소 관리를 담당한다. 단체 본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다. 이 단체 또한 ‘다중 이해당사자주의’를 조직운영 원리로 채택했다. 기술자, 인터넷 이용자, 기업, 그리고 정부 대표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회담 형식의 논의 과정을 통해 도메인 네임 시스템(DNS), IP 주소 할당 등을 결정한다. ICANN의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베르트랑 드 라 샤펠(Bertrand de la Chapelle)은, 모든 사람에게 (인터넷) 정책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의미하는 ‘다종 이해당사자주의’는 “단순하면서도 혁명적인 원칙(출처)”이라고 치켜세운다. 드 라 샤펠에 따르면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 사이에서 형성되는 복수의 네트워크가 ‘인터넷 거버넌스’의 생태계를 구성한다. 이들 ‘다중 이해당사자주의’ 지지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또 다른 조직의 이름은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IGF: Internet Governance Forum)’이다. 2006년 탄생한 IGF는 각국 정부 대표와 NGO 대표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 인터넷 주요 정책을 함께 결정하는 이른바 인터넷 정상회의다.

각자가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만큼 목소리를 내는 느슨한 조직과 회담 문화! 무언가 도덕적 규범 냄새가 난다. 참여자에게 발언권이 이상적으로 부여되고, 위계적 질서가 없는 회담! 마치 하버마스가 꿈(!)꾸어 온 ‘이상적 대화상황(ideal speech situation)’ 또는 ‘위계질서 없는 대화(non-hierarchical discourse)’가 마침내 인터넷에서 가능해진 느낌이다. 때문에 이들 인터넷 거버너스 지지자들에게는 지금까지 훌륭하게 작동해온 완벽하고 순결한 인터넷 운영원리를 수정할 아무런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 러시아, 브라질, 인도의 반기: 사이버 주권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 등 일부 국가들은 인터넷을 ‘사이버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국민국가의 책임아래 두고자 하며, 지금까지 지켜져 온 ‘다중 이해당사자주의’에 대한 반대입장을 지난 2012년 12월 국제전기통신연맹(ITU) 회담에서 천명했다. 최근 인터넷 이용자가 급상승하고 있으며 그 중 대부분이 이른바 비서방국가에서 속한다. 그런데 이들 비성방국가 정부입장에서 보면 다양한 인터넷 구조, 표준, 운영원리 논의는 여전히 서방 전문가, 서방 기업, 서방 시민운동가 그리고 서방 정부 대표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모두가 함께 규칙을 정한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국제회의 및 협상에 참여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 전문성, 폭넓은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함 등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들 대표들의 몫이다. 서방 시민대표들은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지만 비서방국가 시민대표들은 회담장에서 어색한 미소만 지어야 한다. ‘국제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기관(ICANN)’이 미국 정부와 기업의 영향력 아래에 있지 않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미국, 스위스 등에 위치한 각종 인터넷 정책기구부터 남아메리카 또는 아시아로 옮겨야 한다. 인터넷 운영 규칙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주체를 차라리 유엔(UN)으로 하자. 이러한 일렬의 주장을 중국,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이 지난 12월 회담에서 제기하였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자유로운 인터넷’에 대한 유엔의 “기습(sneak attack)”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인터넷 감시체계가 인터넷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다

그러나 이와같이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를 유엔(UN)이 주도하는 것을 위협으로 보는 시각은 두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첫 째는, 2012년 7월 유엔(UN) 인권이사회가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 등 인터넷 권리 보장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했다는 점과 이 결의안에 미국 및 유럽국가 뿐 아니라 브라질, 이집트, 나이지리아, 튀니지, 터키 등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현재 인터넷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보안’, ‘안보’, ‘트래픽 관리’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감시체계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로운 인터넷을 옹호하는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이란, 중국, 러시아 등 인터넷 검열을 강화하는 비서방 국가를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미국 보잉의 자회사인 네이러스(Narus)는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투르크메니스탄, 오만 등 독재국가에서 시민감시와 검열에 사용되는 DPI(Deep Packet Inspection) 설비 등 다양한 사이버 보안기술을 수출하는 대표적 기업이다. 감시기술을 수출산업화하는데 있어 독일 기업, 스위스 기업, 프랑스 기업들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지난 2012년 11월 유럽연합 의회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이른바 독재국가를 대상으로 미국 및 유럽기업에 의해 생산된 인터넷 및 통신 감시 및 검열 장비 수출이 최근 크게 증가하고 있다. 또한 2012년 11월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퍼트레이어스(David Petraeus)는 혼외관계가 드러나 이에 대한 책임으로 사임했다. 이 사건이 알려진 것은 미국연방수사국(FBI)에 의한 퍼트레이어스 국장의 이메일 검열을 통해서다.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미국 중앙정보국 국장의 이메일 또한 얼마나 손쉽게 감시체계 아래에 놓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인터넷에 대한 감시와 검열이 보편성을 띄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몰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기술을 확산시키는 데 작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에 유럽국가와 미국은 자유롭지 않다. 물론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터넷 감시국가임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internetFreedom2012년 인터넷 자유지도(출처)

인터넷이 민주주의를 확대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에서 일어난 26살 야채상 청년의 분신은 ‘재스민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장기독재와 경제정책 실정을 비판하는 저항운동은 2011년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등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이른바 ‘아랍의 봄’ 사건이다. 이 때 아랍 민주화 운동의 확산에 있어 인터넷과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강조하며, 연쇄적으로 진행된 아랍인의 저항을 ‘페이스북 혁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페이스북과 휴대폰은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넘어 저항을 조직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고, 인터넷은 저항운동을 보다 쉽게 조직하고, 저항운동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끌어내는데 이용되었다.

그렇다고 민주주의에 대한 인터넷의 기여가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권위적인 국가는 비판적인 내용이 인터넷에서 소통하는 것을 손쉽게 차단하고 있으며,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식이 전파될 수 있는 서비스를 금지시키고 있다. 이란 시민의 경우 정부가 부여한 인터넷 사용증을 소지할 때만 인터넷, 아니 인트라넷(intranet)에 접속할 수 있으며, 러시아의 경우 마침내 전화와 인터넷에 대한 100퍼센트 감시망 구축을 완료했다. 나아가 인터넷은 권위적인 정부를 홍보하는 선전, 선동의 도구로 언제든지 활용될 수 있다.

인터넷 거버넌스의 과제: 인터넷 이용자의 권리 확대

이른바 비서방국가가 지금까지 지켜져온 ‘다중 이해당사자주의’ 관행을 비판하는 논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 표준화 기구(IETF)’,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IGF)’, ‘국제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기관(ICANN)’ 등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국가의 시민단체, 개발자, 기업 등이 보다 쉽게 협의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직의 구조를 개혁할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미국과 유럽에 위치한 기구의 본부를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로 옮기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 및 유럽국가에서 산업화되고 있는 인터넷 감시기술에 대한 제한 또는 반대를 위한 운동에 나서야 한다. 페이스북, 구글, 애플 등이 이용자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이용자 보호 정책을 각 기구의 중심과제로 발전시켜야 한다.

시민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레베카 멕키넌(Rebecca MacKinnon)은 자신의 책  ‘연결된 자들의 합의(Consent of the Networked)’에서 ‘인터넷 시민(citizens of the internet)’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다. “인터넷 시대에서 자유의 미래는, 시민이 미래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넘겨받고 그리고 이를 위해 행동하는 의식을 형성하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여기서 ‘인터넷 시민’은 이용자, 소비자 개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러한 인터넷 시민(의식)을 형성하는 것, 이것이 인터넷의 희망이자 인터넷 거버넌스의 새로운 원칙이다.

우분투 모바일 OS 출시: 개방형 OS시장 확대

리눅스 기반 OS인 우분투(Ubuntu)스마트폰용 OS를 공개했다. 남아프리카 기업인 Canonical의 지원을 받고 있는 Ubuntu는 대표적인 오픈소프트웨어에 속한다. 오픈소프트웨어 산업(!)의 기본 비즈니스모델는 관련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에 설치하는 업무다. 특히 우분트와 Canonical은 서버시장과 리눅스 기반 데스크탑 시장에서 주요 사업자다. Canonical은 우분투 One이라는 드랍박스(Dropbox)와 유사한 크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우분트를 위한 앱스토어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우분트 모바일 OS 공개는 Canonical이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게 보내는 영업제안서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먼저 아래 동영상(1분4초)을 감상해 보자. iOS와 안드로이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UI와 UX를 제공하고 있다.

우분투 모바일 OS에 대한 The Verge의 평가는 아래와 같다.

 Ubuntu’s handset interface is bringing a few unique features to separate it from the competition. Thumb gestures from the edge of the screen will play a big role in navigation — Canonical says that swiping in from the four different edges of the screen will let users switch apps and search for content. A short swipe from the left side of the screen brings up a dock of your favorite apps, while a full left-to-right swipe will pull up all of your open apps. Swipes from the right let you flip back through the apps you’re running; from the short demos on the Ubuntu site, it looks like a nice new way of navigating your apps.

매우 긍정적인 평가다.

그렇다면 스마트폰 OS 시장에서 가지는 우분트 모바일 OS의 가능성을 잠시 따져보자. Engadget 기사에서 시장 가능성에 대한 단초를 뽑아 낼 수 있다.

1. Instead of Android, it’s running a very different Linux-based OS. 우분투의 장점을 훌륭하게 설명한다, 우분투는 안드로이드와 달리 상호운영성(interoperability)이 매우 높다.

2. There are no immediate plans for actual Ubuntu phones, and no carriers have been signed up yet. 문제는 아직까지 우분투 기반 스마트폰을 제조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이 없다.

3. Any new phone built for Android … could run this OS, should a manufacturer see merit in installing Ubuntu. 우분투의 상호운영성이 어느 정도 성숙했는지를 보여주는 문장이다.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에 우분투가 돌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시말해 삼성, LG 등이 마음만 바꾸면 언제든지 안드로이드에서 우분투로 갈아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럴 ‘이유’가 무엇일까?

스마트폰 생산자 입장에서 볼 때, 우분트 모바일 OS의 가장 큰 장점은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에 쉽게 우분트 모바일 OS를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이 이러한 상호운영성은 삼성을 제외한 모든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제조사에게 매력적으로 소구될 수 있다.

첫 째 이유는 우분트 기반 스마트폰을 출시하는데 들어가는 추가 비용(=한계 비용)이 0으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둘 째 근거는 위의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 처럼 우분트 기반 OS가 매우 매력적인 사용자 편이성과 체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현재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만이 유일하게 ‘이윤’을 내고 있기 때문에, 삼성 이외의 스마트폰 제조사에게는 상품 차별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우분트 모바일 OS 기반 스마트폰이 시장에 출현할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 문제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앱 개발자들이 우분트 모바일 OS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다. 이들이 관련 앱을 2013년 생산하지 않는다면 우분트 스마트폰은 시장의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2013년, 웹의 귀환을 꿈꾸다

아래 글은 슬로우뉴스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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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에 공개한 콘텐츠가 모든 인터넷 사용자에 의해 검색되고, 읽히며, 링크되고, 댓글을 생성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홈페이지 또는 블로그를 통해 인터넷에서 개인과 단체가 자아를 만들고 가꾸고 나누는 시대 또한 지나갔다.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서로 다른 생각이 기록되고 쌓이는 공간, 거칠고 다채로운 감정이 연결되는 ‘공적 공간’으로서 월드와이드웹은 점차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모래로 덮인 월드와이드웹

숨 가쁜 하루에 맞닿은 일상의 단면이 트위터에 기록되고, 친구와 나누고 싶은 글과 동영상이 모래알이 되어 페이스북 사막에 파묻힌다. 혹 타임라인이라는 모래폭풍이 지나가면 한 친구가 공유했던 멋진 동영상은 다시는 찾을 수 없다. 가끔 긴 글을 쓸 때면 구글+를 찾는다. 구글이 혹시 여느 다른 서비스처럼 언젠가 구글+서비스를 포기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만약 bit.ly가 수익성을 고려해 3.ly처럼 URL 단축 서비스를 중단한다면 수억만 개의 링크가 사라지게 된다. 혹은 애플이 iOS에서 앱만을 허용하고 웹 브라우징을 차단하기로 결정한다면, iOS 사용자는 월드와이드웹에 접근할 수 없으며 애플이 만든 또 다른 인터넷에 갇혀 살아가야 한다. 앱은 서로가 서로에 링크로 연결될 수 없으며, 뉴스 앱에서 개별 뉴스의 URL은 확인할 길 없다.

만약 스마트폰에서 앱만이 작동한다면, 만약 페이스북이 계속해서 오픈그래프를 특정 기업에게만 허용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월드와이드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다. 특히 1999년 공인인증서 제도가 도입된 이래로, 공인인증서를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 구현하는 액티브엑스는 한국 웹 브라우징 환경을 그 밑동부터 썩게 만들었다.

월드와이드웹이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폐쇄적인 인터넷 환경이 보편화되는 것을 넋 놓고 지켜볼 수 없는 일이다. 2013년은 웹을 되찾는 해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웹은 ‘좋았던 (그들만의) 과거’를 허풍떠는 이들이 말하는 웹이 아니다. 여기서 웹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을 악마화하고, 보이콧하는 웹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네이버, 카카오, 페이스북, 애플, 구글 등으로부터 배워야한다. 사용자를 멍청한 바보로 취급하지 않고, 수많은 사용자의 필요(needs)에 정확하고 훌륭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이들 기업은 경제적으로 성공했다. 이들 기업은 RSS나 트랙백, 이메일 기반 공유 등 어려운 시스템을 사용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인터넷 엘리트,  진화하지 않는 서비스에 대한 집착

한편에서 일부(!) 블로거, 개발자, 웹 디자이너, 인터넷 활동가 등 이른바 ‘인터넷 엘리트’는 독특한 양념으로 만든 요리를 먹지않는 이들을 조롱하고, 요리 예술로 돈을 벌려고 하는 자를 무시한다. 다른 한편에서 네이버, 카카오 그리고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업은 차분하게 평균 사용자의 필요(needs)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어떤 기술적 사전지식 없이도 재미있게 사용할 수 있는 쉬운 온라인 서비스를 만들어왔다. 이들 기업이 ‘서비스 이용약관’을 통해 수많은 사용자의 권리 축소를 시도할 때 인터넷 엘리트들은 팔짱 끼며 방관했다.

이들 기업은 공통적으로 사용자의 필요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개별 사용자의 행위 하나 하나를 통해 돈을 벌 수 있음을 깨달았다. 구글은 애드워즈(AdWords)와 애드센스(AdSense)를 통해 링크를 웹의 화폐로 전환시켰다. 애플은 바이러스, 스팸 그리고 잦은 컴퓨터 다운을 경험한 사용자에게 깔끔한 인터넷 생태계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 개발자와 저작권자가 수익원을 찾고 있고, 사용자는 편안함이란 무엇인지 새롭게 깨닫고 있다. 트위터는 콘텐츠 링크 공유를 위해 복잡한 블로그가 필요 없음을 알아차렸고, 페이스북은 웹에서 사용자가 1분 안에 각자의 관계망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손쉬운 서비스를 제공한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쉬운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사용자의 (공유)행위를 웹의 화폐로 전환하고 있다. 핀터레스트(Pinterest)는 수천 개의 단어 또는 낯설게 보이는 URL보다 한 장의 사진이 적잖은 경우 더욱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직관적이며 호소력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들 기업을 (경제적으로) 성장시켰던 환경은 열린 웹이다. 그런데 이들 기업 스스로 열린 웹을 무시하고 망치고 있다. 그렇다고 열린 웹에 대한 배반이 언젠가 이들 기업에게 복수로 돌아갈까? 유감스럽지만, 아니다. 한국 10대와 20대 중 대다수는 ‘링크’를 알지 못한다, 아니 알 필요가 없다. 공유된 콘텐츠는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에서 단 한 번 클릭으로 또 다른 확산의 길을 걷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메일을 인터넷 중심 소통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를 강요받을 때 이들은 저항한다. 열린 인터넷 환경을 경험하지 못한, 그래서 그 필요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대가 성장하고 있다.

열린 웹과 멀어진 게으른 자의 고백

나에 대해 고백한다. 지난 3년간 트위터, 페이스북, 아이폰을 누구보다 열심히 사용했다. 그러는 동안 오히려 블로그와는 멀어졌다. 노트북을 켜서 블로깅하기 보다는 스마트폰을 통해 그때 그때의 생각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담았다. 게으름이다. 블로그에 남겨진 댓글보다 페이스북의 ‘좋아요’ 수와 트위터의 ‘RT’ 수에 민감했고 페이스북에 달린 댓글에 다시 댓글을 달았다. 또 고백한다. 이메일로 전달되는 블로그 댓글 소식에 브라우저를 켜서 댓글 달기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없다. 형편없는 인터페이스로 이뤄진 워드프레스(WordPress) 앱은 블로그 댓글에 대한 애정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지금쓰고 있는 이 글 또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질 것이고 토론될 것이고, 그리곤 쉽게 잊힐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그리고 트위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글에 대한 반응에 내 마음이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게으름과 얄팍한 마음을 탓하지만, 월드와이드웹이 단지 수십 개에 지나지 않는  기업의 손에 떨어진 상황을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웹은 인류 문명의 지식과 문화를 축적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인터넷에 접속한 모든 이에게 열려있어야 한다. 만약 열린 공간에서 서로 엮여 있는 지식과 문화가 점점 닫힌 공간에서 쌓여가고, 이 공간이 소수 기업에 의해 지배된다면, 그리고 정보를 남길 곳이 이들 소수 기업의 폐쇄 공간(서버)에 한정된다면, 사용자는 스스로 권리를 잃어 갈 테고, 이때 월드와이드웹은 천천히 망가지고, 그리고 결국 사라질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부터 작은 글 추천도 블로그에 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글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공유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반응을 스토리파이(Storify)를 통해 블로그에 기록할 것이며, 열린 공간에서 축적되고 연결되는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 노력할 것이다.

2013년 월드와이드웹의 귀환을 함께 꿈꿉시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만으로 열린 웹을 만들지 못한다. 디자이너, 개발자, 기획자 등의 참여가 절실하다.

개발자와 디자이너에게 부탁합니다. 블로그를 처음으로 알게 된 10대가 사용해도 쉽고 간편한 것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계속해서 블로그 기능과 블로그 디자인을 혁신하고 확장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 주십시오. 모바일 환경에서도 서로 다른 블로그 글을 엮을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해 주십시오. RSS(리더)처럼 복잡하지 않으며 페이스북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블로그 구독시스템을 만들어 주십시오. 플래터(Flattr) 또는 페이스북 ‘좋아요(like)’와 유사하지만 열린 웹에서 작동하는 평가시스템을 만들어주십시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소수 기업에 의해 성격이 결정되지 않은 열린 웹을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제안해 주십시오.

블로거, 개발자, 디자이너, 인터넷 활동가 여러분, 2013년 월드와이드웹의 귀환을 함께 꿈꿔봅시다.

독일 2013년 주유소 실시간 가격 공개 의무 법제화

2013년부터 독일 소재 모든 주유소는 가격 변동을 실시간으로 공개해야만 한다. 한국도 다음, 한국석유공사 등이 제공하는 주유소 가격을 비교하는 유사 서비스가 존재한다. 그러나 가격변동이 실시간으로 반영되고 있지 않으며, 주유가격정보 대상으로 모든 주요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단점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12년 11월 8일 독일연방의회를 통과한 ‘시장투명청’ 법안은, 1. 전기 및 도시가스의 도매가격과 2. 모든 주유소 소매가격을 ‘실시간’으로 그리고 기계가 읽을 수 있는 데이터로 공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과 이를 담당할 행정부서인 ‘시장투명청(Markttranspranenzstelle)‘을 한국식 ‘공정거래위원회’ 산하에 설치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정보출처를 밝힌다면 누구나 시장투명청이 제공하는 실시간 가격정보를 활용하여 웹, 앱 등 상업(!)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투명하게 공개되는 가격정보를 활용한다면 1. 소비자에게 유익이 되는 주유소 가격 정보를 스마트폰, 자동차 네비게이션 등에 신속하게 제공될 수 있다는 장점 뿐 아니라, 2. 예를 들면 SK, GS 등 업체별 가격정책의 차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어 공급자의 불투명한 가격정책을 개선할 수 있는 시장유익이 가능하다.

이번 독일 에너지 정보공개법은 ‘(긍정적) 외부효과’라는 경제학 개념으로 설명 가능하다. 외부효과는 어떤 한 경제주체-여기서는 ‘정부’-의 결정이 이 결정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시장참여자-여기서는 ‘주유 업체와 소비자’-에게 긍정 또는 부정의 경제효과를 미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외부효과는 양봉업자, 환경오염 유발 기업 등 정부가 아닌 기업의 행위가 다른 경제 주체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 등 시장실패를 설명할 때 언급되는 개념이다.

이번 독일의 경우 정보공개 또는 Open Data 등 정부정책이 1. 가격하락을 유도하여 소비자 경제 유익과 2. 가격투명성 등 시장투명성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후 정보공개 및 Open Data 정책이 경제학적 논쟁으로도 확산될 중요한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참조: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유사한 주유소 정보공개 의무화 정책을 이미 2012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지난 1년간의 정보공개 효과에 대한 보고서가 분명히 공개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찾게 되면 블로그를 통해서 소개하겠다.

망 중립성이란 무엇인가?

인터넷은 지난 30년을 거치면서 20억 명 이상의 이용자를 연결하는 전 지구적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인터넷은 다양한 혁신을 가져왔으며,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정보에 대한 쉬운 접근을 가능케했다. 또한 인터넷은 예기치 못한 수 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이용자에게 표현의 자유에 대한 빼앗겨서는 안되는 권리를 요구케하였다. 인터넷은 우리의 다양한 일상의 변화를 가응케했다. 서로가 쉽게 소통하고, (함께) 지식을 만드며 나아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논쟁에 이용자가 참여하는 것을 가능케했으며, 경제 환경 뿐 아니라 국민경제 전체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렇게 인터넷에 대한 다채로운 이용 가능성이 증대할 수록, 이렇게 인터넷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가 커질 수록 인터넷의 시스템 구성(architecture)과 운영 원칙들에 대한 논쟁도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인터넷 트래픽은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nternet Service Provider: ISP)에게 특정한 데이터를 차단하거나, 선호하거나 또는 억제하고자 하는 동기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가능성 또는 동기는 표현의 자유, 경제 (혁신) 등에 결코 작지않은 영향을 미쳐왔고 앞으로도 그 영향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망 중립성은 결코 전문 망 기술자만이 관심을 가져야하는 주제가 아니다.

인터넷 초기의 데이터 전송은 매우 단순했다.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은 자신들의 망에 어떤 데이터가 전송되는지 관심가질 이유가 없었다. 또한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는 자신들의 망에 어떤 데이터가 전송되는지 기술적으로도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이용자는 인터넷을 어떻게 사용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게임, 메신저, 이메일 또는 서핑을 하든 상관없이 이용자 모두는 인터넷에서 자신이 사용하는 데이터에 대한 동일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망의 끝단(the end of internet)’에 위치한 이용자에 대한 비차별 그리고 이용자가 선택하는 데이터에 대한 비차별은 인터넷이 가진 놀라운 혁신능력이며, 현재까지 인터넷과 이용자가 함께 이룬 놀라운 진보의 힘이기도 하다. 초기 미국의 AOL은 이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 및 애플리케이션을 통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 이용자들은 망 중립성이라는 개념을 알고있지는 않았지만 AOL 담장 너머 흐르는 인터넷의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했고 소비함으로써 AOL의 이른바 ‘닫힌 정원(walled garden)’ 전략을 좌절시켰다. 하지만 인터넷을 둘러싼 기술적 환경이 변화였다. 오늘날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는 전송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구별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 놀라운 기술의 이름은 “데이터 패킷 통제 Deep Packet Inspection: DPI”다. DPI는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에게 그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인터넷에 흐르는 데이터의 종류와 내용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을 제공한다.

때문에 망 중립성 논쟁의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망 운영자, 다시말해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에게 DPI 기술을 사용케 할 것인가?”, “누가 어떤 조건에서 인터넷에 전송되는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을 가질 것인가?” 또는 “인터넷 이용자 모두가 인터넷을 어떻게 이용할지 스스로 결정할 주권을 가져야하는가?” 또는 “우리는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가 특정 데이터나 특정 애플리케이션을 차단하거나 그 속도를 늦추거나 하는 개입행위를 허락할 것인가?” 등의 질문이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는 QoS 등 다양한 ‘망 관리 (net management)’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유선 및 무선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는 고객들에게 결코 100퍼센트 제공한 적 없는 ‘전송속도’를 판매하고 있다. 광고와 계약서에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최대”라는 표현을 통하여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는 자신들이 필요할 때 그리고 필요한 데이터의 흐름을 조정하고 있다. 누가 또는 어떤 데이터가 우선권을 가지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다. 이들은 때론 자사 또는 계열사 서비스 및 데이터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한편으로 파일공유(filesharing)의 속도를 늦추고 다른 한편으로 자사의 주문형 비디오(Video on Demand:VoD) 서비스는 안정적인 속도로 제공한다. 이동통신사업자는 마이피플, 보이스톡을 차단하거나 추가 요금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언제 무엇이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고객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이들의 “최대” 속도 OO의 상품을 판매는 계속되고 있다.

끝으로 망 중립성 정의에 있어 이용자는 개인 및 기업 인터넷 이용자 뿐만아니라 네이버, 다음, 카카오톡, 구글 등 콘텐츠 및 서비스 공급자(Content & Service Provider: CSP)도 포함된다.

“Fuck you, this is my culture”

지난 11월 초 아제르바이젠의 바쿠(Baku)에서는 UN에서 개최한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The Internet Governace Forum)“이란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의 연설자 중 한 명으로 나선 스웨덴 해적당 유럽의회 의원 아멜리아 안데르스도테르(Amelia Andersdotter)는 짧지만 매우 명쾌하게 저작권과 (이동)통신사업자가 현재 인터넷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정치, 사회, 문화의 걸림돌임을 지적하고 있다.

연설 후반부에는 조지 마이클(George Michal)의 멋진 표현인 “Fuck you, this is my culture”가 등장한다. 해적당을 떠나 인터넷 거버넌스에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동영상과 발표문에 잠시 관심을 가져보시길!

연설문:

Thank you, Chairman, ladies and gentlemen, participants of the Internet Governance Forum 2012.

My name is Amelia Andersdotter. I am a member of the European Parliament on behalf of the Swedish Piratpartiet since December 2011. I am mindful of the fact that I am one of only two women speaking in the opening session. Also, I am probably the youngest person speaking. I am only 25 years old.

The Piratpartiet wants to change the legislative framework for communication, interaction, innovation and culture. We formed around the idea that communication technologies and culture present fantastic ways of building broad global communities.

We want interactions, social, cultural and economical to be determined by and under the control of the people interacting.

When information, communication and culture can be freely accessible and used, which on the internet is basically always the case, this should as a general principle always be allowed and any exceptions or deviations to that general rule must be kept exceptional.

Unfortunately, laws at both nation state level and the international level are very ill‑equipped to achieve these goals.

For instance, direct interventions by nation states into communication and cultural flows of their citizens are ubiquitous in the world. More insidious are the restrictions on communications imposed on users by private network operators or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holders.

We hear words like ”freedom of speech” and ”Human Rights must be respected online”, but so far very few top political figures in the world have acknowledged, or are willing to acknowledge, that this will require regulatory intervention on some private sectors. We may also have to let go of some regulatory protections for private sector actors that we’re currently putting in place to block communications between people.

It is clear to me both at the personal and at the political level that we need to fundamentally reconsider our approach to communication. We need communication to be open and accessible. This is how we make friendships, it is how we make societies, it is how we form worlds.

The control over communities and the ability to shape them must be with the communities themselves. Infrastructure must be regulated to enable that ability and such autonomy.

The raw material for cultural identities, the culture itself, must be made more accessible than is currently the case. Copyright is not only an untimely instrument for the 21st century, it is doing active harm to culture and to communities around the world.

During one of my travels this summer I met a young man who told me with a straight face that he liked open torrent trackers because he wants to be able to seed the unpopular files[1]. I want to seed the unpopular files. I want to see the unpopular torrents and I want to live in a world where a social network, a community on its own initiative preserves the cultural wealth through the spontaneous contribution of all its members. All of the changes that are needed in our laws to ensure that these communities can exist must be undertaken and now.

To all of you here and to all of the Governments and to the public officials and lobbyists that haven’t been able to bring themselves to support these actually very extensive reforms that are necessary for these places and creative communities to exist, I would like to paraphrase George Michael from I think 1992, ”fuck you, this is my culture”[2] and if copyright or telecommunications operators are standing in the way, I think they should go.

Thank you.

[1] In the conference transcription they have put ”see the unpopular files”.
[2] Cruising culture and George Michael, in the Guardian from 2006. And the real quote was ”Fuck off, this is my culture.”

 

독일 일간지 Frankfurter Rundschau 폐간

독일생활에서 처음으로 정기구독했던 일간지는 Frankfurter Rundschau다. 3년간 정기구독을 했으니 나에겐 독일사회에 대한 시각을 갖게해준 고마운 신문이다. 특히 학부 생활의 지루한 일상을 이겨내는데 한없는 도움이 되었다. 그 이후 다른 일간지로 정기구독을 바꾼 뒤에도 종종 Frankfurter Rundschau 주말판 등을 구매하였다.
정치적 입장으로는 사민당 좌파 정도에 해당되는 Frankfurter Rundschau에서 좋아했던 지면 중 하나는 Dokument다. 사회적으로 쟁점에 되는 주제를 다룬 (작은) 논문을 요약해서 광고 없이 한면 빼곡하게 담아내는 지면이다. 한겨레 21 통신원 시절에는 주요 사회쟁점을 정리하게 위해서 Frankfurt Rundschau의 Dokument를 가장 먼저 찾곤 했다.

이 ‘일간지’가 이제 곧 사라지고 온라인 판만 남게 된다고 한다. 좋아했던 일간지가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일간지의 폐간 또는 뉴스위크 같은 주간지의 폐간 소식을 접할 때면 그 원인은 아래에서 찾아지곤 한다.

  1. 인터넷 사용자의 이른바 ’공짜 좋아하는 문화’
  2. 종이신문/주간지 광고주가 온라인을 선호
  3. 경영진의 무능력
  4. 경영진은 낮은 (미래) 투자
  5. 신문독자의 시간을 빼앗아가는 스마트폰의 확산

그러나 ‘일간지’라는 ‘저널리즘 구조’는 그 원인으로 지적되는 경우가 드물다. 언론사의 태블릿 또는 스마트폰 앱이 유행하자 ‘일간지’를 심지어 1대1로 앱에 옮겨 놓았을 때도 이에 대한 비판은 찾기 쉽지 않았다. 다만 스마트폰에서도 포털 중심의 뉴스소비가 강세라는 푸념만이 있을 뿐이없다. 이러한 사고에는 ‘전달매체’로서 종이의 기능이 힘을 잃고 ‘전달매체’로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이는 독자들이 ‘일간지라는 구조’로부터 빠져나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일간지들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고 일부 일간지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온라인을, 디지털 미디어를 저널리즘의 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

망중립성 연구노트 1: 통신사(ISP) 논리분석 1

- 8월말까지 망중립성과 관련된 개인 연구의 (중간)결과를 소개

- 참조한 문헌 출처는 최종 연구물에 명시할 예정

- <망중립성 연구노트>는 중간 결과물의 성격

먼저 망중립성과 관련한 통신사(ISP)의 논리 또는 통신사(ISP)의 입장을 지지하는 문헌들의 논리구조를 아래 그림에 재정리해 보았다.

이 논리구조는 크게 왼쪽 부분의 ‘경제 논리’와 오른쪽 부분의 ‘기술 논리’로 구별될 수 있다. 경제논리와 기술논리의 출발점은 ‘망 부하(Excess Capacities)’다. 망 부하, 특히 최근 모바일 인터넷에서 발생하는 망 부하는 동영상 등 콘텐츠 및 서비스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거나 또는 일정 시간 및 일정 공간에 사용자(End-Users)가 집중적으로 모바일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위 그림 오른쪽에 표현된 ‘기술적 접근 또는 해결방안’이 제시된다. DPI 등 인터넷에서 오고가는 패킷(Packet)을 분석하는 트래픽 관리(traffic management)가 요구된다. 트래픽 관리의 범위는 ISP 자사 서비스영역(reserved Internet) 뿐만 아니라 ISP가 관리하는 외부 망(open Internet)으로 확장된다. 트래픽 관리의 방법론으로  ISP 자사 서비스영역(reserved Internet)에 적용되었던 QoS(Quality of Service) 기법이 외부 망(open Internet)에서 확장되는 형식이다. QoS는 망부하가 발생할 때 인터넷에 오고가는 특정 패킷 또는 특정 서비스에게 우선권(Prioritization)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사용자(End-Users)와 콘텐츠 및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CSPs)에게 안정적인 인터넷 서비스를가 제공될 수 있다. 특정 패킷 또는 특정 서비스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은 역으로 또 다른 특정 패킷 또는 특정 서비스를 (일시적으로) 차단하거나 (일시적으로) 그 속도를 늦출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망 부하에 대응하는 기술적 접근 방식은 경제적 접근 방식으로부터 ‘지원 사격’을 받고 있다.

네오클래식의 전통을 따르는 후생경제학(Welfare Economics)은  시장 공급자- 여기서는 ISPs- 사이에 가격차별화 및 서비스(=품질)차별화를 둘러 싼 경쟁이 치열할 때 사회 전체의 후생(Welfare)이 증가하는 것을 다양한 실험모델에서 증명해 왔다. 사회 전체의 후생이 증가한다는 것은 시장 공급자-ISPs- 뿐 아니라 소비자-통신시장 및 인터넷 시장은 양측시장(Two-Sided Markets)이기에 소비자는 사용자(End-Users)와 CSPs 등 두 개 그룹으로 나뉜다- 등 시장참여자 모두의 후생(Welfare)을 더한 값이다.

따라서 ISPs에게 가격차별화, 특히 품질차별화에 기초한 가격차별화 가능성이 보다 폭넓게 주어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ISPs는 지속적으로 기업 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고, 이윤 증가는 추가적인 망 투자를 유인하게 된다. 여기서 두 가지 함의를 끌어낼 수 있다.

첫째는 품질차별화다. 품질차별화라는 것은 인터넷에서 오고가는 특정 패킷 또는 특정 서비스에게 ‘추가 요금’을 받고 더 높은 속도 및 안정성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설명한 기술적 측면에서 망 부하를 해결하는 논리와 연결되는 지점이다.

둘째는 추가적인 망 투자에 대한 지속적 유인이 발생할 수 있어 망 부하를 중장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ISP가 망부하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적 관점에서 그리고 경제적 관점에서 제시하는 해결논리의 맹점은 무엇일까?

증강현실과 소셜 네트워크의 미래: Sight

증강현실과 소셜 네트워크가 생활의 ‘상수’가 되었을 때 세상은, 인간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이스라엘 예술가 May-Raz와 Daniel Lazo는 사물과 사람 등 사물의 인터넷(Internet of Things)가 현실화될 가까운 미래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훌륭하게 선취하고 있다.

Sight from Sight Systems on Vimeo.

Sight에서 사물 및 사람이 소통하고 정보가 오고가는 도구는 구글의 안경(Project Glass)이 아니라, 콘택트 렌즈다. 남녀가 첫 만남을 갖는다. 서로 어색한 시간을 어떻게 보냐야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다양한 앱이 실시간으로 대화소재를 제공한다. 또는 상대방의 생체리듬을 분석하여 이에 상응하는 행동양식을 추천하다. 첫 데이트 동안 상대방에 대한 평가도 가능하다.

위의 동영상은 그러나 두 개의 극단을 제시하고 있다. (관점에 따라 달리 볼 수 있지만) 전반부에는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기술의 가능성을 멋지게 제시한다. 그러나 기술은 인간의 삶을 살아있는 악몽으로 빠르게 반전시킨다.

환상적인 위의 동영상을 감상한 사람 대다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나 증강현실에 대해 반감을 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등에 대한 결정은 아직까지 우리들의 손에 놓여 있다.